온전하고 확실한 희망! 위르겐 몰트만 박사를 추모하며!
온전하고 확실한 희망! 위르겐 몰트만 박사를 추모하며!
  • 이정순
  • 승인 2024.06.09 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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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신학자’ 위르겐 몰트만 박사가 지난 6월 3일에 98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한국 언론에도 소개될 만큼 몰트만 박사는 세계적인 신학자이자 한국과도 관련이 많은 신학자이다. 20세기 현대신학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던 세계적인 신학자가 역사 속으로 사라진 것이다. 지난 세기 전 세계에 영향을 끼쳤던 몰트만 박사는 사라졌지만 그가 남긴 신학 사상은 후학들을 통해서 세계 곳곳에서 빛을 발하며 계승되리라 소망한다.

몰트만 박사(출처: 위키미디어커먼스)

필자는 몰트만 박사를 개인적으로 만난 적은 없지만, 그는 신학의 여정 중에 거쳐야 할 중요한 사람이었다. 한국어로 번역된 그의 책을 교재로 정한 대학원 수업을 들은 적도 있고, 또 그가 쓴 <현대신학이란 무엇인가>를 텍스트로 삼아 독일어 시험을 준비했던 적도 있다. 필자는 그의 신학을 전공하지는 않았지만, 곳곳에서 그의 신학의 영향을 받은 바가 적지 않다. 특히 그가 1990년대에 한국 민중신학자들과 서신을 교환하며 민중신학에 관해 토론을 벌인 것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서구 신학이 절대적인 위치에 군림하던 시대에 비서구권인 한국이라는 작은 나라에서 태동한 민중신학에 세계적인 신학자가 관심을 가지고 직접 토론을 벌인다는 것은 당시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몰트만은 신학자가 되기 전 2차세계대전에 독일군 사병으로 참전했다가 영국군에게 포로로 잡혀 수용소 생활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포로수용소에서 신앙에 눈을 떴고, 전쟁이 끝난 후 본국에 돌아와 신학을 공부하고 교수가 되었다. 전쟁 포로 경험이 있어서인지 그는 사회 곳곳의 약자들에게 관심을 기울였고, 급기야 생태계의 문제까지 연구의 대상으로 확대했다. 또 독일로 유학 온 여러 한국인 학생들을 제자로 받아들이고 박사를 만들어낸 것을 보면 당시 약소국이었던 제3세계 학생들에 대한 관심과 배려를 잘 엿볼 수 있다.

무엇보다도 1960년대에 그를 세계적인 신학자로 만든 것은 <희망의 신학>이라는 저서였다. 당시 세계는 여러 번의 전쟁을 겪고 동서냉전의 암흑기에 처해 있었다. 세계 현실에 직접 개입하여 문제를 해결한다는 전통적인 신의 개념은 거부당했고 급기야 <신 죽음의 신학>이라는 신학까지 등장하여 세계는 어두움에 드리워져 있었다. 바로 이때 몰트만은 기독교의 희망은 사라지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희망의 신학>이라는 책을 출판하여 세계에 희망이라는 메시지로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사실 이 책은 마르크스주의 철학자 에른스트 블로흐가 쓴 <희망의 원리>에 큰 영향을 받았다. 블로흐는 기독교의 종말론 개념을 끌어들여 새로운 사회에 대한 유토피아적 희망을 현재적 삶의 원리로 제시했다. 몰트만은 기독교가 어째서 종말론을 제대로 다루지 않는가에 문제를 느끼고 신학적인 관점으로 이 주제를 적극적으로 해석했다.

세계 역사에서 가장 격변의 시기였던 지난 20세기에 신학적으로는 많은 대가들이 출현하여 신학의 큰 발전을 이루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몇 년 전 스위스 신학자 한스 큉의 별세에 이어 몰트만 박사의 별세로 20세기 현대 신학의 대표 주자들이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졌다. 하지만 그들의 유산은 여전히 생생하게 살아 있으며 오늘의 문제, 인간의 문제, 세계의 문제를 고민하는 후학들에게 여전히 중요한 지침으로 자리잡고 있다.

