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장례와 관련해 떠오르는 단상 43
죽음, 장례와 관련해 떠오르는 단상 43
  • 안양준
  • 승인 2024.05.22 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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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심 고리키의 「어머니」 속에서

막심 고리키의 본명은 알렉세이 막시모비치 페쉬코프이다. 그의 성장 과정을 알기 위해서는 그의 자전적 3부작을 통해 자세히 살펴볼 수 있다.

어린 페쉬코프가 진흙더미 위에서 아버지의 관이 내려진 구덩이를 내려다보고 있을 때 밑바닥에 개구리들이 있었다. 사람들이 흙을 퍼 넣기 시작하자 개구리들이 도망치려 했지만 흙덩어리 때문에 밑바닥에 내동댕이쳐 졌다.

외할머니가 공동묘지를 빠져 나오며 “넌 왜 울지 않니?”하고 물었을 때 페쉬코프는 “개구리들이 기어 나올 수 있을까?”라고 반문했고 외할머니는 “아니, 나오지 못할 거다. 주여 저들을 도우소서!”라고 대답했다.

페쉬코프의 어린 시절은 마치 아버지가 묻힌 무덤 속에서 기어 나오려고 몸부림치지만 가혹한 힘에 의해 내동댕이쳐지는 개구리의 현실과도 같은 것이었다.

막심 고리키는 레닌과 깊은 우정을 나누었지만 볼셰비키의 잔혹함을 비판함으로 이탈리아로 망명했다가 스탈린의 초청으로 돌아와 소련 작가 동맹 초대 의장에 추대되고 ‘소련 문학의 아버지’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창시자’로 불려졌다.

「어머니」의 내용을 간추려 보면 주인공 닐로브나는 평생 남편의 매질과 술주정을 견디며 살아왔다. 아들인 파벨이 14세 때 남편 블라소프가 아들의 머리칼을 잡고 끌고 가려고 하자 “건드리지 마세요. 이제 더이상 멋대로 하게 내버려 두지는 않을 테니까요.”라며 망치를 휘둘러대자 2년 동안, 자신이 죽기 직전까지 아들에게 눈길도 보내지 않고 말도 하지 않았다.

언젠가 그림 한 장을 가지고 돌아와 벽에 걸었다. 세 사람이 얘기를 나누며 어딘가로 가는 그림이었다. “이것은 부활한 그리스도가 엠마오로 가는 장면이에요.”라고 설명했다. 어머니는 그림이 마음에 들었으나, 이렇게 생각했다. ‘그리스도를 숭상하면서도 교회는 안 나가다니….’

시간이 흐른 후 파벨이 책을 가지고 집에 돌아왔고 남의 눈에 띄지 않도록 읽은 뒤 어딘가에 감췄다. “너는 매일 무엇을 읽고 있니?” “나는 판매 금지된 책을 읽고 있습니다. 이 책은 우리 노동자의 진실을 얘기하기 때문입니다. 만일 발각된다면 감옥에 처넣어 질 것입니다.” 

그녀는 갑자기 숨이 가빠져 눈을 크게 뜨고 아들을 바라보자 타인같은 느낌이었다. 그녀는 아들이 무서워지고 불쌍하게 느껴졌다. “무엇 때문에 그런 책을 읽는 거냐?”하고 묻자 “진실에 대해서 알고 싶어서요.”라며 낮은 소리로 조용히 대답했다.

그녀는 인생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은 피할 수 없는 것처럼 생각되어, 생각없이 따르는 데 익숙해져 있었다. 그래서 슬픔과 안타까움으로 할 말을 찾을 수 없어 조용히 울음을 터뜨릴 뿐이었다.

““너는 어떻게 하고 싶은 게냐?”하고 묻자 “공부를 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고 싶습니다. 노동자는 공부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왜 생활이 이처럼 괴로운 것인지 반드시 알아야만 합니다.”라고 대답했고 어머니는 진지하고 엄숙한 아들의 눈이 불타는 것을 보며 좋았다.

「어머니」의 줄거리는 실제 사건에 기초한다. 1902년 고리키의 고향 근교 공장에서 있었던 노동자 시위 사건에서 취재한 것이다. 소설 속의 어머니와 아들도 실재 인물로 아들인 파벨의 모델은 지역당 조직의 지도자였고, 어머니 닐로브나는 소설처럼 혁명에 적극 참여했다.

만년에 고리키는 스탈린 정부가 추구하는 현실에 회의를 느끼고 정치와 소원해진다. 스탈린은 고리키를 숙청할 생각이었지만 그의 명성의 무게 때문에 감행할 수 없었다.

1880년대 러시아 문학계는 거장 도스토예프스키, 투르게네프가 죽었고, 톨스토이는 문학을 부정하고 종교 세계에 몰입했고 안톤 체홉은 사라져가는 귀족사회에 대한 향수만을 노래하고 있었다. 문학계 전반에 환멸의 풍조가 퍼질 때 고리키는 현실에서 탈출하여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

소설 속에서 어머니의 변화는 무엇인가? 술주정뱅이요 폭력을 일삼는 남편 앞에서 힘없이 당하며 살 수밖에 없었던 한 여인에 불과하였다. 이후 아들의 변화를 바라보며 처음에는 두렵기도 하고 무언가 새로운 것들을 경험하게 되지만 여전히 혼란스러운 그럼에도 아들의 행동에 순응하는 무지한 어머니의 모습이었다. 

이후 아들의 고난과 그의 바람으로 세상을 향해 한 걸음씩 내걷는 그리고 자신이 행동하는 지성으로 어머니의 모습을 보여준다.

「어머니」를 읽으면 한국의 어머니나 러시아의 어머니나 어머니는 결국 하나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 여성은 약해도 어머니는 강하다는 표현도 일맥상통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자녀가 잘 성장해 주기를 바라는 것은 세상 어머니들의 공통점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소설 속의 어머니는 자신이 바른 진리를 갖고 있지 못했다. 오히려 자신보다 똑똑한 아들로 인해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뜨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럼에도 아들 때문에 희생을 감수하고 나서는 공통적인 어머니를 볼 수 있다.

칼 마르크스의 공산주의 이론이 완벽한 이론이었다면 그녀가 눈뜨고 행동하게 된 것들은 당연히 박수를 받아야 마땅한 것이다. 하지만 이 세상의 이론이나 학문은 완전할 수 없고 알지 못하고 맹신할 경우 결국 실패로 끝날 수밖에 없다.

성경은 인간이 만들어낸 이데올로기에 대해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딤전 4:7)라는 표현을 쓴다. 세상 지식으로는 하나님을 알 수 없기에 하나님 없이 인간의 생각과 인간의 방법으로 무엇인가를 이루어내려고 하지만 그런 것들은 바벨을 쌓는 것에 불과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한나는 위대한 어머니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인이었지만 인간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갖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하고 그로 인해 기적을 경험하고 이후에 그 아이를 전적으로 주님을 위해 드릴 때 위대한 사무엘 선지자가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눅 23:28)고 하신 주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며 자녀를 위해 기도하는 어머니가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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