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 못 드리겠어요.
예배 못 드리겠어요.
  • 남광현
  • 승인 2022.10.11 1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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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 출석한 지 몇 해 되지 않은 여 집사님이 교회마당에서 걸음을 재촉하며 목사에게 급히 전하는 말이다.

“목사님, 저 오늘 속회예배 못 드린다고 사모님께 전해주세요, 죄송해요”

“아니, 무슨 일 있으신 거예요?”

“예, 목사님, 제 남편이 배에서 떨어져 다리가 부러졌다나 봐요”

“아이고, 어쩌다가……. 빨리 가보세요”

“예, 사모님께 죄송하다고 전해주세요”

“그런 걱정 마시고요, 운전 조심하세요.”

필자가 섬기는 교회에서 제일 젊은 집사님이다. 40대 중반인 집사님은 몇 해 전 필자에게 커피 바리스타 교육을 받으면서 오랫동안 멈추었던 신앙생활을 아무 연고 없는 이곳에서 다시 시작한 분이다. 서울살이 때 언니와 함께 미용실을 운영했으며 남편을 만나고는 강남에서 정육점을 운영했던 이력을 가진 분으로 현재는 낚싯배를 운영하고 있다. 필자에게는 고맙게도 담당 전문 미용사가 되어 주신 분이다. 어촌의 특징 중 하나가 미국 한인사회의 특징과 거의 같은 것이 있는데 그것은 “과거 삶의 이력에 관해 먼저 묻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촌 지기 20년생으로 새로이 등록하는 교인들의 과거를 묻지 않는 것이 목회의 노하우라는 것쯤은 알 연배이기도 하지만 적어도 먼저 입을 떼기까지 인내를 가지고 기다릴 줄 안다는 것이다. 집사님도 함께 신앙생활을 한 지 1년 남짓 되어서야 이곳까지 오게 된 배경과 자신의 삶에 관해 목사 내외에게 간증으로 전해주었다. 서울 한복판에서 미용사로서 큰 꿈을 가졌던 시절도 있었고 큰 돈벌이를 해보겠다고 강남에 정육점도 내 보았지만 결국 어부의 아내가 된 집사님은 과거 산후우울증으로 가정을 지킬 수 없을 만큼 심각했었지만 지금은 신앙생활을 통해 너무 행복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고백한다.

어부의 아내가 된다는 것에는 몇 가지 조건이 따른다. 첫째, 내 시간을 포기한다는 조건이다. 낚싯배의 일과는 철마다 다르기는 하지만 보통 새벽 2시부터 시작된다. 그것도 전날까지 도시락 만들 채비가 끝났을 때 시간이다. 아니면 새벽 1시에 일어나도 분주하다. 새벽 2시에 일어나 밥과 국을 짓고 낚시 인원수만큼 도시락을 만들어야 하고(대부분 이것은 안주인의 부수입원이 된다.), 미끼와 부식을 준비해 배에 실어 주는 일도 챙겨야 한다. 이것을 빠뜨리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왜냐하면 한번 출항하면 다시 돌아올 수 없기 때문에 결국 그날 선가(船價)를 모두 돌려주어야 할 뿐만 아니라, 몇 배의 위약금도 지불 해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하기에 어부의 아내로서 내 시간을 먼저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둘째, 여인으로서 갖춤을 포기한다는 조건이다. 농촌도 마찬가지이겠지만 어촌의 일이 험하다. 어촌 아낙들이 힘쓰는 것을 보면 도시의 웬만한 장정도 이기기 어려울 정도다. 대부분의 뱃일들이 힘을 써야만 해결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꽃단장하고 예쁜 옷에 손톱정리를 고집하기 어렵다. 오히려 거추장스럽기에 일하기 편한 옷을 선호하게 된다. 생활이 이렇게 이루어지다 보니 때론 두 손의 거칠기가 노동판의 험한 일꾼 손과 다름없게 보일 때도 있다. 평생 어부의 아내로 살아낸다면 손가락 관절염은 기본이고 관절마다 고통의 흔적을 지니고 살아가게 된다고들 말한다. 집사님이 어촌으로 내려 온 지 아직 10년도 안 되어 관절염은 없지만, 평소의 복장과 주일 예배 때 보는 복장이 확연히 다른 것을 볼 때, 서울살이 동안 즐겨 입던 옷은 부담스러운 듯하다.

아직은 남편이 교회로 발걸음을 옮기지 못하고 있지만, 함께 교회로 오기를 기대하고 기도하는 모습이 아름답다. 어촌에서 어부의 아내로 힘든 삶을 이루어 가고 있지만, 목사와 사모의 전담 미용사를 자처하면서 바쁜 와중에도 주일 준비하시라 때를 지켜 관리해 주고, 아무리 어려워도 늘 미소를 잃지 않고 교회의 일군이 되어 주고, 남편이 그리 위험한 일을 당했는데도 예배를 염려하는 소중한 교회 공동체의 구성원이 되어 주었다. 감사하다.

“집사님, 남편분 다리 어떠세요?”

“사모님, 감사하게도 부러지지 않고 인대만 파열 되었다네요. 그래서 입원하지 않고 그냥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에요”

“참, 다행이에요 집사님, 저희 함께 기도 할게요”

“예, 사모님 전화까지 주시고 감사해요. 그리고 예배 못 드려 죄송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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