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 나타난 죽음과 관련된 기록들 39
성경에 나타난 죽음과 관련된 기록들 39
  • 안양준
  • 승인 2023.04.11 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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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와 배교

다니엘의 세 친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풀무불에 들어간 사건은 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놀라운 감동을 안겨 준다. 당시 바벨론 제국의 느부갓네살 왕이 두라 평지에 거대한 금신상을 세우고 그 앞에 절하지 않는 자는 맹렬히 타는 풀무불에 던져 넣으리라고 선포하였다.

느부갓네살이 금신상을 건립한 사건은 다니엘서 2장의 느부갓네살 왕의 꿈을 연상하여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다니엘을 통해 해몽한 꿈의 내용은 한 큰 신상에 관한 것이었다. 그 신상은 머리는 순금, 가슴과 팔은 은, 배와 넓적다리는 놋, 종아리는 쇠, 발은 쇠와 진흙이 섞여 있다. 다니엘은 왕이 금머리라고 하는데 머리 이하에 대해 많은 신학자들의 해석은 은은 메대와 바사 제국, 놋은 헬라 제국, 다리는 로마제국, 발은 로마제국 이후 세상 종말 이전까지를 가리키며, 다시 다니엘의 해석으로 뜨인 돌이 신상을 부서뜨릴 것이고 하나님이 한 나라를 세우는데 영원히 설 것이라 하였다.

그리고 다니엘서 3장에 느부갓네살이 금신상을 세운 것이다. 금신상을 세운 시기에 대해 많은 이들이 예루살렘을 함락시킨 BC 586년으로 추측한다. 즉 2장의 꿈 사건이 있은 후 16년이 지난 때라는 것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꿈에 나타난 신상은 머리만 금이지만 느부갓네살이 만든 신상은 온 몸이 금으로 되어 있다. 금 머리가 왕이라고 하였을 때 온 몸을 금으로 하여 자신이 세운 바벨론 제국이 영원하길 꿈꾸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신상의 크기는 높이가 30미터, 너비가 3미터의 거대한 규모였고, 낙성식에 바벨론 제국의 최고위층 관리들을 모두 불러모았는데 수백 명에 달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그리고 수많은 악기가 동원되어 한 소리를 낼 때 모든 사람이 그 앞에 절하도록 한 것이다.

그런 중에 다니엘의 세 친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절을 하지 않고 서 있었던 것이다. 당연히 이를 본 자들이 왕에게 참소하였고, 이에 대해 들은 왕이 노하고 분하여 결국 그들은 왕 앞으로 불려가 서게 된다. 평소 다니엘과 세 친구를 총애했던 왕이기에 한 번의 기회를 허락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 풀무불 가운데 넣을 것인즉 “능히 너희를 내 손에서 건져낼 신이 누구이겠느냐”라고 하였다. 왕의 기억에 자신의 꿈을 해몽해 준 신, 다니엘과 세 친구들이 섬기는 여호와의 존재에 대해 모르지 않지만 예루살렘 함락 후 자신의 모습을 한 신상을 세울 정도로 교만해졌기에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그때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느부갓네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라고 대답한다.

결국 풀무불에 던져진 그들이지만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사 43:2)라는 예언처럼 오히려 느부갓네살 왕의 표현에 의하면 그들과 같이 한 넷째의 모양은 ‘신들의 아들’과 같다고 하였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구원의 확신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구원의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고난 당하기 전 구원하실 수는 없었을까? 당연히 가능하다. 하지만 가끔 특별한 목적을 두고 고난의 자리에 이르도록 하실 때도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사로가 죽기 전 치료하실 수도 있으셨지만 걸음을 늦추신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함이었다. 구원의 방법을 결정하는 것은 우리의 영역이 아니다. 단 하나님만이 유일하신 신이기에 왕의 위협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잇는 것이다.

순교와 배교...

하나님의 구원의 방법 중에 순교도 포함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가? 예수님의 제자들 대부분이 순교하였다는 사실은 결코 구원의 실패를 의미하지 않는다.

시오노 나나미가 쓴 「로마인 이야기」에 로마 대화재의 범인으로 몰려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순교 당하는 상황에 대해 자세하게 적고 있다. 네로 황제가 그리스도인들을 타켓으로 삼은 이유가 무엇 때문일까?

당시는 로마제국의 황제를 신격화하였는데 주변의 모든 나라들이 다신교였기에 아무런 마찰을 일으키지 않았다. 단 유대인들만이 이에 대해 반대했고 유대인들의 종교를 인정한 로마 제국은 유대인들에게만 예외를 두었다.

유대인들과 문제가 발생하지 않은 이유는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종교를 다른 이에게 강요하지 않는다는 점을 알기 때문이다. 오히려 유대인들의 선민사상은 타민족을 배척할 정도였다. 하지만 기독교는 전혀 다른 차원이다. 즉 황제의 신격화에 반대하지만 자신들이 믿는 교리를 적극적으로 전파했기에 위험 요소일 수밖에 없었고 결국 기독교인을 화재의 주범으로 몰아간 것이다.

“일부는 야수의 모피를 뒤집어쓰고 들개 떼에 물려죽었다. 다른 이들은 로마 시대의 일반적인 처형법이었던 십자가에 매달려 죽었다. 나머지는 밤의 구경거리로 남겨졌다. 땅에 박은 말뚝에 한 사람씩 묶은 다음, 산 채로 불을 붙이는 것이다. ~ 이들이 더 무거운 죄를 지었다 해도, 처형 방식의 잔혹함은 그것을 보는 시민들의 가슴을 동정심으로 가득 채웠다.”

죽음을 각오하는 순교자들의 신앙이 결국 로마를 기독교 국가로 만든 주요인이 된 것이다.

하지만 기독교 역사에 순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와 반대인 배교도 역사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엔도 슈사쿠의 「침묵」이라는 책이 있다. 페레이라 신부가 배교했다는 소식을 들은 포르투칼 예수회에서 진상을 밝히기 위해 파견한 인물 중 하나가 로드리고 신부이다. 일본에 도착한 그는 자신으로 인해 고문 당하는 이들의 신음 소리를 들으며 고통스러워 하다가 결국 배교하게 된다.

이 책을 읽은 이들이 이것이야 말로 진정한 사랑이라고 평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과연 그러한가?

마지막 때가 가까울수록 배교의 상황은 점점 많아질 것이라고 성경은 가르치고 있다. 진정한 신앙은 하나님에 대한 확신이다. 앞에서 말한대로 구원의 방법은 여러 가지이다. 하지만 끝까지 믿음을 지키는 자에게는 반드시 구원이 약속되어 있다는 것을 확신하는 것, 당시 정황을 놓고 본다면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배교한다 하더라도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이성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역사를 신뢰하며 믿음의 선진들의 길을 뒤따르는 것이다.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심한 고문을 받되 구차히 풀려나기를 원하지 아니하였으며 또 어떤 이들은 조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련도 받았으며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로 죽임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히 11:3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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