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 나타난 죽음과 관련된 기록들 46
성경에 나타난 죽음과 관련된 기록들 46
  • 안양준
  • 승인 2023.05.31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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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옷 입은 무리들

성경의 마지막 책인 요한계시록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들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알게 하신 것이라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가 본 것을 다 증언하였느니라”(계 1:1-2)는 말씀으로 시작된다.

요한 자신은 속히 일어날 일이라고 하였지만 그 내용은 인류의 마지막 때 일어날 일들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물론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마 24:36)는 말씀을 감안한다면 ‘속히’라는 표현은 요한 역시 그 때에 대해서는 알 수 없는 상태에서 말한 것이라 여겨진다.

흔히 ‘삼대 칠중 재앙’이라 불리는 일곱 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 재앙이 포함되며, 대환난, 성도의 구원, 사탄의 멸망, 새 하늘과 새 땅 등 놀라운 사건들이 요한계시록에 등장한다.

한 개인의 종말도 아니고, 박해로 인해 수많은 사람이 죽임을 당하는 것도 아닌 마지막 때 있을 인류의 종말,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의 종말에 대해 요한계시록보다 자세하게 기록한 책은 없을 것이다. 혹시 그런 책이 있다 해도 요한계시록보다 진실성을 담보할 수 있는 책은 없을 것이라 확신한다.

요한계시록의 많은 내용 중에 7장에 기록된 ‘구원받은 자들’에 대해 포커스를 맞추고자 한다.

1절에 ‘네 천사’가 등장한다. 스가랴서 6장에 ‘네 병거’가 등장하는데 그들의 정체에 대해 “하늘의 네 바람인데 온 세상의 주 앞에 서 있다가 나가는 것이라”(슥 6:5)고 설명한다. 요한계시록에는 “땅과 바다를 해롭게 할 권세를 받은 네 천사”(계 7:2)라고 하며 “땅의 사방의 바람을 붙잡아 바람으로 하여금 땅에나 바다에나 각종 나무에 불지 못하게 하더라”(계 7:1)고 그들의 역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그들이 그렇게 하는 이유는 다른 천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들을 해하지 말라”고 한 까닭이다.

‘이마에 인침을 받은 하나님의 종들’

그들의 수에 대해 십사만 사천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십사만 사천이라는 수가 기독교에 미친 이상한 영향에 대해 많은 이들이 알고 있을 것이다. 그 이유는 이단과 사이비가 그 수를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주장해 온 까닭이다.

요즘 기승을 부리는 신천지의 경우도 자신들 144,000명만 구원받은 백성이라고 주장한다. 얼핏 그 수가 넘어서는 것 같으니 그 중에 알곡과 가라지가 있다는 주장을 펼친다.

그들의 주장이 엉터리인 것은 초대교회 이후 지금까지 신앙생활을 해 온 수많은 성도들 중에 구원받은 자가 한 사람도 없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설마 그럴 리가? 자신들만 구원을 받는다고? 얼마나 편협한 주장인가? 그런 말에 현혹되어 성경이 말하는 진리에서 멀어지는 자들이 말로 얼마나 어리석은가?

십사 만 사천은 상징적인 수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하늘의 수(삼위일체) 3과 땅의 수(사방) 4가 더하거나 곱해진 7과 12라는 수를 완전수라고 한다. 12의 제곱이 144이고, 만수인 10의 세제곱이 1000이며 이 둘을 곱한 수가 144,000으로 가장 큰 수를 의미하는 것이다.

21장에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을 “그 성은 네모가 반듯하여 길이와 너비가 같은지라 ~ 그 성을 측량하니 만 이천 스다디온이요 길이와 너비와 높이가 같더라 그 성곽을 측량하매 백사십사 규빗이니”(계 21:16-17)라는 말씀도 상징적인 의미로 표현한 것이다.

이마에 인을 치는 것은 출애굽 당시 어린 양의 피를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는 것을 연상시킨다. 14장 1절에 “어린 양이 시온 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이 서 있는데 그들의 이마에는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더라”고 한다. 출애굽기 28장에 “도장을 새기는 법으로 그 위에 새기되 '여호와께 성결'이라 하고 ~ 이 패를 아론의 이마에 두어”라는 말씀도 있다. 여호와께 성결한 자들의 이마에 어린 양의 이름으로 인쳐진 것이라 할 수 있다.

9, 10절에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큰 소리로 외쳐 이르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니”라고 되어 있다.

이마에 인을 친 하나님의 종들 144,000명과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는 같은 자들을 다르게 표현한 것 뿐이다. 정확하게 144,000명이라고 기록했는데 능히 셀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 어떻게 같을 수 있는가? 144,000이라는 숫자가 엄청나게 많은 수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기에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라고 말하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들에 대해 “이 흰 옷 입은 자들이 누구며 어디서 왔느냐?”(계 7:13)고 묻고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계 7:14)고 답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큰 환난은 성경이 말하는 7년 대환난이라 할 수도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모든 시대에 환난을 이겨낸 모든 하나님의 백성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옳다고 여겨진다. 

7년 대환난은 “그때에 큰 환난이 있겠음이라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할 것이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나 그러나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시리라”(마 24:21, 22)는 말씀을 근거로 한다.

요한계시록 7장의 말씀이 여섯 번째 인을 떼고 일곱 번째 인을 떼기 전 삽경으로 기록된 말씀임을 감안한다면 7년 대환난의 전 3년 반의 환난을 이기고 후 3년 반의 환난이 감해진 택하신 자들이 하나님의 보좌에 올라가는 것이라 해도 맞는 것이지만 그때 주님의 재림이 있다면 잠자던 자들이 모두 일어나는 것도 맞기에 모든 시대에 환난을 이긴 모든 자라는 주장도 맞는 것이라 생각된다.

성도들의 인내가 있더라도 우리 죄를 위해 피흘려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가 없으면 구원받을 수 없기 때문에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된 자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구원에 감격하여 하나님과 어린 양께 찬양으로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그들이 다시는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도 아니하리니 이는 보좌 가운데에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라”(계 7:16-17)

하나님이 택하신 종들을 위해 예비해 놓은 주림과 목마름이 없는 곳, 그곳에서 슬픔과 아픔의 눈물을 씻어주신다고 말씀하신다. 이것이 믿음의 사람의 종국이다. 성경이 앞으로 되어질 일을 예언해 주셨기에 그 약속을 붙잡고 천로역정의 길을 걸을 수 있다. 믿음으로 나아가는 자들을 인도하시고, 동행하시고, 붙들어 주시고, 일으켜 세워주시는, 끝까지 승리할 수 있도록 도우시는 주님의 손길이 있기에 힘있게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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