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 나타난 죽음과 관련된 기록들 17
성경에 나타난 죽음과 관련된 기록들 17
  • 안양준
  • 승인 2022.11.09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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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아의 죽음

어느 한 모범적인 군인에 대한 이야기이다.

사무엘하 23장에 다윗의 용사들에 대해 이름을 열거하며 소개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곳에 소개된 자들의 총수가 37명인데 그 중에 포함될 정도라면 대단하지 않는가? 그리고 그의 아내는 다윗 왕이 첫 눈에 반할 정도로 대단히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그에 대해 성경은 헷 사람이라는 단서를 붙이는데, 그가 원래 힛타아트 출신이었음을 알려주는 대목이다. 그렇지만 그는 이스라엘로 귀화를 했고, 그럼에도 그만한 위치에 올랐다는 것은 한 마디로 놀라운 성공이라 할 수 있다.

보통 출세가 빠른 사람들의 경우 뒷조사를 하면 뭔가 흠집을 잡을 만한 단서가 나오게 마련인데 그에게는 그런 것조차 없다. 단순히 자신의 능력만으로 모든 것을 이룬 것이다.

그런 그에게 하루는 왕의 귀환 명령이 떨어졌다. 그때는 한참 아람과 암몬 연합군과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는 상황이었는데 왕이 직접 그에게 특별 휴가를 허락한 것이다. 그뿐 아니라 그를 위해 왕이 직접 음식물까지 내리는 특혜를 누릴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에게 찾아온 놀라운 기회조차 거절하였다. 집으로 들어가서 사랑하는 아내와 편히 쉴 수 있는 달콤한 시간이 주어졌음에도 그는 왕궁 문에서 부하들과 더불어 잠자리를 한 것이다.

왕이 그에게 이유를 물었을 때 그의 대답이 어떠하였는가?

“언약궤와 이스라엘과 유다가 야영 중에 있고 내 주 요압과 내 왕의 부하들이 바깥 들에 진 치고 있거늘 내가 어찌 내 집으로 가서 먹고 마시고 내 처와 같이 자리이까 내가 이 일을 행하지 아니하기로 왕의 살아 계심과 왕의 혼의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나이다”(삼하 11:11)

그의 신앙과 그의 충성심을 충분히 엿볼 수 있다. 다시 한 번 주어지는 왕의 권유도 마다하고 전쟁터로 돌아간 그는 일선에서 용감히 싸우다 결국 전사하고 말았다.

여기까지만 하면 한 편의 아름다운 이야기로 끝날 수 있다. 그는 자신이 죽는 그 순간까지 자신이 그토록 충성을 다했던 왕과 자신이 사랑했던 아내가 부정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고, 그로 인해 자신이 죽게 되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그런 면에서 우리아는 정말 불쌍한 사람이다. 자신이 가장 아끼고 사랑했던 사람들로부터 배신을 당했고, 그로 인해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던...

우리도 온갖 계략과 배신이 난무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한 순간에 자신이 아끼던 모든 것을 빼앗길 수 있는 시대, 자신의 모든 것을 빼앗아가는 대상이 가장 친한 친구, 어떨 때는 그것이 자신의 가족인 경우도 비일비재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우리아처럼 너무나 깨끗하고 한 점 부끄러움이 없이 살아가는 사람을 찾기 어려운 세상에서 그런 사람이 그렇게 억울하게 죽어가야만 하는 세상에 대해 어떻게 말해야 할까?

신앙생활을 하면서 많은 이들이 교회의 부정적인 모습 때문에 가슴 아파하고 심하게는 환멸을 느끼는 경우들도 볼 수 있다. 그래도 주의 종이라고 끝까지 믿고 따랐는데, 자신에게 복음을 전해 준 권사님이나 장로님에게 엄청난 손해를 당하게 되었을 때, 그로 인한 충격은 차라리 보통 사람들에게 당하는 것과는 비교할 수조차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것조차 일상화되어버린 세상을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어떻게 위로할 수 있을까? 그래도 끝까지 충성하세요 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런데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참된 그리스도인의 삶이라면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실제로 이와 같은 문제로 수없이 고민하던 이들이 너무도 많았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구약성경에 욥기서가 있다. 그는 정말 깨끗한 삶을 살았다. 또한 하나님에 대한 온전한 믿음으로 살았다. 그럼에도 한 순간 모든 것을 잃지 않았는가? 온 몸에 종기 때문에 질그릇으로 긁고 있는 상황에서 그의 아내가 던진 말은 “당신이 그래도 자기의 온전함을 굳게 지키느냐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는 것이다.

욥기서를 읽으며 하나님을 향해 토해내는 욥의 탄식을 접할 수 있다. 물론 활자를 읽는 것에 불과하겠지만 실제로 그런 상황에 처했을 때, 아니 그보다 훨씬 가벼운 상황이라도 자신에게 그러한 일이 일어난다면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내가 말할 때마다 외치며 파멸과 멸망을 선포하므로 여호와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내가 종일토록 치욕과 모욕 거리가 됨이니이다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렘 20:8-9)라는 탄식을 쏟아붓는 예레미야 선지자의 말을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는가?

주의 길을 예비하기 위해 광야에서 외치던 세례 요한의 삶은 어떠한가? 그에게 의복은 낙타 털옷 한 벌이요, 그의 음식은 메뚜기와 석청이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그런 그였기에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을 향해 독설을 퍼부을 수 있지 않았겠는가? 그런 그도 헤로디아의 딸의 말 한 마디에 그 머리가 소반에 얹어지지 않았는가?

성경에 등장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차치하더라도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삶은 어떠했는가?

온갖 군중들의 비난과 조롱, 로마 군병들의 채찍 속에 십자가에 못박혀 고통 속에 죽어가지 않았는가? 그분에게 무슨 죄가 있다고 말할 것인가?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마 5:11-12)
 
주님이 하신 말씀이 큰 위안이 된다면 그 삶은 그래도 성공적인 삶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성공의 기준이 세상적인 것이라면 아무런 상관도 없는 말씀에 불과하겠지만 주님께 충성을 다한 삶이라면 죽음조차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주위에 우리아와 같은 이들이 많이 있다면 참 좋은 일이겠지만 온갖 권모술수에 휩싸인 삶을 살아가더라도 나만은 주님을 바라보고 그분을 위해 충성된 삶을 살아간다면 어떤 죽음도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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