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지 않은 알로에
심지 않은 알로에
  • 서정남
  • 승인 2022.11.16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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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수요연재를 올려서 화요일 밤에는 원고를 마쳐야 하니 긴장 item이 하나 더 추가되고 있다. 그런데 주님께서 글 소제를 성실히 주고 계신다.

아들이 살던 집의 진입로 화단에 알로에가 싱그럽게 자라고 있었다. 왼편은 옆집 펜스라서 식물이 자랄 곳이 아님에도 나무를 비집고 알로에가 또 자라고 있다. 그들은 심어준 자가 없다는 게 미스터리다. 민들레 홀씨마냥 바람이 이들을 옮겨주었나 보다. 자연은 그 자체 모습으로 이와 같이 진리를 전하고 있다. 듣던지 아니 듣던지 복음을 전하라고 한다. 바람결이 그 소리를 실어다 나른다.

나는 목사로 세움 받기까지 수차례 회오리바람을 겪었는데 그중 두 차례가 인생의 turning point가 되었다.
먼저는 주님을 만난 사건이다. 친정어머님 사업부도로 내 발로 울며 교회를 찾아가 등록하였다. 1988년 8월2일 부흥회에서 성령이 강하게 임하며 사도행전 2장의 incarnation 현장이 되었다. 살아계신 주님을 만나니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고 열정 넘치는 전도자로 거듭났다. 그때 강사 분이 한기총 총재를 지낸 엄기호 목사님이셨다.

다음, 목사가 된 사건이다.
평화로운 뉴질랜드로 이주해서 사는 어느날 집에 예상치 못하게 도둑이 들었다. 불과 3일 후에 다른 도둑이 또 들어왔다. 가족들의 트라우마가 가시지 않으니 이사가 불가피하였다. 심리적인 안정을 꾀하며 새집에서 달 반이 지났을까? 도둑선생이 또 오셨다. 세 번째이다. 그가 강도로 돌변했다. 딸이 위험에 처할 뻔 했는데 스스로 지혜롭게 강도를 내어보낸 사건이 있었고 경찰이 와서 몇 시간 리포터를 작성하고, 딸은 학교에 병가를 내어 마음을 안정시키고, 나는 주님께 왜? 우리에게 이러시냐고 항의하였다. 금식기도하며 그분의 말씀을 기다리던 중, 크라이스트처치 길벗감리교회 창립5주년 예배에 초청되었다. 그 자리에서 요한복음 21장의 <내 양을 치라>는 말씀이 우뢰 같은 콜링으로 임했고 나는 목사의 길을 결단하였다. 강사 분은 시드니에서 오신 소망감리교회 이상진 목사님이셨다.

나의 두 사건의 공통점은 말씀을 전파하신 분들은 열매에 대해서는 모르는 사실이며 건너편의 알로에처럼 내가 심은 게 아니라고 반응하실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일찍이 목회자로 부르심은 감지했으나 응답을 받기까지엔 여동생들의 역할이 있었다. 앞서 말했듯이 불신가정에 내가 복음을 들였다. 핍박의 시간들을 거쳐 가족 모두가 주님을 만났고 세 명의 여동생이 신대원 과정을 다시 하였다. 한 여동생은 의학박사에서 다시 신학박사 과정이고 두 여동생들은 총신대원을 마쳐 목사가 되었는데 목회자의 길은 철저하게 응답받고 가야한다고 강조하니 나는 주저앉고 포기해버렸다. 그런 나를 세우는데 주님은 도둑들을 사용하셨다.

밀레니엄 때 뉴질랜드에서 호주로 이주하였다. 그러고는 다시 서울로 신학공부 하러 가면서 '안수 받고 돌아올게요!' 라고 했던 약속도 애써 지워버리며 내 부모가 계시고 내 나라 말을 쓰는 한국이 좋아 눌러 있었고 세월은 유수같이 흘렀다. 엄기호 목사님과 개인적인 만남을 갖게 되었다. 감리교단 서정남 목사가 32년 전에 본인의 부흥회에서 주님을 만났고 목사까지 되었다고 하니 엄기호 목사님은 무척 기뻐하시며 성령교회의 철야예배에 간증자로 세워주셨다.

