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 나타난 죽음과 관련된 기록들 28
성경에 나타난 죽음과 관련된 기록들 28
  • 안양준
  • 승인 2023.01.25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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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으로 인해 발생하는 수많은 죽음

전쟁으로 인한 비참한 결과들은 수없이 많겠지만 그 중 가장 큰 것은 나라의 멸망이라 할 수 있다. 한 사람의 죽음이나 수많은 사람들의 죽음도 ‘죽음’ 그 자체로 대단히 안타까운 일이라 할 수 있겠지만, 가장 끔찍한 전쟁의 결과는 나라 자체가 멸망하는 것이다.

다윗의 자손으로 왕위가 계승되었던 남유다의 경우 북이스라엘과 비교할 때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더하였음을 성경을 통해 알 수 있다. 그럼에도 결국 바벨론 제국에 의해 멸망을 맞게 되는데 이를 통해 배울 점이 있다.

먼저 생각할 것은 당시의 급변하는 국제 정세이다.

무엇보다 신흥강국으로 급부상한 바벨론 제국의 위세를 볼 수 있는데 BC 612년에 앗수르 제국이 바벨론 왕 나보폴라살에 의해 멸망하였다. 이후 당시 강대국이던 애굽과 바벨론 간의 대결 양상 속에서 약소국가들은 심한 고통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비교적 외세의 침략이 적었던 요시야 왕 때에는 철저한 종교개혁을 시행할 수 있었지만 애굽 왕 느고가 앗수르 잔당들과 동맹을 맺고 유브라데 강변의 갈그미스에서 바벨론을 공격할 때 요시야가 갑작스럽게 이를 막아서는 것을 볼 수 있다.

“느고가 요시야에게 사신을 보내어 이르되 유다 왕이여 내가 그대와 무슨 관계가 있느냐 내가 오늘 그대를 치려는 것이 아니요 나와 더불어 싸우는 족속을 치려는 것이라 하나님이 나에게 명령하사 속히 하라 하셨은즉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니 그대는 하나님을 거스르지 말라 그대를 멸하실까 하노라”(대하 35:21)

자신이 군대를 일으켜 바벨론과 전쟁을 일으키는 것이 분명히 하나님의 뜻임을 전했음에도 요시야가 굳이 변장을 하면서까지 느고와 싸우려 한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성경은 분명히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느고의 말을 듣지 아니하고”(대하 35:22)라고 밝히고 있다.

결국 요시야는 므깃도에서 전사하였다. 이후 요시야의 아들 여호아하스가 남유다의 왕이 되자 애굽 왕이 그를 잡아가고 그의 형제 여호야김을 대신 왕으로 세운다. 그는 십일 년 동안 나라를 다스렸는데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그를 쇠사슬로 결박하여 바벨론으로 잡아간다. 그후 여호와김의 아들 여호야긴이 왕이 되어 석달을 다스렸는데 느부갓네살이 바벨론으로 잡아가고 대신 그의 숙부를 왕으로 앉힌 것이 남유다 마지막 왕인 시드기야이다.

역대기는 이에 대해 간단히 언급하지만 열왕기에는 여호야김이 자신을 왕으로 세운 애굽을 섬겼지만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올라오자 그에게 충성을 맹세했고 3년 후에는 다시 애굽과 동맹 연합을 꾀하다가 바벨론에 잡혀가게 되었다고 상세히 밝히고 있다. 

여호야김의 이런 행동의 이면에 당시 국제정세가 작용했다는 점을 역사를 통해 알 수 있다. 약소국가가 막강한 강대국 간의 대결 구도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실리 외교라 부를 수 있다. 전도서 9장에 등장하는 가난한 지혜자는 그 지혜로 성읍을 건졌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나라를 다스리는 지도자에게 이러한 지혜가 무엇보다 필요하다. 하지만 여호야김이나 시드기야의 경우 그런 지혜가 없었다고 할 수 있다.

다음으로 생각할 것은 당시 왕들의 악함이다.

남유다 멸망 직전 나라를 다스리던 네 왕이 한결같이 악하였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여호아하스가 석달, 여호야김이 11년, 여호야긴이 석달, 시드기야가 11년 그들의 치세를 모두 합쳐야 23년에 불과한 짧은 기간인데 지도자들이 한결같이 악했다는 점이다. 

