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 나타난 죽음과 관련된 기록들 19
성경에 나타난 죽음과 관련된 기록들 19
  • 안양준
  • 승인 2022.11.23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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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살롬의 죽음

성경은 압살롬의 반역에 대한 기사를 삼하 15:-19:에 이르기까지 다섯 장을 할애하여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그뿐 아니라 압살롬이 반역을 하게 된 동기 즉 암논이 다말을 추행하는 사건까지 포함한다면 일곱 장을 압살롬에 대한 기사로 채우고 있다.

그리고 이 모든 사건의 근원은 다윗이 밧세바를 범한 사건 그리고 그로 인한 하나님께서 나단 선지자를 통해 주신 “칼이 네 집에서 영원토록 떠나지 아니하리라 ~ 네 눈앞에서 네 아내를 빼앗아 네 이웃들에게 주리니 그 사람들이 네 아내들과 더불어 백주에 동침하리라”(삼하 12:10-11)는 선포가 이루어지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그런 까닭에 이 모든 과정을 통해 다윗이 겪었을 심적 고통이 얼마나 컸을까? 또한 그런 아픔이 그의 신앙의 성숙에 얼만큼의 도움이 되었을까? 하는 것들을 생각한다면 우리 인생에 작은 죄라도 얼마나 두려워해야 하는가를 깨닫게 된다.

사실 요나단이 반역에까지 이르는 과정을 살펴보면 처음부터 그러한 마음을 품었다거나 계획을 세웠던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 속에 찾아온 일련의 사건, 그리고 이를 처리함에 있어 다윗의 부적절함 등이 원인 제공을 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즉 암논이 다말을 추행한 사건에 대해 다윗이 적극적으로 행동하지 못한 이면에는 자신 역시 죄인이라는 점과 그 죄의 결과 자신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징계라는 것을 알기에 나설 수 없었던 것이라 이해할 수 있다.

그럼에도 정상적으로 처리했더라면 압살롬이 복수를 하거나, 그술로 도망하여 3년의 시간을 보내거나, 귀환한 후에도 2년을 만나지 못해 요압의 밭에 불을 질러 겨우 만나게 되는 상황들이 이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이와 같은 다윗의 미온적인 처사들이 압살롬의 마음속에 불만으로 쌓이게 되고 결국 반역을 꾀하게 된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압살롬의 경우 거짓말과 비겁한 행위, 그리고 자신이 저지른 죄에 대한 반성이 없는 모습을 통해 결국 자신이 저지른 일들의 결과를 자신이 감당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온 이스라엘 가운데에서 압살롬 같이 아름다움으로 크게 칭찬 받는 자가 없었으니 그는 발바닥부터 정수리까지 흠이 없음이라 그의 머리털이 무거우므로 연말마다 깎았으며 그의 머리 털을 깎을 때에 그것을 달아본즉 그의 머리털이 왕의 저울로 이백 세겔이었더라”(삼하 14:25-26)

흠이 없는 외모, 남자이지만 외모의 아름다움으로 인해 온 이스라엘에 칭찬을 받는 자, 무엇보다 머리털에 대해 성경은 말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경우 머리나 수염은 단순한 권위에 대한 것뿐 아니라 여호와 신앙과도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기에 다윗의 사신이 암몬인들에게 턱수염을 깎인 일로 자랄 때까지 여리고에 머무르다 들어오는 것을 볼 수 있다.(삼하 10:1-5)

물론 외모가 아름다운 것은 좋은 것이다. 그러나 압살롬에게 있어 아름다운 외모는 그가 교만하게 된 원인을 제공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이러한 점은 그가 반역을 계획하는 과정에도 여러 번 나타난다. 그가 병거와 말을 준비하고 호위병 오십 명을 세우는 모습이나, 자신에게 주어진 인기를 이용하여 재판을 빙자하여 백성들의 마음을 훔치는 모습, 그뿐 아니라 생전에 자신의 기념비를 세우는 것을 통해 얼마나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좋아하는가를 알 수 있다.

압살롬이 암논에게 복수하기까지 3년 동안 인내하며 자신의 계획을 실행에 옮기는 모습이나 백성들을 자신의 사람으로 만드는 과정은 그의 치밀한 성격을 보여준다. 물론 이는 일반인에게 있어 장점으로 작용하겠지만 압살롬의 경우 악한 행사에 적용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점이라 할 수 있다.

성경을 통해 압살롬의 반역은 거의 성공에 이를 정도로 다윗이 급히 도피하게 하였고, 아히도벨의 계략을 하나님께서 막아주시지 않았다면 전쟁에서 승리했으리라 생각할 수 있다. 그를 왕으로 추대한 자들에 의해 기름 부음을 받은 것도 그의 반역이 성공적이었음을 보여주는 예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압살롬은 실패의 길을 선택했고 자신이 자랑하던 머리가 상수리 나무에 걸려 결국 요압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 구약 율법에 의하면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것이라고 하였다.(신 21:23)

그런데 다윗이 압살롬과 싸우러 나가는 용사들에게 내린 명령이 무엇인가? “나를 위하여 젊은 압살롬을 너그러이 대우하라”(삼하 18:5)는 것이었다. 그뿐 아니라 압살롬의 죽음을 통고받앗을 때 다윗은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내 아들 압살롬아 차라리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면, 압살롬 내 아들아 내 아들아”(삼하 18:33)라고 하였다.

자신이 저지른 죄로 인해 빚어진 결과들이기에 차라리 자신이 죽었으면 하는 다윗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현대인들은 하나님의 존재를 망각하며 살아가고 있다. 스스로 신이라는 이름을 지워버리고 죽었는 표현까지 서슴지 않고 행하고 있다. 그로 인한 결과가 자신에게 어떻게 주어지는지에 대해서는 알지도 못하고 살아가는 자들...

이런 행태들이 오늘날 교회에까지 침투하고 성도와 목사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이 마치 살아계시지 않는 것처럼 행하며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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