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 나타난 죽음과 관련된 기록들 13
성경에 나타난 죽음과 관련된 기록들 13
  • 안양준
  • 승인 2022.10.12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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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로운 자의 피

불고지죄에 대해 두산대백과사전에 “반국가활동을 한 사람을 알고 있으면서도 수사기관이나 정보기관에 신고하지 않는 경우에 성립하는 죄”라고 기록하고 있다. 문민정부 이후 폐지되었지만 국가보안법, 그 안에 명시되어 있는 불고지죄가 얼마나 두려운 악법이었는가는 그 시대를 살았던 이들의 기억에 지워지지 않고 남아 있으리라 생각한다.

절대권력을 행사하는 사울 왕과 주변에 널린 간신들, 그로 인해 악정의 희생양이 되어버린 제사장 무리들...

선민 이스라엘의 초대왕 사울은 수차례 실정으로 하나님께 버림받게 되고, 새로운 왕으로 세워질 다윗에 대해 살의를 드러낸다. 그러한 과정에서 다윗의 도피 생활이 시작되는데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이 놉 땅에 있는 아히멜렉 제사장이다.

다윗이 이처럼 제사장의 성소를 찾은 이유는 자신이 어디로 피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묻기 위함이라 생각된다. 물론 이와 같은 의도는 나무랄 데가 없지만 도망자라는 자신의 상황으로 인해 거짓말을 하게 된다.

삼상 21:2에 “왕이 내게 일을 명령하고 이르시기를 내가 너를 보내는 것과 네게 명령한 일은 아무것도 사람에게 알리지 말라”고 한 것이다. 아히멜렉은 사울과 다윗 사이에 최근에 일어난 사건들에 대해 알지 못했고 자초지종을 말하면 도움을 얻지 못할까 하는 마음에서 그렇게 한 것인데 결국 비참한 결과가 빚어진 후에 “네 아버지 집의 모든 사람 죽은 것이 나의 탓이로다”(삼상 22:22)라며 침통하게 고백하는 장면을 볼 수 있다.

당시 다윗에게는 먹을 음식과 자신을 보호할 무기가 필요했다. 하지만 제사장 외에는 먹을 수 없는 진설병 밖에 없었다. 그때 아히멜렉 제사장은 다윗과 그를 따르는 자들이 의식상 정결한가에 대해서만 확인하고 이를 내주었지만 이러한 행위를 예수님께서도 정당한 것으로 규정하시는 것을 볼 수 있다.(마 12:3-4)

율법의 목적이 의문(儀文)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에 있는 까닭이다.

문제는 그 자리에 사울의 목자장이었던 도엑이라는 사람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를 의식한 다윗이 다급한 상황을 피하려는 마음에 급히 자리를 떠나 버렸다.

그리고 찾아간 곳이 블레셋에 갔다가 죽을 뻔한 상황을 미친 체하여 간신히 모면했고 다시 아둘람 굴로 돌아왔을 때 자신을 찾아온 400명의 무리가 합류하게 되었다. 이후 모압에 갔다가 유대 헤렛 수풀로 돌아왔는데, 다윗과 함께 한 자들이 나타났다는 말이 사울의 귀에 들리게 되고(삼상 22:6) 다시 다윗을 찾기 위해 혈안이 된 것이다.

“너희가 다 공모하여 나를 대적하며 내 아들이 이새의 아들과 맹약하였으되 내게 고발하는 자가 하나도 없다”(삼상 22:8)는 말에서 사울 왕의 피해 의식을 볼 수 있지만 여기서 ‘불고지죄’가 등장한다. 즉 알면서 말하지 않는 것이 죄에 해당하는 것이다.

“베냐민 사람들아 들으라 이새의 아들이 너희에게 각기 밭과 포도원을 주며 너희로 천부장, 백부장을 삼겠느냐?”(삼상 22:7)

사울은 베냐민 지파에 속한 사람이다. 측근들을 자기 지파 사람으로 세워놓은 것을 볼 수 있다. 그들에게 준 밭이나 포도원은 결국 백성들의 것을 빼앗은 것이며 이는 왕정을 요구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사무엘 선지자가 일찍이 말한 내용이다.

