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 나타난 죽음과 관련된 기록들 27
성경에 나타난 죽음과 관련된 기록들 27
  • 안양준
  • 승인 2023.01.18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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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기야의 죽음

매주 수요일 ‘기독교 장례 문화’에 대한 글을 연재하며 ‘성경에 나타난 죽음과 관련된 기록들’이라는 제목으로 성경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들의 다양한 죽음의 형태를 살펴보았다.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 모든 사람의 끝이 이와 같이 됨이라”(전 7:2)의 말씀은 장례식을 통해 인간의 궁극적 문제인 죽음에 직면한다는 사실만 가르쳐 줄 뿐 아니라 고인이 된 인물의 일생에 대한 평가가 내려진다는 사실이다.

물론 사람들이 내리는 평가는 온전한 것이 아닐 수 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 앞에 어떤 평가를 받게 될 것인가에 있겠지만 그럼에도 어느 정도 그 사람이 살아온 삶에 대한 평가가 내려지는 것도 사실이다.

구약성경의 열왕기와 역대기는 이스라엘 열왕들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가 기록되어 있다. 어느 왕에 대해서는 몇 장을 할애하여 자세하게 기록하는가 하면 한두 줄로 간단하게 끝맺는 경우도 많이 있다.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열왕에 대한 평가의 기준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는데 쉽게 표현하면 ‘다윗과 여로보암’이라는 인물로 선악에 대한 기준을 삼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이스라엘로 범죄하게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아니한지라”는 평가는 그 인물이 악한 왕이었다는 사실을 가르쳐주는 것이다.

이와 반대되는 경우가 다윗의 예이다. 안타까운 사실은 하나님 앞에 긍정적인 평가를 받은 인물이 매우 적다는 사실이다. 지금 소개할 히스기야 왕의 경우 “그의 조상 다윗의 모든 행실과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여”(대하 29:2)라는 평가를 받았는데 이러한 평가를 받은 인물이 아사(왕상 15:11). 여호사밧(대하 17:3). 요시야(왕하 22:2) 외에 없다는 점이다.

그러면 악의 기준인 여로보암에 대해 잠깐 생각해 보고자 한다.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죄가 무엇인가? 그레고리 대제가 말한 ‘일곱 가지 죄’에 대해 흔히 말하지만 이는 인간의 편에서 생각해낸 것이 아닐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하나님 편에서 볼 때 가장 큰 죄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불신이라 할 수 있겠지만 이보다 더 악한 죄가 있다면 우상 숭배라고 할 수 있다.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출 20:3-6)

이것이 십계명 중 가장 우선순위에 해당하는 1계명과 2계명이다. 이를 살펴보면 하나님께서 ‘다른 신’에 대해 말씀하시지만 인간을 두고 하신 말씀일 뿐 하나님이 보실 때 다른 신의 존재라는 것이 있을까? 모든 것을 창조하신 하나님 외에 누가 신이 될 수 있겠는가? 가끔 ‘God’과 ‘spirit’에 대해 구분하지 못하는 까닭에 혼선이 빚어지는 것 같다. ‘다른 신’이라 불리는 것들은 악령(evil spirit)에 불과한 것이다.

이스라엘의 열왕들에 대한 기록인 열왕기와 역대기의 간단한 차이를 본다면 열왕기의 경우 역사적 사실을 중시하는 반면, 역대기는 신앙적 측면을 강조한다는 점이다. 이에 대한 선지식을 갖고 병합하여 보는 것이 지혜로운 방법이라 할 수 있다.

히스기야가 행한 일들이 무엇인가? 왕위에 오른 후 그가 가장 먼저 행한 일이 종교 개혁이다. 그 동안 폐쇄되었던 성전 문을 열고 수리하며 레위인을 대상으로 성결케 하고 제사를 드리고 유월절을 지키고, 우상을 제거하고, 십일조를 통해 제사장과 레위인들이 사역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복을 부어주실까? 아니다. 오히려 큰 환난이 닥쳐온다. 역대기에는 제외된 앗수르의 1차 침공이다. 앗수르 비문에 쓰여진 기록에 당시 산헤립이 46개의 유다 성읍을 취하였다고 한다. 결국 히스기야는 항복하고 성전과 왕궁의 금은을 뇌물로 바침으로 위기를 모면하였다.

