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 나타난 죽음과 관련된 기록들 29
성경에 나타난 죽음과 관련된 기록들 29
  • 안양준
  • 승인 2023.02.01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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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높은 곳을 꿈꾸다가 모든 것을 잃은 자의 죽음

구약성경 에스더서는 한 편의 소설과 같다. 하지만 역사적 사실을 근거로 현대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전히 절기로 지키는 ‘부림절’의 소재가 되는 엄청난 사건을 다루고 있다.

에스더서는 제목에서 볼 수 있듯 여주인공 에스테르에 관한 이야기로 그 이름이 별(Star)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에스더의 본명은 하닷사로 부모 없이 사촌 모르드개의 손에서 자랐으며, 궁녀를 주관하는 내시 헤개가 정한 것 외에는 다른 것을 구하지 않았으나 모든 보는 자에게 사랑을 받을 정도로 용모가 곱고 아리따운 처녀였다.

인도에서 구스까지 127개 지방을 다스리는 거대한 페르시아 제국의 아하수에로(크세르크세스) 대왕이 치세하던 시기의 겨울 궁전 수산을 배경으로 폐위된 왕후 와스디를 대신하여 새로운 왕후를 간택하는 사건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에스더서를 풀 수 있는 열쇠를 제공하는 핵심 단어는 ‘섭리’이다. 물론 이 단어는 구약성경에서 찾을 수 없음에도 실제 모든 역사를 이끌어가는 실체이다. 그리고 에스더서는 다른 어떤 책보다 하나님의 섭리를 잘 보여주고 있다.

무려 6개월에 걸쳐 이어지는 성대한 잔치, 그리고 다시 수산의 백성을 위한 7일간의 잔치에서 왕이 충동적으로 왕후를 초청하였고 이를 거부하자 폐위시킨 사건으로 인해 아무런 가문의 배경도 없는 에스더가 왕후로 간택된 것도 하나님의 섭리였고, 대궐 문지기였던 모르드개가 우연히 왕의 암살 음모를 알게 되고 그로 인해 궁중 일기에 기록되었음에도 아무 공로도 치하하지 않았던 것 역시 하나님의 섭리였다.

하만에 의해 모든 유대인을 죽이고 도륙하고 진멸하고 재산을 탈취하라는 조서가 전국에 반포되고, 모르드개를 죽이기 위해 높이가 오십 규빗(22.5m) 되는 나무를 세우고 아침 일찍 왕에게 찾아오지만 전날 밤 잠을 이루지 못한 왕이 역대 일기를 읽고 자신을 죽음에서 구해준 모르드개에게 존귀와 관작을 베풀지 않았음을 알게 된 것도 하나님의 섭리였다.

에스더 서에는 하나님의 이름이 단 한번도 언급되지 않지만 모든 사건 하나하나에 하나님의 섭리가 있음을 볼 수 있다.

하만이라는 인물을 소개하면 아각 사람 함므다다의 아들로 그 지위가 모든 대신들 위로, 왕의 명령에 따라 대궐 문에 있는 모든 신하들이 그에게 꿇어 절하였다고 한다. 보다 정확히 표현하면 아말렉의 왕족이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그가 분노하게 된 원인이 유독 모르드개만이 자신에게 절하지 않는다는 사소한 이유였지만 그로 인해 유대인 진멸 조서까지 작성할 정도로 옹졸한 성격과 잔인한 성품의 소유자라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많은 신학자들이 하만을 적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인물이라 주장하는데 이들이 내세우는 근거가 에스더서 7장 6절의 ‘이 악한 하만’이란 단어를 히브리어 알파벳이 지니는 고유 숫자로 표기하면 적그리스도를 나타내는 ‘666’으로 계산된다는 것이다.

