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통하라, 그리고 주의 길을 예비하라!
애통하라, 그리고 주의 길을 예비하라!
  • 이정순
  • 승인 2022.12.10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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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한 감리교회 대림절 예배 광경 / 출처 위키미디어코몬<br>
미국의 한 감리교회 대림절 예배 광경 / 출처 위키미디어코몬

얼마 전 학교 행사에서 어떤 학생이 ‘이태원 사건’을 언급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지난 10월 28일 이태원에서 158명의 목숨이 희생된 사회적 대참사를 거리낌 없이 ‘사건’이라고 말하는 것에 무척이나 놀라고 당황했다. 아마도 현정부의 시각을 두둔하는 설교를 어디선가 들은 것 같다. ‘이태원 참사’와 ‘이태원 사건’은 비슷하지만 다른 관점을 담고 있는 너무도 다른 표현이다. 사건이라면 나와 무관하게 우연히 일어난 것을 의미한다. 또 당연히 우연한 사건에 희생된 사람들로만 생각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대참사, 그것도 사회적 대참사로 표현할 때는 나를 포함한 이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이 함께 애도해야 할 가슴 아픈 비극을 의미한다. 이 대참사의 책임에 국가와 사회는 물론 ‘나’라는 존재까지도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를 포함한 이 사회가 한 사람 한 사람을 귀히 여기는 사회였다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좀 더 국민을 세심하게 배려하는 정치지도자들을 뽑았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누구도 책임지려 하지 않는 우리의 현실이 안타깝고, 화나고, 슬프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8년만에 다시 무고한 청춘들이 희생되었다. 죽지 않아도 될 소중한 생명들이 또다시 사라지고 말았다. 8년 전에는 10대의 청춘들이 희생되더니, 이제 그 세대가 다시 20대가 되자 또 다시 비슷한 참사로 희생되고 만 것이다. 이 사회의 20대 청춘들이 재난의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이 현실에 우리는 무엇을 어찌해야 할 것인가? 참으로 가슴이 답답하고 막막한 심정이다.

대림절 초(가운데가 그리스도 초) / 출처 위키미디어코몬<br>
대림절 초(가운데가 그리스도 초) / 출처 위키미디어코몬

먼저, 참사를 당한 자들의 유가족을 위해 함께 울고 애통해야 할 것이다. 국가가 인위적인 애도 기간을 정해서 애도하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희생자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생각하며 짐심으로 애통하는 것이 필요한 때이다. 이 비극적인 대참사에 나는 희생되지 않았다고, 그것은 그저 우연한 사건이라고, 단순히 그 시간 그곳으로 놀러 간 사람들이 당한 일이라고 쉽게 말을 해서는 안 될 것이다.

복음서에 보면 예수께서 곳곳을 돌아 다니시면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고 가르치며 병든 자들을 치유하시다가 문득 주위의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셨다”고 나오는 구절이 있다. 그들이 마치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에 지쳐서 기운이 빠져 있었기 때문이었다(마 9:35-36). 예수님이 이런 주위 인간들을 불쌍히 여기셨다는 것이다. 그런데 ‘불쌍히 여기다’는 말은 헬라어로 '스플랑크니조마이'라는 동사인데 이 단어는 스플랑크나'(내장, 애타는 마음, 사랑)에서 유래한 단어이다. ‘스플랑크니조마이’라는 표현은 ‘창자가 뒤틀리는듯한 고통을 느끼다’라는 의미를 가진다. 예수님은 목자 없는 양과 같고, 고생에 지쳐 있는 사람들을 보시며 마치 창자가 뒤틀리는 듯한 고통을 느끼셨던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는 무엇보다 이런 심정이 필요하다. 사회적 대참사로 인한 인간들의 죽음 소식을 접하면서 진정으로 내 창자가 뒤틀리는 듯한 고통을 느낄 때 비로소 저들의 죽음에 애통하게 될 것이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마 5:4) 라고 주님은 또한 약속하셨다. 진정으로 애통하는 자야말로 참된 위로를 받을 것이다. 진정으로 애통할 때 비로소 치유가 시작될 것이다.

대림절이 시작되었다. 교회력으로 볼 때 한 해가 다 가고 새로운 해가 시작된 것이다. 대림절은 예수님의 탄생을 기다리는 거룩한 절기이다. 해마다 대림절이 시작되면 광야에서 외치는 세례 요한의 메시지가 울려 퍼진다.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가 있다. 너희는 주님의 길을 예비하고, 그 길을 곧게 하여라. 모든 골짜기는 메우고, 모든 산과 언덕은 평평하게 하고, 굽은 것은 곧게 하고, 험한 길은 평탄하게 해야 할 것이니,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구원을 보게 될 것이다”(눅 3:4-6). 올해에도 어김없이 우리는 이 메시지를 듣는다.

그런데 이런 대참사의 현실에서 우리는 어떻게 주의 길을 예비할 것인가? 먼저 애통하는 일이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 받은 고귀한 생명들이 참사로 사라져 버린 이 비극을 놓고 애통해야 할 것이다. 같은 인간으로 이 비극에 창자가 뒤틀리는 듯한 고통을 느끼며 함께 애통해야 할 것이다. 그 죽음이 곧 내 가족과 친척과 친구의 죽음이라고 목 놓아 애통해야 할 것이다. 또한 빈들의 예언자 세례 요한은 구체적으로 주의 길을 예비하는 법을 애통하는 자들에게 제시했다. 모든 골짜기는 메우고, 모든 산과 언덕은 평평하게 하고, 굽은 것은 곧게 하고, 험한 길은 평탄하게 만들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주님이 오시는 길을 잘 닦기 위해 골짜기는 메우고 높은 산과 작은 언덕을 평평하게 만들어 좋은 길을 만들라는 것이다. 그래서 굽고 험한 길을 고르고 좋은 길로 만들라는 것이다.

대림절 달력(성탄절 24일간, 날짜마다 문을 열면 성서 이야기가 묘사돼 있음) / 출처 위키미디어코몬<br>
대림절 달력(성탄절 24일간, 날짜마다 문을 열면 성서 이야기가 묘사돼 있음) / 출처 위키미디어코몬

움푹 패이고 뒤틀리고 모가 나고 거칠며 완고한 우리 마음부터 먼저 평평하고 원만하며 청결하게 되어야 할 것이다. “마음이 깨끗한 사람은 복이 있다.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이다”(마5:8)라고 또한 주님은 약속하셨다. 주님께서 우리 마음에 오실 수 있도록 먼저 우리 마음 안의 좋은 길을 닦아야 할 것이다. 더 나아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와 국가 역시 주의 길을 예비해야 할 것이다. 온갖 거짓, 왜곡, 불의, 교만의 상태에서 정의와 평화의 사회로 거듭나야 할 것이다. 어째서 이런 대규모 참사가 또 일어났는지 진실을 철저히 규명하고 누군가 마땅한 책임을 짐으로써 조금이라도 정의가 회복되고, 유족들의 아픔이 치유되는 ’기적 아닌 기적‘이 속히 일어나야 한다. 그것이 오늘 우리가 주의 길을 예비하는 방법이다.

오늘도 대림절의 주인이신 예수님은 우리 마음과 이 사회 한 가운데에 임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애통하라, 그리고 주의 길을 예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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