땡 목사가 된 주성호(2)
땡 목사가 된 주성호(2)
  • 주성호
  • 승인 2012.10.29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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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땡 목사가 된 주성호(2)

하나님의 은혜로 무사히 결혼을 하고는 주일을 지나 바로 베이징에 교육차 백목사와 함께 동행 했다.
김건상 선교사는 신혼인데 호텔에 투숙케 해 쾌적한 분위기에서 한 주간의 교육 일정을 잘 보내고 돌아왔다. 그 후부터는 가능하면 중국 선교에 동행하려고 했지만 자비량인고로 혼자 다닐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방법도 한 번의 비행기 요금으로 두 곳의 신학교 교육 일정을 잡고 보니 보통 한번에 2주 과정의 일정으로 바뀌게 되었다. 그렇게 하여 2011년도에는 6회 출국에 13곳의 교육을 마칠 수 있었다.

결혼 후 2년이 지난 요즈음에 와서는 백목사의 자녀들의 태도가 많이 달라졌다. 아들인 인철이는 직장이 수원 삼성이지만 우리 집에 주소 이전을 하여 의료보험 혜택을 받게 하며 자주 와서 자고 다니며, 큰 딸 인애는 지난 달 교회에서 자기 친구에게 나를 소개하기를 “우리 새 아빠에요”라고 했고, 작은 딸 미애는 이번 추석 때 양가의 가족들이 다 모여 함께 지내고 난 후 막내아들 주목사를 보고 목사 오빠 내외가 참 좋은 사람들이야 라는 고백이 나왔다.

결혼 후 3년차 되어 양가가 한 가족이 되었고 거리낌 없는 분위기가 조성되었는데 역시 아내인 백목사의 역할이 컸다고 본다. 양가의 자녀들에게 좋은 본보기를 보였기 때문이며 행복한 모습 그대로를 거침없이 표현한 이유라고 본다.
이번 추석에는 양가가 다 모이고 이틀 밤이나 함께 지나는 과정에 아이들에 의해 대형 사고도 저질렀고 말 그대로 시끌벅적했는데 사람 사는 맛을 알게 해 주었다.
15인 승으로 함께 극장에 가서 어른들은 광해군을, 아이들은 메리다와 마법의 숲을 보고나서 포천까지 가서 오리고기로 점심을 먹고 나니 그야말로 부러울 것이 없는 부자 된 느낌이다.

사람 사는 방법이 나름대로 있고 행복의 기준은 돈에 있지 않다고 하지만 실제로 살아가는 데는 그리 쉽지 않은 것이 세상살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감사한 것은 주변의 모두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믿음으로 수용하고 기도하면서 범사가 형통함을 체험하며 감사할 수 있다는 점이다.
수입에 비해 지출이 많다보니 금년 들어서는 외국에 나가는 것을 자제하고 주로 지역 아파트를 위해 일하기로 마음먹고 나서 활동을 하다 보니 신창 아파트 경로당 회장이 되었다.

금년 1월 10일 개관 이 후 영어 캠프를 시작하며 어린이 반, 성인 반, 원어민 반에 이어 방치된 도서를 접수해 도서관도 개관했다.
건강보험 공단의 실버 댄스를 유치했고, 두 달 전부터는 딸 재련이가 와서 무료로 경로당에서 바이올린 반을 개설해 벌써 명곡에 들어갔다.
다음 주부터는 동두천 노인 지회 지원으로 노끈 공예를 시작한다.
이번 추석 명절 이틀 앞두고 경로당에서 쌀 서 말로 송편 빚기를 하여 나누어가지고 가는 행사로 7시간 동안 수고들을 많이 하면서 힘은 들었지만 불참한 가정엔 내 아내가 12집을 밤에 배달까지 하는 수고를 감당했다.

작년 6월부터 시작된 kmc 뉴스 사이트의 월요 연재의 “주성호 목사의 은퇴 후의 이야기”는 독자들이 많은 것도 행복하고 1년 이상 은퇴 후의 이야기를 쓸 수 있다는 것 자체도 감사할 뿐이다. 금년 말까지 일단 연재를 끝내고 “평생 엉뚱한 짓만 한 별난 목사”의 후편으로 이번 연재한 내용으로 “나 이렇게 행복해도 돼”라는 51번째의 책을 내 놓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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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골장로 2012-11-01 21:35:07
쉰한번째 책을꼭 보내주시기를~~~김기태 장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