적그리스도가 용(사단)에게 권세를 받은 것처럼 하만이 바사 왕을 통해 권세를 얻게 되고, 적그리스도가 경배를 받은 것처럼 하만도 꿇어 절함을 받고, 적그리스도가 성도들과 싸워 이겨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지 못하게 한 것처럼 하만이 전 유대인들을 진멸하려 하고, 적그리스도가 불과 유황 못에 던져진 것처럼 하만이 나무에 달려 죽게 되는 것을 통해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그렇다면 하만과 대조되는 에스더는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인물로 볼 수 있다. 만민을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처럼 온 민족을 구원한 에스더,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처럼 “죽으면 죽으리이다”(에 4:16)라는 일사각오의 신앙으로 나선 에스더, 하늘 보좌를 버리신 예수 그리스도처럼 왕후의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나서는 에스더, 죽음에서 부활하셔서 하나님 우편에 앉으신 예수 그리스도처럼 그녀의 희생으로 얻게 된 구원을 기념하며 오늘날까지 절기를 지키는 것은 에스더의 이름을 기념하기 위함이라 할 수 있다.

당시 페르시아 제국의 규례는 왕의 명령없이 누구도 알현할 수 없도록 되어 있었다. 에스더의 말처럼 그녀가 왕후의 신분이었음에도 부름을 입어 왕에게 나가지 못한 지가 이미 삼십 일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그녀의 행동은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그때 모르드개가 한 말이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버지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에 4:14)는 것이다.

하나님이 남다른 재능을 주셨거나 좀더 풍족한 재물이나 명예로운 지위를 누리게 하셨다면, 그것은 우리에게 맡기신 사명을 보다 효율적으로 수행하도록 하기 위함이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이를 알고 있는 에스더는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왕의 앞에 나아간 것이다.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 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와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에 4:16)

하만은 일인지하(一人之下) 만인지상(萬人之上)의 지고한 위치에 만족하지 못하고 넘볼 수 없는 욕심을 부리고 있다. 그가 유대인을 진멸하는 조서를 내릴 경우 왕에게 바치기로 한 은 일만 달란트는 당시 페르시아 제국이 1년 동안 거둬들이는 세금의 2/3에 해당하는 막대한 금액이다. 물론 유대인을 진멸할 때 그들의 재산을 탈취하라는 조건을 내건 이유가 더 큰 이익을 목적으로 한 것임을 알 수 있지만 그럼에도 그가 막대한 부를 소유하고 있었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리고 자신을 가리켜 하는 말로 착각하여 한 것이지만 “왕께서 입으시는 왕복과 왕께서 타시는 말과 머리에 쓰시는 왕관을 가져다가 그 왕복과 말을 왕의 신하 중 가장 존귀한 자의 손에 맡겨서 왕이 존귀하게 하시기를 원하시는 사람에게 옷을 입히고 말을 태워서 성 중 거리로 다니며 그 앞에서 반포하여 이르기를 왕이 존귀하게 하기를 원하시는 사람에게는 이같이 할 것이라 하게 하소서”(에 6:8-9)라고 요구한 것을 보면 그가 얼마나 교만한 자인가를 볼 수 있다.

왕이 입는 왕복, 왕이 타는 말, 왕관을 쓰게 하라는 것은 결국 왕의 자리를 넘보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자신을 위하여는 욕심이 하늘을 찌르고, 남에 대하여는 일말의 용서도 용납지 않는 자의 결말이 무엇인가? 결국 자신이 낸 꾀에 빠져 자신이 죽고 만 것이다.

인간이 처음 저지른 죄악은 교만의 죄였다.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창 3:5)라는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 선악과를 먹은 것이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자기의 형상대로 만드셨고, 코에 생기를 불어넣어 생령이 되게 하셨지만 그 정도로 만족하지 못하고 신과 같은 반열에 오르려는 것이 인간의 욕심이다.

그가 자신이 위험에 처했음을 깨달았을 때 왕후 에스더에게 생명을 구하는 모습을 상상해 보라. 페르시아 제국의 2인자로서 부귀영화와 최고의 권세를 누리던 자가 자기 목숨을 부지하는데 급급해 비열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한 없이 교만했다가 한 없이 비굴해 질 수 있는 것이 인간이기에 오늘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은 욕심과 교만에 대한 경계심을 더욱 높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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