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서 말씀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신비로운 존재임을 말한 사도 요한은 오늘의 본문에서는 말씀이 빛으로 역사 속에 나타나신 것을 기록했다. 이 사실을 증거하기 위해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세례 요한임을 말하고 누구든지 빛 되신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받게 된다고 했다.
첫째: 빛을 증거하기 위해 온 요한(6~8절)
1) 보내심을 받은 자(6절)
세례 요한은 빛에 대하여 증거하기 위하여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자이다(사 40:3~5; 요 1:23). 그는 주의 길을 예배하기 위하여(눅 1:13~17) 주님보다 6개월 전에 태어났고 공적 사역도 주님보다 6개월 전에 시작함으로 선구자로서의 사명을 다 하였으며, 그는 마치 태양이 떠오르기 전 곧 태양이 떠오른다는 것을 알리는 동녘 하늘의 샛별과 같았고 태양이 떠올랐을 때는 빛을 잃고 마는 역할을 감당한 자이다.
2) 세례 요한의 사명(7~8절)
400여 년간의 침묵을 깨고 광야에서 외치기 시작한 일로 오랫동안 메시야를 기다리던 당시 사람들이 오해를 할 가능성이 있으므로(눅 3:15) 세례 요한은 자기를 가리켜 빛이 아니라고 강하게 부정하였다. 그의 사명은 두 가지로 ①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죽음으로 생명을 얻게 하는 빛 되신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일이요 ② 회개의 세례를 베풂으로 사람들로 하여금 빛 되신 그리스도를 믿게 하는 데 있다
둘째: 빛으로 오신 예수(9~13절)
1) 영접하지 아니하는 자(9~11절)
어두움을 비추기 위해 빛으로 오신 주님을(4~5절) 본문에서는 불완전의 상대적 개념인 참 빛으로 증거했다. 그리스도께서 참 빛으로 죄악 세상(kosmo")으로 오셨으나 어두운 세상은 창조주인 구세주를 인정하지 않음으로 마치 이사야의 탄식을 연상케 한다(사1:2~3). 유대인 중에는 개인적으로 소수가 그를 믿었으나 선민으로 자처하면서 민족 전체로는 영접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그를 거역하며 십자가상에 버림으로 이것이 이스라엘의 죄가 되었다.
2) 영접하는 자(12~13절)
앞에서 본대로 선민 이스라엘의 민족적 영접은 거부되었으나 본문에서는 개인적인 영접이 구원의 방편이 되었음을 증거했다. 그러므로 기독교의 구원은 민족, 국가와는 상관없이 개인적인 것임을 알아야 한다. 그렇다면 개인적인 영접이란 무엇인가? 그 이름을 믿는 것인데, 믿음(pisteuosin)은 현재분사로 끊임없이 삶 속에서 인정하는(believing in) 강력한 신앙을 의미한다(마 7:21).
끝으로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믿는 자는 하나님의 아들(teknon)이 되는 권리를 얻게 되는데 어디까지나 구원은 사람의 방법(혈통, 육정, 사람의 뜻)에 의해서가 아니고 하나님의 은혜로(diving generation) 예수님을 영접해야만 이루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