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 일이 기억났어요
5년 전 일이 기억났어요
  • 남광현
  • 승인 2023.05.13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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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 기도회 시간이 30분 뒤로 늦춰진 터라 연세 있으신 교우 분들에게 예배 후 차량운행은 어떤 일보다도 우선이어야 한다. 그런데 축제 기간이 지나고 3주 만에 교회에서의 만남이 즐거운 분들의 대화는 예배 후 더 유쾌하게 들렸으며, 와중에 함께 예배드린 여 집사님들과 사모와의 대화는 교회 마당을 울릴 정도였기에 저절로 귀 기울여 들을 수밖에 없었다.

“사모님, 부활주일 준비하시는데 도움이 못되었는데, 얼마나 수고 많으셨어요?”

“집사님, 주꾸미축제 하시느라 고생 많으셨어요.”

“저야 돈 버는 일하느라 그런 건데요 뭐”

“주일 지키지 못해 사모님께 죄송할 뿐 이었어요”

“음료수에 기도까지 저희는 감사할 것 밖에 없었어요.”

“제가 뭐 한일이 있다고요 당연한 일인걸요. 집사님 혹시 내일 점심에 시간 괜찮으세요?”

“점심요? 저는 약속이 있는데, 사모님 혹시 내일 교회에 무슨 일 있으세요?”

“아니요, 집사님, 권사님들 축제 기간 동안 고생들 하셔서 점심 사 드리고 싶어서 그래요”

몇 해 전, 성탄절이 지나고 여선교회 임원진들이 사모를 찾아 식사초대를 했는데 이례적인 요청이어서 쉽게 답을 하지 못했던 일이 있었다. 이전까지 이런 인사 건넬 때는 작은 봉투를 마련해서 사모에게 전해 주고 목사님과 식사 한 끼 하시라 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필자는 그 때 임원들과 마주 앉아 나누었던 그 한 끼가 매우 좋았었고, 원로 목사님들께서 말씀해 주셨던 교우들과 나누는 식사의 중요성을 깊이 생각해 보는 기회도 되었었다. 때문에 후로 기회가 있을 때마다 교우들과 식사 나누는 것을 일삼았었다. 그런데 이전까지의 한 끼 식사가 교우들의 아픔이 담겨있는 경우가 즐거움보다 더 많았기에 식사자리에서 듣는 이야기들이 교회의 슬픈 역사가 되고 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 권사님의 죽음 이후에야 형제간의 오해가 이해로 바뀌게 된 안타까우면서도 기쁜 이야기, 고향 어촌에서 천국 가기를 기도했지만 타지 요양병원에서 눈물을 흘리셨던 권사님 이야기, 커피 때문에 다시 교회 출입을 하게 되면서 신앙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는 이야기, 최근 90에 가까운 권사님이 손자를 먼저 앞세우고 사모와 식사를 나누며 건네 준 가슴에 묻어야만 하는 이야기들이 결국 교회의 역사인 것이다.

사모의 마음은 축제를 잘 마치고도 기뻐하기보다 온전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내지 못했다는 신앙적 무거움에 안타까워하는 여선교회 회원들을 위로하고 힘을 더해 주기 위함이다.

“사모님, 사실은 제가 내일도 일하러 가야하거든요, 그런데 아점은 괜찮아요. 하하하”

“000집사님, 아점(아침겸 점심-필자주) 같이 하시면 안될까요?”

“나도 괜찮은데…….”

“뭐, 그렇게까지 한 대유 사모님 신경 쓰지 마세유.”

“아니에요, 그럼 내일 이른 점심 같이 하세요. 교회에서 만나는 것으로 해요.”

약속 후 모두가 돌아갔는데, 차량운행을 마치고 돌아올 때까지 집사님 한분이 사모를 기다리고 있다가 마중한다.

“사모님, 잠시 말씀 드릴 것이 있어서요.”“예, 집사님 무슨 말씀을요?”

“사모님, 내일 식사 때 저는 함께 하고 싶지 않네요. 오래전, 목사님과 사모님 식사 대접한다고 하니까 이런 저런 말들을 많이 해서 포기했었거든요.”

“무슨 일이 있으셨는지 저는 잘 모르겠지만, 잊으시고 함께 하셨으면 좋겠어요,”

“예배 후 한마디씩 하는데 저는 5년 전에 그 일이 생각이 나더라고요.”

아픈 과거는 5년이 지나도 그대로 남아있는 법이다. 아쉬운 것은 교회 공동체 구성원 누구도 그 5년 동안 회복의 기회를 마련해 주지 못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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