연초에 하늘 길이 열리면서 시드니를 방문하였다. 주안교회는 나의 성화로 캘린더 만들었다. 진기현 목사님과 담소 자리에서 22년간 기억에 담아둔 이상진 목사님의 성함을 우연히 여쭈었다. 진 목사님은 바로 전화를 연결하신다. 수신자는 영문도 모르고 한국서 왔다는 감리교 여 목사와 약속을 잡아 주셨다. 며칠 후 이 목사님 부부를 뵈니 22년 전 강단의 그분이 맞았다. 식사를 하면서 나는 폭풍우를 통과하여 목사가 되었으며 여기까지 왔다는 간증을 짧게 나누었다. 이 목사님 역시 목회의 끝자락에 듣게 된 감동 실화였나보다.

비대면이 끝나면서 소망교회 주일예배에 설교자로 세워주셨다. 이번 주 글은 여기까지 이미 써서 정리해 두었다. 그런데 위트 넘치는 우리 주님께서 맛깔난 side dish를 하나 더 추가해 주신다.^^

주님은 나의 약속을 기억하시고 주님의 방법대로 나를 호주로 U-turn 시켜주셨다. 서울남연회 동작지방에서 같은 연회 산하인 호주선교지방으로 올해 부임하였다. 호주에서 성화 전시회도 계속하고 있다.
바쁜 주말 아침, 카톡이 울려서 열어보니 이상진목사님 따님의 결혼식 소식이다. 일자가 11월 12일 11시, 다시 보아도 12일이 확실하며 불과 두어 시간 남았다. 겸손하신 이상진 목사님이 알리는 것을 사양하시자 지방회의 목사님이 광고하셨다. 호주에 다시 와서 참석하는 결혼식, 예식은 여덟 명의 남녀 들러리가 먼저 입장해서 천사의 양 날개처럼 신랑신부를 옹위하여 진행되었다. 축하객이 너무 많아서 다른 공간까지 오픈해야 했다. 호주인 하객들도 많은 축하향기 찐한 호주스타일 예식이었다. 이상진 목사님이 시드니 목사님들 대부라던 누군가의 표현처럼 40년간의 온유하시고 너른 품이 확인되는 시간이었다. 결혼식에 혼자 축하하러 가는 것은 참 멋쩍은 일이다. 그래서 축하를 전하고는 바로 오기가 일쑤이나 오늘은 특별히 혼밥을 결심하였다. 호주에서 감리교 목회자들과 인사할 기회를 아직 못 가졌다. 바쁘신 혼주를 졸라서 지방회 목사님들 테이블을 찾아가서 인사를 드렸다. 모든 분들의 얼굴이 해와 같이 빛이 났다. 지방회원으로 조인한 나의 사연을 모르시니 이 지면을 빌어 소개하고자 장황하게 풀어 놓는다.

바람결에 흩어지는 그 소리를 누군가는 붙잡아 콜링으로 받고 또 다른 생명을 살리고 있다는 것을 전파하신 분은 끝까지 모를 수도 있다. 그런 다음 천국을 가면 상급에 놀라 '이건 내가 심지 않았어요. 저 것도요' 하고 부인하실 것이다. 하늘 계산법은 인색하지 않고 늘 더 풍성하지 않던가? 내가 전도한 분들이 이번 달에 두 분이나 천국에 가셨다. 나도 천국 가면 나로 인해 천국에 왔노라고 맞아주는 분들과 그리고 내가 심지 않은 알로에도 분명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며, 부족한 여종을 끝까지 기대해 주시는 나의 주님께 남은 시간에도 충성을 약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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