공의가 아닌 사적인 권력욕을 성취하기 위한 수단으로 나라를 다스리는 자는 왕의 자질이 없는 자이다. 그럼에도 그런 자의 주위에 비슷한 동류가 모이는 것을 수많은 역사에서 발견할 수 있다. 이러한 자를 가리켜 간신(奸臣)이라 부른다.

다윗이 놉 땅에 아히멜렉을 찾아왔던 장면을 목격한 도엑이라는 인물은 전형적인 간신의 모형이라 할 수 있다. 도엑이 사울에게 고하는 내용이 무엇인가?

“이새의 아들이 놉에 와서 아히둡의 아들 아히멜렉에게 이른 것을 내가 보았는데 아히멜렉이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묻고 그에게 음식도 주고 블레셋 사람 골리앗의 칼도 주더이다.”(삼상 22:9-10)

도엑의 말을 들은 사울 왕은 아히멜렉에게 반역죄를 뒤집어 씌운다. 도엑이 말한 세 가지 증거가 반역죄에 해당하는 것인가? 모세의 율법에 의하면 두 명 이상의 증인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더라도 아히멜렉 한 사람에게만 죄를 물어야 하는 것이 옳은 것이다. 

아히멜렉 제사장이 자신의 무죄를 증언함에도 제사장 무리 85인을 모두 죽이고 그것도 부족하여 놉 땅에 있는 남녀와 아이들과 젖 먹는 자들과 소와 나귀와 양을 모두 칼로 치는 악행을 저질렀다.

자신의 왕위를 필사적으로 지키려는 사울의 집착과 도엑의 기회주의적인 처세술이 합작하여 만들어낸 추악한 작품이다.

제사장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제사 업무를 수행하는 자이다. 사울이 자신의 입으로 ‘여호와의 제사장’(삼상 22:17)이라고 분명히 말하지 않는가? 그럼에도 여호와의 제사장을 죽이는 일조차 서슴없이 자행하는 자를 하나님께서 어찌 용서할 수 있을까? 그뿐 아니라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거룩한 땅을 무참하게 파괴하는 만행을 어찌 두고 볼 수 있을까?

정의에서 떠난 권력은 범죄집단에 다를 바 없다. 

시편 52편은 다윗이 간악한 자 도엑에 대해 쓴 시이다. 부제가 “에돔인 도엑이 사울에게 이르러 다윗이 아히멜렉의 집에 왔다고 그에게 말하던 때에”라고 달려있다. 

“포악한 자여 네가 어찌하여 악한 계획을 스스로 자랑하는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항상 있도다 네 혀가 심한 악을 꾀하여 날카로운 삭도 같이 간사를 행하는도다 네가 선보다 악을 사랑하며 의를 말함보다 거짓을 사랑하는도다 간사한 혀여 너는 남을 해치는 모든 말을 좋아하는도다 그런즉 하나님이 영원히 너를 멸하심이여 너를 붙잡아 네 장막에서 뽑아 내며 살아 있는 땅에서 네 뿌리를 빼시리로다”

악한 자들의 공모, 사울과 같은 자가 권력을 휘두르고, 도엑같은 자들이 판치는 세상...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아벨의 피로부터 제단과 성소 사이에서 죽임을 당한 사가랴의 피까지 의인의 피가 얼마나 많이 흘렀는가? 

그러나 역사는 악인이 형통한 것이 결코 부러운 것이 아니라고 증명해 준다.

“눈이 높은 것과 마음이 교만한 것과 악인이 형통한 것은 다 죄니라”(잠 21:4)

이처럼 개인의 죽음만 아니라 여러 사람, 수많은 인류의 죽음을 찾아 볼 수 있다. 당시로서는 억울한 죽음이지만 중요한 것은 “어느 편에 섰는가?”에 있다. 양심을 지키고, 정의를 지키고, 하나님 편에 선 자들의 죽음은 결코 헛되지 않다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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