나라가 멸망하는 전조를 보면 어떤 지도자가 다스리느냐는 것이 강하게 작용하는데 악한 왕들의 지배는 결국 멸망을 앞당기는 강력한 요소가 될 수밖에 없다.

예레미야서에 여호야김이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한 우리야를 칼로 죽이는 것을 기록하고 있다(렘 26:23). 그는 하나님의 말씀이 적힌 두루마리의 글을 들으면서 면도칼로 베어 화롯불에 던져 모두 태웠으며 예레미야를 잡으려고 명령을 내린다.(렘 36:23,26)

당시 활동하던 하박국 선지자는 그런 상황에서 하나님의 섭리가 무엇인가를 고민하지만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합 2:4)는 신앙고백을 한다.

불과 석달밖에 왕위에 있지 못한 여호야긴조차 “그의 아버지의 모든 행위를 따라서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더라”(왕하 24:9)는 평가를 받고 있고 시드기야 역시 “그가 여호야김의 모든 행위를 따라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한지라”(왕하 24:19)는 평가를 받고 있다.

결국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 성을 2년간 포위하는 중에 기근이 심하여 백성의 양식이 떨어졌다고 하였다. 성벽이 파괴될 때 시드기야가 도망하는데 결국 여리고 평지에서 잡혀 눈앞에서 아들들이 죽고 두 눈을 빼고 놋 사슬로 결박하여 바벨론으로 끌고 간다.

“모든 제사장들의 우두머리들과 백성도 크게 범죄하여 이방 모든 가증한 일을 따라서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에 거룩하게 두신 그의 전을 더럽게 하였으며 그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과 그 거하시는 곳을 아끼사 부지런히 그의 사신들을 그 백성에게 보내어 이르셨으나 그의 백성이 하나님의 사신들을 비웃고 그의 말씀을 멸시하며 그의 선지자를 욕하여 여호와의 진노를 그의 백성에게 미치게 하여 회복할 수 없게 하였으므로 하나님이 갈대아 왕의 손에 그들을 다 넘기시매 그가 와서 그들의 성전에서 칼로 청년들을 죽이며 청년 남녀와 노인과 병약한 사람을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였으며”(대하 36:14-17)

시드기야가 다스리던 시대의 제사장들의 범죄, 일반 백성들의 범죄는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게 하였고 하나님의 사신을 비웃고 말씀을 멸시한 것이다. 그렇기에 성전에서 칼로 청년들을 죽인 것은 그들이 성전을 더럽힌 까닭이다.

마지막으로 생각할 것은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성취이다.

이는 히스기야 왕 때 이미 예언하신 바 된 것이다. 

“여호와의 말씀이 날이 이르리니 왕궁의 모든 것과 왕의 조상들이 오늘까지 쌓아 두었던 것이 바벨론으로 옮긴 바 되고 하나도 남지 아니할 것이요”(왕하 20:17)

실제로 남유다가 멸망할 때 성전의 귀한 것들을 가져가는 것을 볼 수 있다. 역사는 우연의 연속이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많지만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섭리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멸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되면 결국 심판이 이르게 되는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를 둘러싼 세계 정세도 결코 녹록치 않다. 그렇다면 지도자는 어떠한가? 선한가? 악한가? 종교지도자들과 일반 백성들은 어떠한가?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이라는 말씀이 전쟁의 승패에 대한 것이 하나님의 주권이라는 의미일 뿐 아니라 전쟁이 발생하거나 그로 인해 나라가 황폐해지고 나라의 운명이 기울어지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수많은 백성들이 배고픔에 신음해야 하는 상황은 결코 다가와서는 안될 것이다. 전쟁은 선량한 수많은 백성들의 죽음을 담보로 한다. 이 얼마나 두려운 일인가?

“무리가 우리를 치러 올라오는 환난 날을 내가 기다리므로 썩이는 것이 내 뼈에 들어왔으며 내 몸은 내 처소에서 떨리는도다”(합 3:16)

그럼에도 하박국 선지자는 이와 같이 고백한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를 나의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시리로다”(합 3: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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