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추천사
첫 추천사
  • 서정남
  • 승인 2022.11.09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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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사는 주로 각계 명사들이 쓰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고명하신 분께서 책을 내신다고 나에게 추천사를 부탁하시는 일이 생겼다. 그분의 근간의 절절한 시간들을 지켜보았기에 쓰고 싶은 것은 많았으나 추천사를 몇 분이 쓸 것이라고 생각되어 다른 분께 지면을 할애하고자 간단히 썼다.

출간된 책을 호주로 보내셨는데 추천사가 서정남 목사 1인이었다. 많이 놀랐다. 저자는 한국 첫 여성변호사이셨던 이태영 박사의 며느님이자 정대철 의원(민주당 전 고문)의 부인인 김덕신 권사님이시다. 처녀작을 출간하셨다. 우리 감리교인이며 서울남연회 서초지방 남산교회 권사님이시다. 일반적으로 여사님, 선생님으로 부르지만 나는 하나님이 주신 직분인 권사님으로 호칭한다. 나보다는 많이 연상이신데 성향도 비슷하고 바라보는 시각도 비슷하여 긴 시간을 함께하였다. 랜덤으로 나에게 전화하실 때는 환자를 심방하거나 전도대상자를 찾아가는 케이스이다. 그분의 어깨에는 늘 큰 가방이 걸려있다. 그 안에는 누군가에게 나누고자 준비된 보물들이 담겨있다. 낮은데 처한 자들을 특별히 살피시시고 참 겸손하시다.
책 출간하신 사연은 5년 전 엄동설한에 뇌경색이 갑자기 찾아왔다. 밤이라서 골든타임을 놓치셨는지 와병시간이 길어졌다. 신체 왼쪽이 불편하시다. 그 재활기간 동안 오른손 하나로 시작한 수채화가 수백 점에 달한다. 비전공자의 그림을 보며 놀라기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렇게 태어난 그림과 걸어오신 세월을 간략히 담아 책을 펴내신 것이다. 팔순을 맞아 작은 음악회로 출판을 기념하셨다.
할머님 박현숙, 시아버님 정일형, 남편 정대철, 아들 정호준, 형부 조순승까지 국회의원을 20번이나 배출한 집안이다. 할머님 슬하에서 보고 듣고 배운 시간들이 정치의 인턴십 과정이었나 보다. 중앙일보에도 내조의 여왕이라는 기사로 알려졌지만 그분의 아픔은 한쪽이 텅 빈 듯 한 어머님 부재였다. 얼굴모르는 어머님 이야기로 책 서두가 열린다. 세살 무렵 어머님이 여동생을 출산하시다가 출혈과다로 돌아가셨고 어머니 친구의 등에 업혀서 관이 트럭에 실려 나가는 것을 본 것이 어머님에 대한 기억이라고 하신다. 새로 들어오신 어머니가 돌아가신 어머님의 사진을 모두 불태워서 얼굴도 모르는 어머님을 팔십년을 그리워하셨다. 와병 중에 상상속의 어머니를 직접 그려서는 내게 액자를 부탁하실 정도로ᆢ 아동기에 새 엄마의 학대를 겪다가 6.25때 피난 오신 실향민이다. 먼저 내려오신 할머님을 부산서 만나면서 본인의 인생은180도로 바뀌었다고 회고하신다. 조부모님은 독립운동가 이시고, 할머님 박현숙 장로님은 제5대 무임소장관과 국회의원을 지낸 여성운동가이시다. 서울에도 송죽원을 설립하셨고, 숭의여고를 서울에 재건하시고, 피난민을 위해 수유리에 창현감리교회(갈릴리교회)를 세우셨고, 지역구인 철원에 신흥감리교회도 세우셨다. 김 권사님이 어릴 적 할머님 손을 잡고 다녔다는 대한수도원에 김 권사님과 같이 간 적이 있었다. 덕택에 나도 VIP Room에 숙식할 수 있었다.

김 권사님은 북한에 구호물자를 전하는 일에 정성을 다하신다. 여동생 덕선이가 살아있다면 단 한 조각 옷이라도 그녀에게 전해지기를 소망하시면서... 나도 다양한 루트를 통해 북한에 의류지원을 하였다. 대학동창들에게서 걷어서 인천항의 모씨에게 전달하면 그들은 중국 단동의 선교사님께로 보내진다. 그리고 그 물자들은 다시 탈북민이나 북한으로 전달이 된다.

정대철 장로님은 교도소 선교에 주력하신다. King Maker 라고 할 정도로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을 세워 드렸건만 대가는 감옥행이었다고 한다. 그곳에 두 차례나 다녀오셨기에 그 안에 분들에게 진리가 필요함을 아주 잘 아신다. 한국의 우리교회 오셔서 간증집회도 해주셨다. 오대양육대주 어디든 부르는 곳에 자비량으로 달려가신다. 그 연배들은 편찮은 분이 많지만 정 장로님의 왕성한 활동은 주님의 은혜라고 감사해 하신다. 김 권사님 역시 뇌경색으로 인해 행동이 자유롭지 못한 시간 가운데 주님과 더 가까워지셨고 그 시간이 또 수채화 작가로 다시 태어나게 하신 은혜라고 고백하신다. 칠십대 중반에 새 분야를 개척하리라곤 아무도 상상 못하였기에 같이 재활하던 환우들에게는 큰 도전이 되고 있다.

허나 해내셨다.
주님이 그 손잡아 주셨다. 나는 나라 사랑을 김 권사님을 통해 많이 도전받았다. 어느 누가 대한민국을 그 정도로 사랑하실까? 하나님사랑 이웃사랑을 실천하는 분의 처녀작에 추천사를 올린 것이 나로서도 영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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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천사

덕망과 신실의 삶을 사신
김덕신 권사님께서 걸어오신 자취를 담아 처녀 출간하시니
기다렸던 터라 축하하며 흥분된 맘으로 폅니다.
성장기에 조모님 아래에서 겪은 인턴십들이
결혼기에 가서는 현장을 뛰며 적용시켜 꽃을 피웠습니다.
노년기에는 다양함을 벗어나
주님과 가까이하시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잠재된 재능이 발굴되었습니다.
그들을 다시 압축시켜 보배로운 저서가 빚어졌습니다.
이들 속에는 고난과 기도와 사랑과 기다림의 재료들이 녹아 빛으로 반사되니 주님의 빛을 전하는 구령의 도구가 될 것을 저는 확신하고 축복합니다.

서정남목사 ㅣ성경삽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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