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갈수록 해가 짧아지고 있다. 바야흐로 가을이 깊어가는 때다. 11월에 접어들면서 입동이 시작되면서 한층 더 겨울에 다가선 느낌이다. 교회 절기력에 따르면 11월은 1년의 절기가 끝나는 마지막 달이다. 그리스도의 오심을 기다리는 대림절이 12월에 시작되기 때문이다. 또 11월에는 추수감사절이라는 독특한 절기가 들어 있다. 독특하다는 의미는 미국에서 시작된 추수감사절이 한국교회에 전래되어 정착된 한국 개신교회만의 절기이기 때문이다. 유럽의 기독교인들에게, 심지어 청교도들이 출발했던 나라인 영국의 기독교인들에게 추수감사절이란 없다. 어렸을 때부터 당연시 했던 전통이 미국과 한국 개신교만의 전통이라는 사실을 알고 놀랐던 때가 생각난다.
11월 셋째 주 목요일부터 주일까지 추수감사절을 일 년 중 가장 큰 명절로 지키는 미국의 모습을 잠시 소개하면 이해에 도움이 될 것 같다. 미국에서 추수감사절은 한국의 추석이나 설 명절에 비교될 수 있다. 그만큼 미국의 추수감사절은 가장 중요한 명절처럼 지켜지고 있다. 이때만큼은 아무리 바빠도 너도나도 귀향을 서두르고, 부모나 형제들과의 만남을 준비한다. 가족 파티를 준비하고, 카드를 보내고 선물을 준비한다. 모든 학교들이 4일간 특별 방학을 갖는다. 11월이 시작되면서 거리마다 “행복한 추수감사절'(Happy Thanksgving!)이라는 플래카드로 넘쳐나고, 제철 과일인 호박을 사용해 집안을 장식하곤 한다. 추수감사절 당일인 11월 셋째 주 목요일에는 집집마다 칠면조 요리와 각종 파이를 준비하고 그 유명한 추사감사절 가족 만찬을 성대하게 갖는다. 그야말로 일 년 중 가장 즐겁고 행복한 때인 것이다.
미국의 풍습을 이어받아 한국교회에서는 보통 11월 셋째 주일이나 넷째 주일 추수감사주일을 지킨다. 널리 알려진 미국 추수감사절의 기원은 이러하다. 영국의 청교도들이 성공회로부터 분리하여 신앙의 자유를 찾아 아메리카 대륙의 플리머스(Plymouth)에 도착한 1620년에서 1621년 초의 겨울은 날씨가 매우 추웠고,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청교도들은 주위에 거주하고 있던 원주민 부족 왐파노아그 족의 도움으로 농사짓는 법을 배워 살아남을 수 있었다. 이듬 해인 1621년 가을, 이들은 처음으로 옥수수를 재배하여 수확할 수 있었고 왐파노아그 족을 초대하여 추수한 곡식, 과일과 야생 칠면조를 잡아 함께 음식을 함께 먹으면서 3일간 축제를 벌였는데, 이것이 곧 추수감사절의 기원이라고 한다. 그 후 이날을 기념하여 뉴잉글랜드 지역을 중심으로 하여 미국 전역으로 이 전통이 점차 퍼지다가 마침내 남북 전쟁 중에 있던 링컨 대통령에 의해 1863년에 국경일로 지정되었다.
추수감사절은 미국의 독립이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임을 기리는 날이라는 주장을 받아들여 미국의 가장 중요한 연례공휴일로 선포되었다. 하지만 역사학자들은 추수감사절의 기원에 관한 이런 전설적인 이야기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한 마디로, 이 이야기는 정복자 백인들의 시각에서 만들어진 이야기라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인디언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초기 청교도들과 그 후 이주자들은 정착하지 못했을 거라는 점이다. 이후 백인들이 몰려오기 시작했고, 원주민들이 살고 있는 땅을 빼앗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대륙의 주인인 원주인들을 몰아내고 백인들의 나라를 세운 미국 정부 입장에서 자신들의 침략과 정복을 합리화하기 위해 원주민들을 초대해 같이 축제를 벌였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과장하고 확대했다는 것이다.
