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장례와 관련해 떠오르는 단상 42
죽음, 장례와 관련해 떠오르는 단상 42
  • 안양준
  • 승인 2024.05.15 07: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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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거 앨런 포의 「검은 고양이」 속에서

에드거 앨런 포의 「검은 고양이」는 단편소설에 속하지만 내용면에서는 매우 난해한 소설이라 할 수 있다. 이 소설을 처음 대하는 대부분 독자들의 느낌은 과연 무엇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 저자의 삶을 들여다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포는 1809년 미국 보스턴에서 태어났다. 순회극단의 배우였던 그의 양친 중 아버지는 한 살 때 집을 나갔고 어머니는 두 살 때 결핵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후 부유한 담배 상인의 집에 입양되었다.

버지니아 대학 시절 당시 유행했던 도박을 접하고 술에 빠지고 빚까지 지면서 퇴학을 당하게 되는데 성적은 최상위권이었다고 한다. 27세에 문학청년을 가슴 깊이 숭배하던 13세의 사촌 동생 버지니아 클램과 결혼한다.

33살에 쓴 「모르그 가의 살인 사건」은 추리 소설의 원조라고 불리워지며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는 포의 소설에 등장하는 뒤팽이라는 탐정을 모델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포는 처음에 시인으로 데뷔하였는데 한국인이 즐겨 낭송하는 <애너벨 리>라는 명시도 포의 작품이다.

결혼 후에도 계속되는 염문설, 그런 중에 버지니아는 건강 악화로 스물넷의 나이로 사망한다. 이후 절망에 빠진 포는 아편으로 자살을 시도하기도 하고, 알콜 중독과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렸다. 1849년 볼티모어의 한 술집에서 의식불명 상태로 발견되어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결국 숨을 거두었다. 

그의 죽음에 관해서 수많은 의혹들이 있는데 이를 파헤치려는 마음은 전혀 없다. 그럼에도 관심이 가는 것은 그의 삶과 죽음이 마치 자신이 쓴 소설을 연상시키는 까닭이다.

포는 당시만 해도 널리 알려진 작가가 없던 시절에 시인 보들레르에 의해 프랑스에 알려지게 되었고 도스토예프스키에 의해 천재성을 인정받아 해외에 소개되어 미국 문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검은 고양이」는 내일 교수대에 죽는다고 말하는 주인공의 독백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오늘 나는 내 영혼의 짐을 벗으려 한다는 말을 덧붙인다.

어릴 때 자신은 눈에 띌 정도로 온순하고 심지어 아이들의 비웃음을 받을 지경이었다고 한다. 특히 동물을 좋아해 검은 고양이를 기르게 되었는데 아내는 “까만 고양이는 원래 마녀가 변장해 나온 거래요”라며 전설을 들춰낸다.

고양이의 이름은 ‘플루토’(저승의 신)였다. 늘 가는 곳마다 따라다녔지만 음주벽으로 인해 성격이 바뀌어 사소한 일에 발끈하고 걸핏하면 아내를 욕하고 때리기까지 하게 되어 이러한 난폭함이 애완동물에게도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그래도 플루토에게는 애정이 남아 있었는데 어느날 밤, 곤드레만드레가 되어 집에 돌아오자 고양이가 피하는 것처럼 보여 고양이를 붙잡았는데 놀란 플루토는 이빨로 손에 가벼운 상처를 냈다.  순간 악마와 같은 분노에 사로잡혀 조끼주머니에서 나이프를 꺼내 고양이의 한쪽 눈알을 도려냈다. 이후 자신을 무서워 급히 도망치는 고양이를 보며 울화가 치밀어 고양이 목을 끈으로 졸라 나뭇가지에 매달아 죽였다.

