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아이의 심장이 뛰는 동안 제 딸도 살아있는 거죠
그 아이의 심장이 뛰는 동안 제 딸도 살아있는 거죠
  • KMC뉴스
  • 승인 2023.05.12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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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사 장기기증인 유가족 및 장기이식인 특별 사진전 열려

10여 년 전, 어버이날을 김주희 씨(여, 21세)는 잊을 수 없다. 어버이날이 있기 이틀 전 일요일, 자신과 함께 공원 산책을 나섰던 아버지가 갑자기 쓰러졌다. 당시 10살이었던 김 씨는 눈앞에서 쓰러진 아버지를 살리기 위해 주변 행인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곧장 구급차가 도착하고 병원으로 이송되었지만, 의료진은 깨어날 가망성이 없다는 소견을 전했다. 지주막하출혈로 인한 ‘뇌사’가 추정된다는 것이었다. 3년 전, 아내 권서영 씨(여, 50세)와 함께 장기기증 희망등록을 했던 김일영 씨(기증 당시 45세)는 마지막 순간 가족들의 쉽지 않은 결정으로 생전 약속을 지켰다. 2012년 5월 8일 어버이날, 故 김일영 씨는 당시 자녀들이 고사리 같은 손으로 만든 카네이션을 달아보지도 못한 채, 신장과 간을 기증한 후 세상을 떠났다. 10여 년이 흘러 다시 찾아온 봄, 대학생이 된 주희 씨가 아버지가 있을 하늘을 바라보며 카네이션을 들었다. ‘하늘로 보내는 카네이션’이라는 작품명을 단 주희 씨의 사진이 5월 11일, 갤러리 아트스페이스 선에 걸렸다. 5월 11일부터 15일까지 5일간 (재)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에서 진행하는 로즈디데이 특별 사진전 <장미, 찬미>에 선보인 60점의 사진작품 중 하나이다.

2021년 3명의 생명을 살린 꼬마천사 전소율 양의 심장을 이식받은 아이의 근황이 담긴 편지도 최초로 공개돼 _ “덕분에 뒤늦은 돌잔치를 한 저희 아이가 따님과 같은 판사봉을 잡았다.”

5월 가정의 달이 되면 장기를 기증하고 하늘로 떠난 가족을 더욱 그리워하는 뇌사 장기기증인 유가족을 위로하고, 기억하기 위한 5월 14일 로즈디데이를 맞아 진행되는 특별 사진전에는 유가족 11가정의 사진과 장기이식인 10명의 사진이 전시됐다.

2021년 故 전소율 양(당시 5세)이 떠나기 전까지 품고 있던 호랑이인형과 나란히 그네에 앉은 아버지 전기섭 씨(남, 46세)의 사진에서는 깊은 그리움이 묻어난다. 같은 해 6월, 아내를 먼저 폐암으로 떠나보낸 전 씨는 얼마 지나지 않은 11월 딸 소율 양을 뇌사로 떠나보내야 했다. 당시 소율 양은 심장과 신장을 기증해 3명의 아이를 살렸다. 이번 사진전에는 얼마 전 전 씨가 소율 양의 심장을 이식받은 아이의 부모로부터 받은 편지도 공개됐다. 편지에는 소율 양의 심장이 거부반응 없이 이식인의 몸속에 잘 적응해 열심히 뛰고 있다는 내용과 함께 기증 당시 언론을 통해 소개된 전 씨의 인터뷰를 보고 함께 울었다는 내용이 담겼다. 또한 소율 양의 장기기증 덕분에 아이가 뒤늦은 돌잔치도 하게 됐다고 전한 부모는 “돌잡이 때 저희 아이가 따님과 같은 판사봉을 잡았다.”고도 편지에 썼다. 이식인의 부모는 기사에 소개된 소율 양의 사진을 핸드폰에 담아두고 다니며 소율 양을 잊지 않으려 한다는 진심도 전했다. 국내에서는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률에 의해 기증인 유가족과 이식인이 서로를 알 수 없도록 정보 공개를 제한하고 있어 전 씨와 같이 편지를 받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전 씨는 “소율이의 심장을 이식받은 아이가 건강히 살아가는 동안, 우리 소율이도 함께 살아있는 것이라 생각한다.”라는 소감을 전했다.

오후 6시에 멈춘 아버지의 시계, 심장을 이식받은 20대 청년의 출근길 등… 유가족 및 이식인 사진 60점, 장기기증 먼 일 아닌 우리 이웃의 일이라는 사실 알려

로즈디데이 특별 사진전 초입에는 ‘당신이 생명은 누군가의 삶속에서 가장 빛난 별이 되어 반짝이고 있습니다.’라는 문구와 함께 기증인과 이식인의 삶이 교차되며 계속해서 이어진다는 의미를 담은 장기기증 연대기가 눈에 띈다. 이어 매일 오후 6시면 하교하는 아들을 기다리던 아버지의 시계와 남편과 함께 걸었던 한강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는 아내, 학사모를 들고 졸업식 날 세상을 떠난 아들을 추억하는 어머니의 모습 등을 담은 사진에서는 절절한 그리움이 묻어난다. 다른 한편에 전시된 사진에서는 생명력이 느껴진다. 가까운 거리도 걷기 힘들 정도로 심장이 아팠다 이식을 받은 후 취업에 성공한 20대 청년의 출근길, 신장과 췌장을 동시 이식받은 후 365일 착용해야 했던 인슐린펌프로부터 해방된 한 여성의 힘찬 드럼 연주 등 장기이식인의 두 번째 삶이 사진에 담겼다. 60점의 사진 속 인물들은 하나같이 익숙한 우리 주변 이웃의 모습으로 장기기증이 먼 이야기나 특별한 누군가가 실천하는 일이 아니라 우리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한편, 지난 해 장기기증 희망등록자는 69,439명으로 2021년 대비 22%나 감소했다. 뇌사 시 장기기증자 역시 2022년 405명으로 최근 10년 중 가장 저조한 상황이다. 반면, 이식대기자는 매년 3천여 명씩 가파르게 증가해 매일 6.8명이 장기이식을 기다리다 사망하고 있다. 이번 사진전을 통해 소개된 장기기증인 및 그 가족들의 고귀한 실천과 장기이식인의 희망찬 삶의 모습이 장기기증의 진정한 가치를 알려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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