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에 지고 난 화풀이?
선거에 지고 난 화풀이?
  • 남광현
  • 승인 2023.03.20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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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 교회세유?”

“예, 장로님”

“그러구 저러구 내일 주일 대표 기도가 저 잖아유?”

“예, 그렇지요.”

“목사님, 저 순서 좀 옮겨 주셔야 것네유, 아무래도 기도하기 어려울 것 같아유.”

“아니, 어디 편찮으세요?”

“그게 아니라 지금 저희 식구하구 0권사하구 사달이 났구먼요.”

“죄송해요, 목사님 어려우셔도 그렇게 해 주세유.”

“예, 장로님 염려하지 마시고 함께 기도해요.”

이미 예상했던 일 이었기에 자초지종을 길게 여쭤볼 필요가 없었다. 어촌에서 20년을 살아오면서 어떤 선거가 되었든지 자신의 일가와 연관이 있는 선거라면 여지없이 뒷말과 탈이 난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번 선거는 수협 조합장 선거였으며 2년 전부터 선거 과열 조짐이 일어났었다고 후일담을 내놓을 정도로 시끄러웠던 모양인데 후보로 나선 3명 중 2명이 교우 가정의 일가였다. 후보 중 한 분은 교회 장로의 사위였으며 다른 한 분은 권사의 시누 남편 되는 사람이었다. 권사의 시누 남편은 지난 선거에서 낙선의 경험이 있었기에 이번만큼은 반드시 당선된다는 의지를 강하게 보였으며 장로의 사위는 지역의 젊은 일군으로 정평이 날 정도로 지역사회에서 많은 역할을 해 오는 중 자의와 타의에 의해 선거에 나서게 된 상황이었다.

필자는 약 1년 전쯤부터 교우들 사이에 수협 조합장 이야기만 나오면 서로 조심하는 분위기를 느낄 수는 있었지만 왜들 그러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이리되고 보니 선거판에서 교우들이 보여준 모습이 지혜롭다는 생각이 든다. 아쉬운 고백이지만 필자는 이런 지혜가 부족해서 목회자 간의 관계가 매우 불편해진 경험이 있어 더욱이 어촌 생활이 전부인 교우들의 판단이 대단하다고 여겨졌다. 장로와 부딪친 0권사도 전화를 주었는데 아무 일 없다는 듯 응대했다.

“목사님, 저 0권사예요”

“예, 권사님 그렇지 않아도 지방 여선교회 계삭회 때문에 전화 드리려 했는데요”

“0권사(남편)가 마을을 떠나겠다고 하네요. 저도 이번에는 못 말리겠구요”

“무슨 말씀이세요? 떠나시다니요?”

“목사님은 벌써 소식 들으신 줄 알았는데 아직 모르시나봐유?, 장로님네하고 시끄러웠어요.”

“예, 그 말씀은 조금 전 장로님 전화 주셔서 잠깐 들었어요. 권사님 시누이가 당선되셨다고요. 축하드려요”

“장로님이 그 말씀만 하시던가요? 사위가 낙선한 것이 저희 때문이냐고요? 선거에 졌다고 우리에게 화풀이 하는 것으로 밖에 말이 안 돼요.”

“권사님, 왜 그렇게 생각하세요. 남도 아니고, 그리고 교회를 생각하셔야지요.”

“목사님, 참 마음이 아프네요.”

“권사님, 함께 기도해요. 교회를 위해서도 그렇고 권사님 가정을 위해서도 주의 도우심이 필요해요. 무엇이 우선인지 생각해 보시자구요.”

주일을 맞이하는 목사의 마음이 매우 무거워졌다. 낙선의 아픔을 보듬고 당선의 기쁨을 함께 나누면 될 일로 예상했던 것이 막상 교회의 아픔으로 확장되는 모습에 교우들의 성숙한 신앙의 필요성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래도 교회의 중직들답게 교회 전체를 생각하고 교우 간의 관계를 위해 드러내지 않고 서로 조심하며 그동안 있었던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애쓰는 모습은 목사에게 자신들의 부족함을 드러내고 도움을 요청하는 일로 여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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