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작아 보인다
하나님이 작아 보인다
  • 이구영
  • 승인 2024.06.07 09: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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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는 예수님의 제자들 사이에서 심각한 말싸움이 일어났습니다.
[눅 9:46] 제자 중에서 누가 크냐 하는 변론이 일어나니

46절에서 누가는 ‘변론’이라는 단어를 선택했습니다.
- 제자들은 자신의 지위와 명예에 대한 싸움, 앞으로 얻게 될 자리 싸움을 마치 진리를 탐구하듯이 매우 진지하게 생각하고 이를 차지하려 했다는 의미입니다. 오늘 누가복음 9장에 나오는 제자들의 욕심에 대한 이야기의 원본은 마가복음 9장입니다. 마가복음은 누가가 사용하는 ‘변론’이라는 단어 대신 ‘토론, 쟁론’ 이런 단어를 사용합니다. 새 번역은 이 토론, 쟁론을 그냥 ‘다투었다’ 라고 번역을 합니다.

자 그렇다면 지금 그들은 왜 이 싸움을, 변론을, 머리싸움을 하고 있을까요?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내 안에는 죄라는 놈이 살고 있습니다. 밖으로 드러나지 않고 신분을 철저하게 숨기고 있을 뿐이지 여전히 내 안에는 죄가 있습니다. 아닌 것 같은데 문득, 문득 내 안에 죄가 살아납니다. 전문 용어로 ‘활성화’ 라고 합니다. 그날따라 죄가 활성화되어 살아납니다. 멀쩡하다가...

오늘이 바로 제자들에게 그런 날이었습니다. 더 높아지고 싶은 욕심, 더 대우받고 싶은 욕심, 내 권리를 주장하고 싶은 욕심이 살아나기 시작했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느니라!!!”
예수님께서는 이것을 조기에 진압하셔야 했습니다. 그래서 말씀하십니다.
[막 9:35] 새번역 예수께서 앉으신 다음에, 열두 제자를 불러 놓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그는 모든 사람의 꼴찌가 되어서 모든 사람을 섬겨야 한다.“

그러시면서 시청각 교육을 위해서 어린아이 한 사람을 데려다가 그들 가운데 세우신 다음 그 아이를 껴안으시고 제자들에게 또 말씀하셨습니다.
[막 9:37] 새번역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이들 가운데 하나를 영접하면, 그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는 사람은, 나를 영접하는 것보다, 나를 보내신 분을 영접하는 것이다.“

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본문입니다. 겸손을 가르치실 것이라면, 높아지려고 하지 말고 낮아지라고 하시면 되는데... . 이런 어린이를 영접하면 그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다!
. 또, 나를 영접하는 것은 나 보내신 분을 영접하는 것이다! 무슨 말씀일까요? 누가도 마가도 이 부분을 설명하면서 ‘영접’ 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영접은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말합니다. 욕심을 이기는 길, 교만을 이기는 길, 죄를 이기는 길은 내 스스로의 의지에 의해서가 아니라 내 안에 예수님을 모셔드리고, 그분을 보내신 아버지 하나님을 모셔드리고 그분의 말씀이 활성화 되도록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마귀는 내가 이길 수 있는 존재가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마귀는 강력합니다. 마귀는 꾸준합니다. 마귀는 틈을 노리는 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 말씀하십니다. 네 안에 성령님을 모셔드려서 그분이 너를 지배하시도록 하라고... 못 알아 들으니까 예수님께서는 제자들 앞에서 어린아이를 껴 안으십니다. 이렇게 이 아이가 내 품에 있어서 내게 지금 가장 소중한 사람이 되는 것처럼, 너희도 높아지려고 할 때마다 교만해질 때마다 이 아이를 안고 있는 나를 생각하면서 너희 안에 겸손하신 예수님을, 성령님을 모셔드려라!!!

겸손은 하나님의 크심에 대한 나의 반응입니다. 아무나 겸손해지는 거 아닙니다. 하나님이 크게 보일 때 내 안에 있는 죄가 힘을 잃게 됨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커지는 자기 우상화는 하나님을 한 없이 작게 만듭니다. 무신론자가 되고 우상 숭배자가 되게 합니다. 이렇게 내가 커지면 죄를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을 바라지도 않습니다.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에서 멀어집니다. 그래서 저는 겸손을 ‘하나님의 크심에 대한 나의 반응’이라고 표현합니다.

교만은 반대로 하나님이 작아 보이는 것입니다. 왜 사람들이 죄를 지을까요? 어떤 이는 육신이 약해서라고 하고, 또 어떤 이는 믿음이 없어서라고 말하지만 사람이 육신이 약하다고 해서 모두가 죄를 짓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불신자라고 해서 죄만 짓고 사는 것도 아닙니다. 사람이 죄를 짓는 분명한 이유는 그 마음속에 하나님이 없기 때문입니다. 마음속에 하나님 없는 사람은 양심의 가책도 없고 죄를 죄로 여기지도 않습니다. 죄를 정당화하고, 교만이나 욕심을 당연한 것처럼 누립니다. 하나님을 그 마음에 모시고 살지 않기에 죄에 대한 두려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크게 느껴지고 그분이 바라보고 계심을 믿는 사람들은 교만할 수가 없습니다. 더 큰 욕심을 부릴 수가 없습니다. 왜요? 내 안에 계신 그분이 내 안에서 활성화되어서 죄를, 욕심을 눌러놓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나에게 하나님은 어떤 분 이신가요? 시편 기자들의 마음처럼 그분의 위대하심을 알고 고백할 수 있으신가요? 하나님이 커 보이는 날 우리는 겸손을 실천하게 되지만, 제자들처럼 내 공로나 의로움이 크게 보일 때 교만해지게 됨을 알아 하나님을 크게 보는 신령한 사람으로 살아가기를 다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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