21세기가 24년이나 된 현시점에서 우리는 몰트만 박사가 한 세기 전에 직면했던 어둠을 세계 곳곳에서 체험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와 팔레스타인 가자 지역에서는 여전히 전쟁이 계속되고 있고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다. 미얀마에서는 벌써 몇 년째 군사독재자들에 대항한 무력 투쟁이 계속되고 있다. 자랑스런 민주화 운동의 역사로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도약했던 대한국은 어느새 과거로 회귀하고 있고, 세계 곳곳의 공공 연구소와 미디어 기관이 한국의 민주주의 지수, 언론의 자유 지수, 국가 지도자 지지율 조사 등을 통해 부정적인 통계를 내놓고 있다. 또 남북간 대화와 협력을 통해 잠시나마 평화의 시대를 누렸던 지난 몇 년간과는 전혀 다른 대결과 전쟁의 시대가 우리 사회에 도래하고 있다. 눈 떠보니 선진국이 아니라 후진국, 각자도생의 시대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이다. 이런 절망과 어둠의 현실에서 도대체 희망은 있는가?

사회뿐만 아니라 종교계 역시 그리 희망적이지 않다. 코로나 시대를 겪으면서 모든 종교가 침체하기 시작했고, 최근 조사에 따르면 국민 10명 중 6명이 무종교인이다. 탈종교화가 가속화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 개신교회 역시 예외가 아니다. 성장을 멈춘 채 쇠퇴하고 있는 현실이다. 앞으로 도시를 중심으로 몇몇 큰 교회들만 살아남지 않을까 하는 농담도 나올 정도이다. 그나마 이런 교회들이 공교회성을 유지하고 작은 교회를 배려하는 교회들이라면 희망이 있겠지만, 세상의 기업을 흉내 내서 세습하고 문어발식 확장만을 꾀한다면 그런 희망은 금세 사라질 것이다.

몰트만 박사가 활발한 신학 저술과 국제적인 연대 활동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학문의 자유를 보장하고 대학 교수의 신분을 보장하는 독일 사회의 오랜 전통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런 전통이 필자는 너무도 부러울 뿐이다. 오늘날 대학이 무너져 가고 있는 한국 사회와 너무도 대조가 되기 때문이다. 학문의 기초가 되는 인문 교양 과목은 취업에 도움이 안된다고 배척하고 직업인 양성소로 전락하고 있는 것이 오늘날 우리 대학의 현실이다. 학령인구 감소로 너도나도 대학의 위기를 말하면서 많은 대학의 교수들이 학문연구라는 기본 임무는 외면한 채 학교 홍보와 학생 모집을 위한 세일즈맨으로 전락하고 있다.

최근 한 신학대학에서 ‘창조과학’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교수를 해임하는 사태가 일어났다. 종교 대심문관이 악행을 떨치던 중세기에나 있을법한 일이 한국에서 일어난 것이다. 동료 신학자들이 계속 비판하는데도 교단의 신학적 입장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해임이라는 엄청난 징계를 결정해 버렸다. 도대체 교단의 신학은 시대의 흐름과 무관한 불변한 진리인지 묻고 싶다. 예수님이라도 과연 교단의 신학 검증을 통과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서로 다른 학문적 입장을 토론의 장에서 함께 논의하고 배우는 곳이 대학이 아닌가? 아무리 교단이 세운 신학대학이라 하더라도 교육부의 허가와 지원을 받는 대학인 이상 학자들의 학문의 자유를 철저히 보장해야 하고, 또 교단과 학교는 서로 대화를 통해 협력하는 것이 옳지 않은가? 대학은 지성의 요람이요 진리 탐구의 장이라는 정체성을 잃는 순간 더이상 대학이 아니다. 대학의 학문의 자유, 사상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다면 더이상 대학으로 부를 수 없다는 것이다.

몰트만 박사는 언젠가 한 강연에서 하나님은 ‘온전하고 확실한 희망’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신다고 역설했다. 그리고 그 희망은 미래에서 현재를 뚫고 들어와 현재의 삶을 가능케 하는 신앙의 원리가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또한 장차 실현될 새로운 현실인 하나님 나라에 대한 초청이기도 하다. 신앙인은 희망의 미래를 지향하면서 동시에 현재로 임하는 것들에 대한 기대 가운데 살아간다. 또한 신앙인은 희망으로 인해 고통과 불의와 폭력으로 점철된 현재에 매몰되지 않고 오히려 그것들에 저항하면서 현재를 이겨나간다. 그러므로 희망을 일깨우는 하나님을 진정으로 믿는 자들에게는 늘 새로운 삶이 시작된다. 희망의 신학자 몰트만 박사를 기억하며, 곳곳에 어둠이 드리운 오늘 우리 모두에게 그가 역설한 새로운 삶, 희망의 삶이 시작되기를 소망한다. 아니 희망하는 그곳에 바로 새로운 현실이 시작된다.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리라”(계21:5). 몰트만 박사의 죽음을 추모하며 . . .

“희망한다는 것은 불확실성을 받아들이는 것이다”(불가리아 예술가 테오 게오기에브 작품, 출처: 위키미디어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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