특히 플리머스에 청교도들이 도착하기 13년 전인 1607년 버지니아에 백인들이 이미 도착하여 영국 왕의 이름을 딴 제임스타운(Jamestown)을 건설했는데, 어째서 이들을 미국의 시초로 잡지 않는지 학자들은 의문을 제기한다. 그리고 그 이유는 현대 미국이 내세우는 이상인 인종간 화합의 모델을 설정하기에는 제임스타운보다는 플리머스가 더 낫다고 여긴 나머지 플리머스의 정착 이야기를 부각시키기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제임스타운에서는 처음부터 인디언들과의 전쟁으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1607년 버지니아에 도착한 백인들은(이들은 아이러니컬하게도 대부분이 영국 국교도들이었다) 당시 원주민들이었던 파우해튼 족과 바로 전쟁을 벌였다. 그 결과 8,000명이던 파우해튼족은 몇 년 만에 1,000명 미만으로 줄어들었다. 반면에 플리머스에서는 그나마 원주민들의 도움으로 청교도들이 정착했고 수년간을 평화롭게 지냈다는 역사적인 사실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후 역사는 불편한 진실로 장식되어 있다. 아메리카 대륙에 들어온 청교도들은 인디언들의 도움을 받아 낯선 땅에 정착했는데도, 이후에는 인디언들을 학살하는 데 적극 참여했다. 『미국 민중사』(People's History of United States)를 저술한 역사학자 하워드 진(Howard Zinn)에 의하면 아메리카 대륙에 정착한 백인들의 역사는 곧 인디언 멸절사이다. “영국의 북아메리카 대륙의 침략의 배후에는 원주민 대량학살, 기만, 잔혹함, 사유재산에 기초한 강력한 욕구 등이 작용했다”고 그는 지적한다. 이런 침략의 역사 중심에 청교도들이 있다는 것이다. 또 신학적으로 보수적인 칼뱅주의자들이었던 청교도들은 칼뱅이 스위스 제네바에서 시도했던 이른바 신정통치 사회를 문자 그대로 이루고자 했다. 이들은 이후 뉴잉글랜드 지역에 퍼져 나가면서, 다른 교파들을 탄압하고, 심지어 유럽에서 자행되었던 마녀재판을 열어 여성들을 화형에 처하는 실수도 저질렀다. 소설가 나다니엘 호돈의 여러 작품들이 이런 초기 퓨리턴 사회의 완고한 분위기를 잘 묘사하고 있다.
한국교회는 유독 청교도들에서 비롯된 이 전통을 왜 따르고 있는지, 또 기회 있을 때마다 이들 청교도들의 신앙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하는지 필자는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과연 무엇을 본받는단 말인가? 청교도들의 미국 정착과 관련된 불편한 진실을 언제까지 외면할 것인가? 지금도 대부분의 한국 기독교인들은 11월 셋째 주만 되면 추수감사절 헌금을 준비하고, 똑같은 설교를 반복해서 듣고, 교회에서 준비한 떡을 선물을 받아가는 식으로 추수감사절을 지키고 있다. 한국인으로서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왜 한국교회는 미국에만 있는 추수감사절을 교회의 특별 감사 주일로 지키고 있는 것일까? 또 백인 건국자들의 입장에서 미화된 추수감사절의 역사를 정설처럼 가르치고 있는 것일까? 성서에는 곳곳에서 창조자 하나님께 감사하라고 명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제 추수 감사의 의미를 성서적인 근거를 통해 강조하되, 우리 문화와 전통을 통해 추수감사절을 지켜야 할 것이다. 미국 추수감사절보다 훨씬 오랫동안 전해 내려오고 있는 한민족 고유의 추수감사절을 활용하여 교회에서 대대적으로 축하하며 지키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그래서 이것이 바로 한국 기독교의 추수감사절이라고 오히려 전 세계에 자랑스럽게 알릴 수는 없을까? 언제까지 한국 기독교는 미국 기독교를 그대로 답습해야만 할까? 더욱이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 학살과 관련된 불편한 진실을 외면해야만 할까? 우리의 고유한 문화전통으로 하나님께 감사하고 노래하며 한민족 전체가 함께 어우러지는 진정한 추수 감사 축제가 이루어질 날을 기도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