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예요
40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예요
  • 남광현
  • 승인 2023.03.04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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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창립 40주년 되던 해인 2020년 1월 교회주변의 2만평이 넘는 임야를 선교사들을 위한 사업 목적으로 기증을 받았다. 감리회 모든 교회들의 재산관리 방법과 동일하게 교단내 재산관리 주체인 유지재단에 편입시키고 종교목적에 맞도록 사용하겠다는 서약서까지 제출하는 과정을 마쳤다. 단 지방세인 취득세 납부유예 기간이 3년이라는 시한부 조건이 따랐다. 즉, 3년 안에 종교목적의 개발행위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올 해가 3년차인지라 그동안 종교목적의 개발행위를 평가받았고 결과, 지방세 납부를 피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을 고지 받게 된 현실에서 교우들의 동요가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하든 목사가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는데 교우들의 기도는 목사의 책임을 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찾아보자는 방향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듣게 되었다. 감사했다.

이를 계기로 필자는 교우들과 함께 선교지 탐방을 계획했다. 이유는 하나님께서 어촌의 작은 교회에 큰 꿈을 꾸게 하신 목적이 무엇인지 확인해 보고자 하는 것이었다. 장소는 부산 가덕도에 위치한 가덕교회로 선교사 마을을 이루어 가고 있는 교회로 정했다. 이동거리가 너무 멀어 처음 계획할 때는 남선교회 회원 중 시간이 되는 분들에 한해서 교회 12인승 승합차로 다녀오는 것으로 했으나 함께 하고 싶다는 교우들 때문에 결국 28인승 관광버스를 임대하게 되었다.

“여러분들 오늘 먼 여정이기에 각오를 단단히 하셔야합니다. 버스 안에서만 왕복 9시간입니다”

“목사님, 걱정하지 마세요, 버스가 이렇게 좋아서 힘들지 않을 것 같구먼유”

“오늘 우리는 나들이 가는 것이 아니라 특별한 사역을 감당하는 교회를 방문하는 것입니다. 앞으로 우리교회가 해야 할 사역이 무엇인지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져 보려고 탐방하는 것 아시지요? 많이 힘드실 것입니다.”

“목사님, 그래도 좋아요. 우리교회가 이렇게 밖으로 나가는 것이 오랜만이잖아요?”

목사의 속내를 아시는지 모르시는지, 알 수 없었지만 함께하는 교우들의 모습은 수학여행 가는 학생들의 모습과도 같아 보였다. 현지에 도착해 목사 내외분과 함께 점심식사를 하기로 계획하고 식당 소개를 부탁했고, 전날 오후에 1인당 식대가 8,000원이라는 것을 들었으며 당일 아침 출발하고서 식당 주소를 건네받았다. 필자 내외는 식대 문제로 전날 입씨름을 하기도 했다. 목사는 일정의 목적이 맛난 것 대접하는 것이 아니라 선교지 탐방이라는 입장이었고 사모는 목적도 목적이지만 그 먼 곳까지 모시고 가는데 잘 드시게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결국 식당 바꿔주지 않으면 사모가 가지 않겠다고 으름장까지 놓았다. 순간, 사모 말을 들어야 하나 싶었지만 “사순절 기간”이라는 어설픈 이유를 대고 소개시켜 준 식당을 고집했다.

무리 없이(?) 점심식사를 마치고 교회를 탐방하는데 버스가 진입할 수 없어 걸어야만 했다. 난감했다. 필자를 비롯한 교우들 대부분이 무릎 관절과 허리 치료를 받는 분들이었다. 체감 상 30분 가까이 언덕 오르막길을 걸어서 교회에 도착한 교우들은 어떤 말도 없이 예배당으로 들어섰다. 필자는 힘들어 하는 교우들 보기가 민망해 교회 밖에서 서성이며 담임 목사 오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목사님, 여기서 예배를 드리나요?”

“아니요, 예배가 아니라 이 교회 목사님께서 선교사 마을 조성에 관해 소개해 주시고 담화 나누기로 했어요.”

“그래요, 다들 여기서 예배드리는 줄 알고들 있어서요.”

“제가 아침에 버스 안에서 설명 드렸었는데요. 나눠드린 가이드북 일정표 보시면 되는데……. 제가 들어가서 말씀드릴께요.”

밖에서 서성이는 목사가 보기에 안쓰러웠는지 원로 장로님이 말을 건네주었다. 교회 담임목사와 1시간 반이 넘는 담화를 나누며 우리 교회가 준비해야 할 일들에 관해 생각을 정리하는 교우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힘든 내색 없이 궁금한 것들을 열심히 묻고 나누는 교우들이 감사했다. 마무리하면서 준비한 아주 적은 선교비를 전달하려는데 교우들도 저마다 헌금 봉투를 내미는 것이었다. 사전에 안내하지 않았기에 기대하지 못한 일이었다. 미쳐 헌금봉투를 준비하지 못한 권사님은 조용히 필자에게 교회봉투를 찾기도 했다.

값싼 점심, 구경거리 하나 살피지 못하고 되돌아 와야 하는 여정, 단체 사진 한 장 남길 수 없이 돌아온 힘들기만 한 여정이었다. 그럼에도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는 찬양이 불려졌다. 우리교회가 변했다. 아니 교우들이 믿음이 든든해 졌다. 감사하다.

“목사님, 우리교회가 이렇게 좋은 버스타고 나가기는 처음이네유”

“예?”

“우리 교회가 버스를 대절해서 다녀오는 것이 제 기억으로는 40년 만에 처음인거 같아유”

“맞아유, 처음이예유, 이전에는 없었어유”

걸음이 어려워 그렇게 고생했음에도 그저 감사한 것뿐이라고들 말씀 해 주시는 교우들의 순수한 믿음의 모습이 필자의 마음에 감사의 눈물을 멈추지 않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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