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로니는 파시스트의 부활 아닌 시대 정신이다
멜로니는 파시스트의 부활 아닌 시대 정신이다
  • 민돈원
  • 승인 2022.10.11 12: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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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지아 멜로니(Giorgia Meloni, 1977.1.15.~ )이란 이름이 최근 세간에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그녀가 주목받는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최근 이탈리아 총리선거에서 역사상 최초로 당선된 여성 총리, 가수 출신 총리, 싱글 맘, 만29세부터 하원의원으로 줄곧 활동, 79년 만의 무솔리니 파시즘계 총리, 100년 만의 최초 극우 여성 정치인 등... 이처럼 다양한 이력을 소유한 데도 있지만 이 중에 어쩌면 세계적인 정치 트렌드와 의외로 다른 성향, 그것도 지나온 세계사에서 이미 겪었던 자국 이탈리아 정치계의 재현이었기 때문일 수 있다. 이런 이유로 멜로니 신임 총리를 우리나라 메이저 언론이 즐겨 쓰는 극우 성향 또는 파시스트 신봉자로 몰아세우는데 한목소리를 내고 있음을 본다.

그러나 멜로니 총리를 관심있게 지켜보아야 할 중요한 측면이 있다. 만약 그렇지않고 그를 이런 기존의 부정적 역사성향에 대입하여 제 입맛대로 재단하고 낙인찍어 ‘프루크루스 침대’형의 이념화를 털어내지 않는 한 그가 세계적 흐름과 과감하게 독보적으로 보인 행적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향해 곱지 않은 시선을 보이는 이유가 있다. 예컨대 그가 다음과 같은 뚜렷한 신념과 가정과 교회와 국가에 대한 정체성을 견지하는 데 있어 보인다. 이를테면

"페미니즘은 악마가 세상을 분열시키려 내려보낸 썩은 독사과"

"LGBT를 단호히 거부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과거 우리의 위대한 선조들처럼 동성애자들은 돌로 쳐서 정신을 차리게 해야 한다"

"동성애는 질병이다. 치료받을 권리만이 있다"

"오직 창조주 하나님만이 이 세상을 지배해야 한다“

라는 표현방식을 보면 우리나라 안에서 이른바 동성애 지지자들이 쟁점화 삼을 수 있는 논쟁거리다. 하지만 우리 사회 내 부지불식간에 깊숙이 뿌리 뻗쳐가는 사회악 딥 스테이트의 세력 - 이슬람의 확장, 페미니스트, 동성애 그리고 주사파 - 을 근절하겠다는 용기있는 선언으로 보인다. 아울러 멜라니가 중국을 평가했던 말도 우리 대한민국이 중국을 향해 취하고 있는 지난 수년간의 저자세와는 사뭇 다르게 단호하다. "중국은 지구의 쓰레기장이라고 볼 수 있다“라는 말이 그것이다.

공산주의 사회주의를 표방했던 이탈리아, 특히 이 나라 안토니오 그람시(1891-1937)와 같은 막시스트가 창안한 그 유명한 ‘진지전’이란 용어를 통한 사회 전복이 프랑스 6.8혁명을 가능케 한 문화 막시즘이다. 즉 정치만이 아니라 경제, 국방, 외교, 사회, 교육, 노동, 종교, 문화예술계, 그리고 지방 읍면 단위까지 파고들어 문화 막시즘의 옷을 입혀 원하는 체제화를 획책하는 방식이다. 그 중에 하나가 성 혁명, 동성애라는 사실이다. 이 배후를 알면 우리 기독교계가 지금처럼 안일할 수가 없다. 따라서 최근 이상하리만치 입법화하려 하거나 정부 기관에 등장한 인권, 평등, 민주, 차별, 성적지향, 성적 취향, 성 평등, 젠더, 등 이와같이 온갖 무심코 흘려버릴 수 없는 용어를 관심 있게 잘 들여다보아야 한다.

모든 선택에는 그에 대한 책임을 지게 하는 사회라야 살기 좋은 바람직한 사회다. 모든 개인의 무제한적 욕망마저 자신이 누릴 권리라고 주장하려면, 또한 모든 순리를 거역한 변덕스런 욕망이 누구나 보편적으로 누릴 권리가 되려고 하면 거기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라야 하고 사회의 보편적인 가치를 훼손해서는 안 된다는 전제가 충족되어야만 한다. 그런데 동성애 하나만 놓고 보더라도 그렇지 못하다. 이들 소수가 이미 우리 사회에 차별은커녕 특권을 누리고 있음은 기정사실이다. 차별하지 말라 주장하는 그들이 오히려 다수를 향해 역차별을 조장하고 있다, 심지어 우리 자녀에게 그들 역시 강요받기 싫은 것을 역으로 강요하는 것에 대해서는 저항할 수 없게 하고 누명을 씌우거나 시정명령을 지시하는 등 기존 사회질서와는 역행하고 있다.

이러한 교육, 정치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이방 문화가 들어와 택함받은 이들이 여호와 신앙을 버리자 성전은 더럽혀지고 강한 주변 제국에 의해 성전 예배가 없어져 하나님의 임재가 떠나버렸다. 그 결과 앗수르에 의해 패망한 고대 근동 이스라엘의 교훈을 반드시 되새겨 보아야만 한다.

이사야는 유다에게도 동일하게 임박한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게 될 것에 대해 경고한다. ”너희 소돔의 관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고모라의 백성아 우리 하나님의 법에 귀를 기울일지어다“(사1:10) 여기서 왜 유대를 향해 소돔이라고 불렀는지 고모라라고 불렀는지 우리는 이 시대를 보면 더 잘 알 수 있다. 아니 알았다면 스스로 답을 하고 오랜 악의 침묵과 나약함에서 떨치고 일어나야 한다. 멜로니같이 용기있게 외치는 지도자가 절실한 시대다. 그리고 이런 외침이 지금 우리 한국교회에도 수치스런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동일하게 외치고 들려져야 한다. 나아가서 이런 외침을 충격적으로 받아들임으로써 교회라도 깨어 있는 강단이 확산해 가기를 오늘도 간절히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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