그러면 실패인가? 아니면 징계인가? 하나님 앞에 바로 서고자 할 때에 다가오는 환난은 성숙을 위한 연단으로 볼 수 있다. 그리하여 앗수르의 2차 침공을 대비하여 준비를 철저히 갖추는 것이다.

2차 침공 때 산헤립의 장관 중 하나인 랍사게가 한 말이 무엇인가? “내 주께서 네 주와 네게만 이 말을 하라고 나를 보내신 것이냐 성 위에 앉은 사람들도 너희와 함께 자기의 대변을 먹게 하고 자기의 소변을 마시게 하신 것이 아니냐 ~ 너희는 히스기야에게 속지 말라 그가 너희를 내 손에서 건져내지 못하리라 ~ 민족의 모든 신들 중에 누가 그의 땅을 내 손에서 건졌기에 여호와가 예루살렘을 내 손에서 건지겠느냐”라고 떠든다.

성 안에서 듣고 있는 히스기야의 심정이 어떠했을까? 북이스라엘과 아람, 그 외 주변의 모든 나라들을 멸망시킨 앗수르이다. 세계 역사상 최초로 정복을 통해 제국을 형성한 앗시리아(앗수르) 제국이 성을 포위하고 왕과 하나님의 이름을 모욕할 때 믿음이 없는 자는 회의와 절망으로 실족할 수밖에 없다. 

그때 히스기야가 기도한다.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원하건대 이제 우리를 그의 손에서 구원하옵소서 그리하시면 천하 만국이 주 여호와가 홀로 하나님이신 줄 알리이다”(왕하 19:19) 하나님께서 어떻게 응답하셨는가? “이 밤에 여호와의 사자가 나와서 앗수르 진영에서 군사 십팔만 오천 명을 친지라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보니 다 송장이 되었더라”(왕한 19:35)

오래전 삼성출판사에서 출간한 세계사 전집에는 사망 원인을 전염병으로 기록하고 있는데 전염병이 돌아 하룻 밤에 18만 5천명이 죽는 것도 역사상 흔치 않은 사례이다. 

“앗수르 왕이 낯이 뜨거워 그의 고국으로 돌아갔더니 그의 신의 전에 들어갔을 때에 그의 몸에서 난 자들이 거기서 칼로 죽였더라”(대하 32:21)

그 동안 자신이 쌓아올렸던 모든 전과가 한 순간 무너져 내린 것이다. 실제로는 자신이 모욕하던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 컸을 것이다. 결국 고국에 돌아가서 반역을 저지른 아들들에게 죽임을 당하고 오래지 않아 앗수르는 바벨론 제국에 의해 멸망하게 된다.

그런데 히스기야에게도 문제가 없었는가 하면 그렇지 않다. 히스기야가 죽을 병이 걸렸을 적에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여 낫게 된 사례를 볼 수 있다. 당연히 간증거리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바벨론 왕의 사절이 왔을 때 교만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고 자신의 힘을 과시하며 자랑하는 것을 보게 된다.

우리가 늘 저지르기 쉬운 잘못이기에 뭐라 할 말이 없지만 하나님께서 책망하실 때 히스기야는 겸손히 회개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대하 32:33 히스기야가 그의 조상들과 함께 누우매 온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이 그를 다윗 자손의 묘실 중 높은 곳에 장사하여 그의 죽음에 그에게 경의를 표하였더라”(대하 32:33)

이것이 히스기야의 죽음에 대한 백성들의 평가이다. 물론 하나님께서 내리신 평가도 이와 다를 바 없다고 여겨진다. 우리의 삶이 이처럼 신앙적이고, 그래서 사람들과 하나님 앞에서 온전한 평가를 받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럼에도 역사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극히 드물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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