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풍을 따라
가풍을 따라
  • 이구영
  • 승인 2023.06.08 21: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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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3장 23절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예수께서 가르치심을 시작하실 때에 삼십 세쯤 되시니라’
여기에서 가르치심 이라는 단어인 희랍어 디다케는 누가가 쓴 희랍어 원어에는 없는 단어입니다. 번역하는 과정에서 예수께서 30세 즈음에 시작하셨다. 라고 번역을 하려니까 목적어!! 무엇을 시작하셨는지에 대한 설명이 필요해서 그냥 ‘가르치심’ 이라는 단어를 끼워 넣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가르치심 뿐 아니라 ‘귀신을 쫓아내시고’, ‘병을 고쳐주시고’, ‘말씀을 전하시던 모든 일들을 시작하실 때’ 그분의 나이는 30세 즈음 이셨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영어성경에는 가르치심이라는 단어를 목사직 혹은 성직을 뜻하는 ministry라는 단어로 대체했습니다. when he began his ministry. 그러고 보면 목사는 단순히 가르치는 사람만이 아닙니다. 설교자가 아닙니다. 어쩌면 목사는 ‘목사’가 아니라 ‘목자’입니다. 설교자나 가르치는 교사만이 아니라 목자!! 목자의 일 중에 가르치는 일도, 선포하는 일도 포함이 되는 것이지 단순한 설교자나 교사가 목사는 아닙니다. 돌보는 사람!! 목자!!

23절의 의미는 그런 겁니다. 예수님께서 귀신을 쫓아내시고, 병을 고쳐주시고, 말씀을 가르쳐주시고, 바른 길을 보여주시는 그 모든 일들을 시작하셨을 때.. 단순한 설교자나 교사가 아니라 목자의 삶을 시작하셨을 때 그분은 30세 가량이셨다고. 그리고는 그 젊은 분의 가풍을 소개합니다.

세례를 받으실 때 하늘이 열리면서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하셨는데 어떻게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족보에 이름이 오를 수 있는지를 소개합니다. 누가복음 3장 마지막에 나오는 예수님의 족보! 이 족보는 혈통에 의한 것이 아니라 약속에 의해 만들어지는 족보임을 강조합니다. 예수님의 족보가 혈통에 의해서 맺어진 것이라면 그 족보는 더 구체적이고 장황해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족보는 아주 단순하게 많은 것을 생략하고 소개됩니다. 아담의 자녀들 중에는 가인과 아벨은 생략되고 셋 만이 나옵니다. 노아의 자녀들 중에도 함과 야벳은 생략되고 셈 만이 나옵니다. 아브라함의 자녀들 중에도 이스마엘이나 6명의 동생들(그두라의 소생)은 생략하고 오직 이삭 만이 등장합니다. 이삭의 자녀들 중에도 에서는 생략되고 야곱만 등장하며 야곱의 자녀들 중에도 나머지 11명은 생략되고 유다만 등장합니다.

왜 이래야 했을까요? 예수님의 족보는 언약을 믿는 믿음에 의해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바울 목사님도 이것을 강조한 적이 있습니다. [고후 7:3] 내가 이 말을 하는 것은 너희를 정죄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이전에 말하였거니와 너희가 우리 마음에 있어 함께 죽고 함께 살게 하고자 함이라. 내 마음에 있으면 그게 가족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혈연중심의 족보에서 믿음 중심의 족보로!!

오늘 우리는 예수님의 마음에 있는 사람들이고, 내 마음에 그 사람이 있다면 그도 역시 우리의 가족입니다. 가족은 가풍을 따릅니다. 그분의 ‘돌보시던 삶’ 을 따르는 사람들이고, 사랑해야 하는 이들의 이름을 마음에 품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나는 오늘 예수님 가문에 어울리는 사람일까를 생각해봅니다. 나는 가풍에 맞게 돌보는 삶을 살고 있는지도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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