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따라
그날따라
  • 이구영
  • 승인 2024.05.30 21: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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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예수님께서 12명의 제자 중에 세 사람만 따로 부르십니다.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세 사람의 제자들만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으로 올라가셨고 아홉 명의 제자는 남게 되었습니다.

자, 지금 남아 있는 이 제자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요? 제자들 12명은 모두 뽑히고 뽑힌 사람들입니다. 누구 하나 열등한 사람이 없는 우수한 인력들입니다. 그동안 같이 먹고 같이 수고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3명은 선택이 되었고 9명은 남아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그 9명 중에 있다면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요? 인정받지 못했다고 하는 서운함! 불평! 예수님이 안 계신 것에 대한 불안함! 오늘 제자들이 이 절망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계속 함께 계시던 예수님이 안 계십니다. 대장 노릇 하던 베드로도, 심부름 잘하던 요한도 없습니다. 덩그러니 아홉 명의 제자만 남겨졌습니다. 아무 일 없이 예수님 오실 때까지 지냈으면 좋겠는데 안 좋은 상황이 생겼습니다. 목소리 큰 어떤 사람이 귀신 들린 아들을 데리고 와서 그 귀신을 쫓아 달라고, 아들을 치료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런데 그날따라 남겨진 제자들은 자신이 없었습니다. 귀신을 이길 자신도, 병을 고칠 자신도 없었습니다. 누가 하나 먼저 나서서 그 아이를 치료해 주려는 제자도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그 제자들이 다 모자란 사람들 아닙니다. 한때는, 전도자로 사명도 감당했고, 귀신도 쫓아냈었고, 병도 고쳤었습니다.

[눅 9:6] 6 제자들이 나가 각 마을에 두루 다니며 곳곳에 복음을 전하며 병을 고치더라

분명히 이 제자들은 다 능력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그들은 다 무너지고 있습니다. 그날따라!! 귀신도 쫓지 못했고, 병도 고치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그 목소리 큰 아버지는 온갖 야유와 비난을 퍼붓고 있습니다. 그러던 차에 예수님께서 그 장소에 도착하시게 되었고, 그 아버지는 예수님을 향하여 비난 섞인 호소를 하게 됩니다. 선생님! 내 아들을 돌보아 주세요.. 제 외아들이니 꼭 살려주시라고. 마가복음 9장은 이 이야기를 더 자세하게 서술합니다.

[막 9:17-18] 17 무리 중의 하나가 대답하되 선생님 말 못하게 귀신 들린 내 아들을 선생님께 데려왔나이다 18 귀신이 어디서든지 그를 잡으면 거꾸러져 거품을 흘리며 이를 갈며 그리고 파리해지는지라 내가 선생님의 제자들에게 내쫓아 달라 하였으나 그들이 능히 하지 못하더이다

여기서 ‘파리해 간다’ 는 말은 ‘수척해진다’. ‘살이 점점 빠져간다’ 는 뜻입니다. 기운이 없고 말라가고, 어지럽고 말도 못하고.. 결국 예수님께서 아들을 고쳐주십니다. 이 소란이 마쳐질 즈음 예수님께서는 남겨졌던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어야 하며, 너희의 이 불신앙을 언제까지 참아야 하는거니..” 예수님께서 사용하신 이 ‘믿음이 없고’라는 말은 적은 믿음도 없는, 완전한 불신앙을 가리킵니다. 또 ‘패역한’ 에 해당하는 희랍어 원어의 뜻은 ‘얼굴을 돌린다’ 는 뜻입니다. . 윤리적,종교적인 변절을 의미합니다. . 바른 것을 굽게 하고, 말이 어그러지고.. 하나님과 친한 것 같더니 확 돌아선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과거에는 안 그랬는데 오늘 그들은 불신앙의 사람, 패역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어제는 성령충만했는데, 오늘은 마귀의 하수인이 되었습니다. 방금 전 까지는 믿음의 사람이었는데 지금은 불신앙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날따라 왜? 오늘 누가라는 설교자는 묻습니다. 왜 그렇게 되었냐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랑하신다는 믿음! 함께 하신다는 믿음! 세 명만 데리고 가시는 예수님에 대하여 서운한 감정이 일어났습니다. 섭섭하고 서운합니다. 그래서 교인들이 앓는 병 중에 제일 무서운 병이 ‘섭섭한 병’입니다. 섭섭한 병에 걸리면 약이 없습니다. 그냥 다 서운합니다. 내가 한 일만 생각나고 내가 받은 것은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내가 그에게 해 준 것은 생각이 나고, 내가 그에게서 받은 사랑과 관심은 잊어버렸습니다. 지금 제자들은 그래서 서운합니다. 소외되었다는 것이. 무시당했다는 것이, 이렇게 가다가 언젠가 잊혀져 갈지도 모른다는 것이.. 예수님께서 나를 사랑하고 계신다는 것이 안 믿어졌습니다. 믿음의 부재는 곧 의심의 시작입니다. 그러니 무슨 능력이 나오고 기도가 나오고 열정이 나옵니까?

마음이 평안하지 않은데...감사가 없는데... 섭섭함이 밀려오는 날, 우리는 받은 은혜를 떠올려야 합니다. 감사와 찬양을 더 드려야 합니다. 사랑받고 있다는 믿음과 구원의 감격을 노래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날은 마귀가 나를 찾아온 날이기 때문입니다. 섭섭함이 밀려올 때 은혜를 되새김질하며, 사랑하심을 다시 확인하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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