그날 밤 “불이야”하는 소리에 잠을 깼다. 온 집안이 불길에 싸여 아내와 하녀, 그리고 자신만 가까스로 빠져나왔고 모든 재산이 불타버렸다. 그때 벽에 조각처럼 고양이 상이 나타났다. 그후 여러 달 동안 고양이 환영은 떠나지 않았고 양심의 가책으로 고양이를 죽인 것을 후회하였다.

이후 허름한 하류 주점에서 플루토와 비슷한 검은 고양이를 보게 되었다. 주인에게 고양이를 사겠다고 하자 주인은 자기네 고양이가 아니라고 한다.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고양이에 싫증을 느끼게 되었는데 고양이를 데리고 온 다음 날 보았더니 플루토와 똑같이 한쪽 눈이 없는 애꾸였기 때문이었다.

당장 때려 죽이고 싶었지만 전에 플루토에게 한 죄 때문에 그리고 솔직히 고양이가 몹시 무서웠기 때문이다. 억제하기 곤란할 정도로 분노가 폭발할 때 희생자는 언제나 아내였다. 하루는 지하실로 들어갈 때 아내가 뒤따라왔고 고양이가 따라오는 바람에 층계에서 넘어질 뻔하자 화가 치밀어올라 도끼로 고양이를 내리찍으려 했는데 아내가 재빨리 제지하였고 아내의 간섭에 대해 순간적으로 도끼로 아내의 정수리를 쳐 그 자리에서 죽고 말았다.

아내의 시체를 감출 방법을 궁리하다가 굉장한 계획이 떠올라 시신을 감쪽같이 벽에 넣고 회칠해버렸다. 누가 봐도 의심하지 않을 만큼 감쪽같았다. 이후 고양이를 죽일 결심을 했지만 찾을 수 없었다. 그 흔쾌한 기분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살인이 있고 나흘째 되는 날, 경찰들이 달려들어 엄중히 가택수색을 시작하였지만 시체가 발견될 리 없다고 확신했기에 당황하지 않았다.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지하실 이곳저곳을 유유히 활보하였다. 

경찰이 의심을 풀고 떠나려 할 때 기쁨을 억누를 수 없어 승리의 표적으로 무죄를 확신시키고 싶은 충동에 “여러분.”하며 입을 열었다. “… 이 집은 말입니다. 구조가 잘 되어 (무엇인지 이야기하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혀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이 벽들은 정말 견고하게 쌓여 있습니다.”하고 으쓱한 마음에서 갖고 있던 막대기로 벽을 힘껏 후려치자 마치 흐느껴 우는 어린애 울음소리와 같은 소리와 잔인한 비명이 들렸다. 

순간 경찰들이 벽을 허물기 시작했고 엉겨붙은 시체가 나타났다. 그리고 그 시체 위에 애꾸눈의 고양이가 앉아 있었다. 이 모두가 고양이의 잔악한 계교였고 나는 이 괴물을 시체와 함께 벽 속에 넣고 발라 버렸던 것이다. 

이 소설에 대해 “독창적인 예술적 재능으로 현대의 심리주의 문학, 추리소설에 커다란 영향을 끼치고 있는 19세기 최대의 천재적인 시인이자 소설가인 에드거 앨런 포의 소설이다. 이 소설에서도 정신이상이나 정신감응, 그리고 이상심리 상태를 예술의 수단으로 이용해 인간의 내면과 잠재의식을 파고듦으로써 사실적인 추리소설을 보여준다.”라고 누군가 논평하였다. 

소설 속에 이런 글이 있다.

“그 못된 한 마리의 동물이 -그 동족을 내가 죽인 것도 사실을 속이면 그만인데-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형상에 맞추어 그대로 만들어진 인간인 나에게 이와 같이 견딜 수 없는 고통을 주다니!”

인간의 어릴 적 순수함이나 온순함을 무시할 맘은 없다. 나이가 들면서 점점 죄성으로 변해가는 자신의 모습을 부인할 수도 없다. 그럼에도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모습이 어디까지 악해질 수 있는지, 현대인의 모습 속에서 발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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