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권사는 염색 좀 해야 쓰것어.
강 권사는 염색 좀 해야 쓰것어.
  • 남광현
  • 승인 2024.06.09 2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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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의 점심 식사는 주일 예배 후 어촌 교회의 사랑방 역할을 한다. 식사 중에 오가는 이야기들 속에서 마을에 있었던 애경사뿐 아니라 마을의 최근 소식을 전해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올해 봄철 어장에 아무개 선장은 바다에 그물 넣는 장소를 잘못 선택해서 실패를 봤다느니, 어장이 망가져 봄철 농사 끝난 집도 있다느니, 마을 어느 배가 옆 동네 누구에게 넘어갔다느니 등 듣기 어려운 마을 소식이 자연스럽게 오가면서 식사가 이루어지는 경우가 다반사다.

“강 권사는 바우지(필자 주: 돌게) 어장 괜찮남?”

“저야 가까이 넣어서 큰일 없었지요, 그리고 우리는 주의보 떨어지면 바로 걷어와서 별문제 없어요.”

“나 권사는 낚싯배라 큰 문제 없잖아요?”

“우리야 주의보 떨어지면 아예 못 나가요, 예약 손님들 환급을 해 주던지 출조를 연기하죠.”

“조 권사는 나갔다 왔다지 아마….”

“거기야 새벽 1시에 물 보러(필자 주: 바다에 넣어 놓은 그물에 잡힌 활어를 거둬 오는 일) 나갔다 들어와서 괜찮을 거예요, 교회 올라오기 전에 방파제에서 봤네요, 들어왔어요.”

바닷일이 얼마나 어렵고 위험한지를 아는 분들끼리의 대화이다 보니, 경청하는 것 외에는 끼어들기가 어렵다. 말이 그렇지 언제 맞닥뜨릴지 모를 환경에서 하루 이틀도 아니고 평생을 살아온 분들이기에 일상의 대화인 듯 보이는 대화 속에서도 경험에 근거한 염려와 근심이 녹아져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남선교회 교우분들이 함께 모여 식사하는데 장로님과 권사님들과의 대화를 듣기도 하고 묻기도 하며 식사를 나누었다. 이런 식의 식사이기에 그날, 마을의 어획량과 어선들의 동향에 대해 자연스레 듣게 된다. 그리고 함께 예배하지 못하고 바다에 나가 있는 교우분들의 상황에 관해서도 들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시골 어촌임에도 식사 후에는 커피 머신을 이용해서 아메리카노를 마셔야 식사 마무리가 되는 환경이다 보니 바리스타 자격을 가지고 있는 여선교회 집사님들께 늘 요청한다.

“박 집사님, 오늘은 따듯한 아메리카노 부탁드립니다.”

“집사님, 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투 샷, 아시지요?”

“나는 양이 너무 많아요, 반만 주세요.”

“집사님, 요구들이 너무 많지요, 본인들이 내려 먹으라고 하세요.”

“오늘은 김 집사님이 내려 주실 거예요, 김 집사님께 부탁하세요. 나는 설거지 해야 합니다요.”

“예, 오늘은 제가 커피 내려 드릴게요, 장로님, 말씀하세요.”

“집사님, 감사합니다. 나야 달아야 하니까, 설탕만 2개 주면 되지요.”

“이번 주는 김 집사님 덕분에 커피 마십니다. 감사합니다.”

“예, 커피값은 걱정하지 마시고 주문해 주세요.”

남선교회 교우들의 가부장적 모습에 필자의 마음은 조금 불편해도 대화들이 듣기에 참 즐겁다. 천상 뱃사람인 무뚝뚝이 권사가 종이컵에 튀밥 같은 스낵을 열심히 담아 여선교회 권사님들이 앉아 있는 식탁에 말없이 배달한다. 이 모습 또한 정겹다. 이런 모습을 지켜보던 장로님이 거든다.

“아니, 머리카락 색으로만 봐서는 강 권사가 섬김을 받아야 쓰것는디, 워찌 그러고 다닌댜?”

“그러게유, 강 권사님 머리가 우리보다 더 백발이라 앉아서 받기가 무안하네유.”

“누가 보면, 동백정교회 성도들이 버릇없다고 하것어, 그만하고 이리와요, 하하하.”

“누가 보면 어뗘, 우리만 알면 되지 뭐.”

“그나저나 오늘 강 권사 염색해야 쓰것는디, 윤 권사, 집에 염색약 없어유?”

“예, 장로님, 집에 염색약 있어유, 그런데 강 권사가 염색하면 뭐시가 어쩌고저쩌고해서 미워서 안 해줘요.”

“장로님, 강 권사는 백발도 멋있어요, 친구들 계모임에 나가서도 으른 취급 받는다니까요.”

“아녀, 그래도 강 권사는 염색 좀 해야 쓰것어.”

70이 넘은 권사님의 하얘진 머리카락을 보며 80이 넘은 장로님의 일성에 녹아 있는 뱃사람들의 사랑 표현이 정겹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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