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룽지 숭늉만 삼년 끓였어요.
누룽지 숭늉만 삼년 끓였어요.
  • 남광현
  • 승인 2023.02.18 10:4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봄 대심방 중 한 집사님 가정에서 이루어진 대화 중에서 깊은 가정 사와 목회자 내외에 관한 염려 그리고 교회 성장을 간절히 바라는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집사님, 4년 만에 심방을 하게 되었네요”

“벌써요?”

“코로나19로 심방을 멈춘 지 벌써 4년이에요.”

“그러네요.”

“바깥 어르신이 돌아가시기 전에 교회에 나오셨다면 아마도 마을 어르신들 중에 전도되신 분들이 많았을 텐데요?”

“그렇지요, 그렇지 않아도 교회 나간다, 나간다, 여러 번 말했는데 아쉽지요. 그 양반이 한다면 하는 분이여서 교회 나왔다면 주변에 여러 사람 교회로 안내했을 거예요”

“돌아가시기 전, 병상에서 성도님 마음속에 있던 생각이 어떠하셨는지 저는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납니다. 교회에 도움이 되 주시려고 항상 애쓰시던 모습도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그럼유, 교회는 나오지 못했지만 그 양반은 늘 교회편이였지요”

60이 넘어 교회에 나오신 집사님은 대를 이은 마을 토박이로 여러 면에서 영향력이 있는 분이었으며 당시 교회에 나오신 것이 마을의 이야기 거리가 될 만큼 특별했었다. 필자의 입장에서도 매우 이래적인 일로 여겨졌고 따라서 어촌 목회에 있어 전도의 대상에 관한 새로운 접근을 모색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집사님의 집안과 인척들이 마을에 적지 않게 거주했기 때문에 마을의 여러 일들에 관여하는 것이 당연했고 바로 밑 남동생이 마을 이장이 된 것도 이상하지 않았다. 8년 동안 이장으로서 묵묵히 마을을 섬기는 모습도 남달랐는데 그분의 가정 사를 들으면서 이런 분들에게 복음이 전해져야 한다는 생각이 더 분명해졌다.

“집사님, 부모님도 마량분이세요?”

“그럼유, 아버님이 일찍 돌아가시고 어머님이 고생 많으셨지요.”

“그렇군요.”

“그리고 엄니 때문에 처남의 댁도 고생 많이 했어요. 언니와 여동생은 나가 살았기 때문에 엄니가 편찮으실 때 처남의 댁이 혼자서 병간을 다했거든요.”

“집사님, 동생 내외분 성품이 워낙 좋으시잖아요.”

“마량사람들 다 아는 일이지만, 장로님 부모와 우리 어머니가 대단했었어요. 그런 분을 병간한다는 것 쉬운 일 아녔어요.”

“무슨 말씀인지 이해됩니다. 동생 내외분 두 분다 말씀 없이 실천하시는 분들이시지요.”

“처남의 댁이 삼년동안 하루 세끼 누룽지 숭늉 끓여 댔다면 말다했지요. 엄니가 위암으로 돌아가셨는데 나중에는 숭늉밖에 못 드셨어요, 그것을 처남댁이 삼년동안 혼자 다 해 냈어요.”

“대단하시네요, 저는 목사님 식단 때문에 보통 힘든 일이 아닌데요.”

“사모님이야 교회일 보랴, 기념관일 보시랴 너무 바쁘시잖아요. 저는 한 동네 살아도 처남댁처럼 엄니 살피지 못했었어요.”

예배를 드리고 다과를 나누며, 집사님 가정 사에 관해 말씀하신 것이 마음에 걸렸는지 쓸데없는 말에 신경 쓰지 말라고 다짐을 받는다.

“말주변이 없어 목사님과 교회에 도움이 못 되요. 마음으로는 이 사람들이 교회에 나와야 되는데 하지만 교회 나오라는 말을 잘 못하고 사네요.”“무슨 말씀이세요, 그런 말씀이 어디 있습니까? 지금 저희 내외에게 아주 큰 힘이 되어 주시잖아요.”

“처남의 댁이 삼년동안 누룽지 숭늉 끓인 것처럼 10년 넘게 저희 내외 목회에 든든한 버팀목이 되 주셔서 저희가 목회할 수 있는데요, 감사해요.”

집사님의 말씀 속에서 믿음의 표현을 읽을 수 있어 행복한 오전 심방이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