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 나타난 죽음과 관련된 기록들 20
성경에 나타난 죽음과 관련된 기록들 20
  • 안양준
  • 승인 2022.11.30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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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의 죽음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 모든 사람의 끝이 이와 같이 됨이라 산 자는 이것을 그의 마음에 둘지어다”(전 7:2)

아무리 위대한 인물의 장례식이라 하더라도 장례식장에서 사람들이 깨닫게 되는 것은 “결국 나도 이렇게 될 것이라”는 인간의 가장 궁극적 문제인 죽음과 직면하게 되는 것이다.

다윗을 성경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라고 부르고 있다. 왜 그랬을까? 성경을 읽으며 다윗만큼 모든 행사에 하나님의 뜻을 묻고 삶 속에 반영한 자가 없는 까닭이다. 물론 인생의 대사(大事)를 행함에 하나님의 뜻을 묻는 자들은 있을 수 있고, 자신의 뜻과 상관없이 하나님이 명령하실 때 제대로 준행하는 이들은 있을 수 있으나 다윗만큼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묻고 그 뜻대로 행하는 자는 없었음을 알 수 있다.

당연히 하나님의 뜻을 묻고 그 뜻대로 행했기에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가 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다윗이 신적 존재는 될 수 없다. 다윗 역시 우리와 조금도 다를 바 없는 인간이다. 아름다운 여인을 보고 음욕을 품었을 뿐 아니라 자신의 행위가 드러날까 하여 결국 그녀의 남편을 죽게 만들었고 자신의 군대가 어느 정도 규모인지 알고 싶어 그 수를 세도록 인구 조사를 실시하기도 하였다.

그런 면에서 다윗은 어쩌면 우리보다 더 욕심이 많은 인물이었다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오랜 고난과 훈련의 시간을 거치며 그의 신앙은 다듬어졌고 인생의 순간순간마다 경험하는 하나님과의 만남은 그의 외적 모습 뿐 아니라 내면을 더욱 아름답게 승화시켜 놓으신 것이다. 

결국 성경이 가르치는 진리는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이 행해지는 이 땅의 모든 행위는 악할 뿐이며, 하나님의 뜻대로 이뤄지는 아주 작은 일조차 창조주의 영광을 드러내다는 것이다.

성경은 다윗의 노년과 그의 죽음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다.

“다윗 왕이 나이가 많아 늙으니”라는 글로 열왕기서는 시작된다. 어린 목동 시절 믿음으로 사자와 곰을 물리쳤을 뿐 아니라 블레셋 용사 골리앗을 죽여 이스라엘을 구하였고 전쟁에서 늘 승리했던 다윗의 용맹한 모습은 간데없고 늙고 병들어 자기 몸조차 가눌 수 없는 초라한 노인의 모습이 등장한다. 아무리 위대한 사람도, 그가 절대권력의 왕좌에 앉아 있더라도 하나님이 정하신 기한이 차면 결국 초라한 인생의 겨울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다윗의 위대함은 그의 죽음 앞에서도 볼 수 있다. 다윗의 죽음에서 남다른 것은 자신을 이어 왕이 될 솔로몬에게 남긴 유언을 통해서 귀한 교훈을 얻을 수 있는 까닭이다.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길로 행하여 그 법률과 계명과 율례와 증거를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지키라 그리하면 네가 무엇을 하든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할지라”(왕상 2:3)

솔로몬 한 개인이 아닌 이스라엘을 다스려야 할 왕으로서의 성공 여부는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는 것에 있다고 한다. 성경은 ‘약속의 책’이다. 그런 까닭에 조건부이다.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면 무엇을 하든 어디로 가든 형통하게 된다는 쌍방간의 약속.

성경에 나타난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과의 약속의 성취를 경험한 자들이다. 하나님과의 약속은 그것이 삶 속에 이루어지도록 힘을 다해 노력해야만 한다. 성경에서 가나안은 이미 하나님께서 주신 땅이나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아도 차지할 수 있는 땅이 아니라 약속에 대한 믿음으로 나가서 쟁취해야 하는 땅이다.

다윗의 유언에는 자신의 사적에 대한 기념도, 영토 확장 같은 군사적 과업도, 경제적인 번영의 요구도 보이지 않는다. 그의 유언은 세상이 기대하는 것과는 너무나 다르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단 하나 신앙의 유산을 물려주며 그것이 형통의 길이라고 가르쳐 준다.

그리고 개인적 문제에 대해 몇 가지 요구사항이 있다.

먼저 요압에 관한 것이다. “전쟁의 피를 자기의 허리에 띤 띠와 발에 신은 신에 묻혔으니 네 지혜대로 행하여 그의 백발이 평안히 스올에 내려가지 못하게 하라”(왕상 2:5-6)고 명한다. 자신의 사욕과 자신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 타인의 피를 묻히는 요압같은 이가 세상에 많이 있다. 이에 대한 단죄는 솔로몬이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기 위해 기초를 바로 세울 때 반드시 처리해야 할 사항이다. 

둘째 바실래에 대한 것이다. “마땅히 길르앗 바르실래의 아들들에게 은총을 베풀어 그들이 네 상에서 먹는 자 중에 참여하게 하라 내가 네 형 압살롬의 낯을 피하여 도망할 때에 그들이 내게 나왔느니라”(왕상 2:7)고 한다. 인생의 가장 힘든 시기에 함께 한 자가 진정한 친구라 할 수 있다. 그런 자에 대해 보상하는 것은 마땅한 일이다.

셋째 시므이에 관한 것이다. “그를 무죄한 자로 여기지 말지어다 너는 지혜 있는 사람이므로 그에게 행할 일을 알지니 그의 백발이 피 가운데 스올에 내려가게 하라”(왕상 2:9)고 하였다. 만일 시므이가 평안히 음부에 들어간다면 회개치 않은 그의 불의가 용납되는 꼴이 될 것이다.

다윗이 그의 조상들과 함께 누워 다윗 성에 장사되니 다윗이 이스라엘 왕이 된 지 사십 년이라 헤브론에서 칠 년 동안 다스렸고 예루살렘에서 삼십삼 년 동안 다스렸더라(왕상 2:10-11)

아무리 위대한 사람의 일생도 아침에 잠시 있다 사라지는 이슬과 같을 뿐이다. 죽음의 자리는 누구나 동일하게 찾아온다. 그럼에도 믿음의 사람들의 인생은 결코 무의지하지 않다는 점을 성경은 가르치고 있다. 그 이유는 그들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를 정확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성경은 다윗이 죽었다가 아니라 누웠다고 표현한다. 개역한글 성경은 ‘누워 자서’라고 했는데 ‘와이쉬카브’라는 단어가 누워 자는 것을 의미하는 까닭이다.

이후에 깰 때에는 하나님을 뵐 것이며 아름다운 본향에서 영생 복락을 누리게 된다는 것이다. 이 땅의 유한한 삶과 어찌 비교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은 이 땅에 사는 동안 세상이 추구하는 성공적인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루하루를 성실하게 살아가기를 원하신다. 어린 목동일 때 양들을 돌보던 다윗을 하나님께서 귀히 사용하시지 않으셨는가? 무엇보다 그의 마음의 중심에 있는 믿음을 보시고 그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기름부으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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