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 나타난 죽음과 관련된 기록들 11
성경에 나타난 죽음과 관련된 기록들 11
  • 안양준
  • 승인 2022.09.28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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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인의 죽음

2003년 4월에 개봉했던 ‘돌이킬 수 없는’이라는 프랑스 영화가 있었다. 2002년 칸느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시상한 이 영화는 잔인하게 강간을 당한 여인을 보고 애인 관계였던 두 남자가 복수를 하는 이야기이다.

시사회가 시작될 때까지 내용을 밝힐 수 없다고 한 것이나 시사회가 밤 12시 자정에 진행된 것도 극히 이례적이었다. 국내에 개봉한다는 정보를 접하고 설레었던 감정과 영화를 보고 난 후에 마음속에 불편한 여운이 오랫 동안 지워지지 않았던 영화이다. 예고편처럼 제작된 뮤직비디오에는 잔디밭에 한가로이 누워 책을 읽는 여주인공 알렉스와 베토벤 7번 교향곡이 배경음악으로 잔잔하게 흐르고 있다. 얼마 후 다가올 엄청난 비극을 전혀 알지 못하고….

영화는 어지러운 화면과 시끄러운 사이렌 소리로 시작된다. 마치 시간을 역주행하며 불행한 현실과 대비되듯 행복했던 과거의 순간들을 하나씩 들춰내지만 제목이 말해주듯 돌이킬 수 없는 과거가 되어버린 것이다. 한 여인과 이를 사랑하는 두 남자, 현재의 애인과 과거의 애인이 마치 우정을 나누는 친구처럼 세 사람이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일상이 어쩌면 불행을 예고하는 전조가 아니었을까?

이와 같이 성적 모티브를 주제로 하는 사건들을 성경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그 중 하나가 창세기 19장에 등장하는 죄악으로 인해 유황불로 멸망한 소돔 성 이야기이다.
“소돔 백성들이 노소를 막론하고 원근에서 다 모여 그 집을 에워싸고 ~ 오늘 밤에 네게 온 사람들이 어디 있느냐 이끌어 내라 우리가 그들을 상관하리라”(창 19:4-5)
동성애가 판치는 소돔 사람들의 모습에서 약간의 수치심도 보이지 않는다. 남색자라는 써더마이트(sodomite)가 소돔 사람들이라는 어원에서 나온 것이다. 다급한 상황에도 지체하는 롯, 천사의 경고를 농담으로 여기는 사위들, 뒤를 돌아본 고로 소금기둥이 된 롯의 아내, 아비에게 술을 먹이고 근친상간을 저지른 두 딸의 모습이 소돔에서 살며 자연스럽게 배인 죄악의 속성이 아닐까? 그리고 다른 하나는 사사기 종결부에 –19장부터 21장까지- 하나의 사건을 세 장씩이나 할애하여 소개하는 이야기이다. 잔인한 강간 –윤간-, 한 여인의 죽음, 그로 인한 복수극이 이스라엘 열두 지파 중 한 지파를 완전히 지워버리는 위기에까지 몰았던 사건이다.

사건 내막을 간단히 설명하면 한 레위인이 첩을 두었는데, 이 여인이 행음한 후 친정으로 돌아가자 그녀를 다시 데려오는 과정에서 묶게 된 기브아에서 불량배(벨리알)들에 의해 여인이 죽게 되고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기 위해 여인의 시신을 열두 도막을 내어 열두 지파에 보내어 전체 총회가 열리고 불량배들의 죄를 물으려 할 때 기브아가 속한 베냐민 지파가 반대하므로 동족상잔의 비극이 일어난 것이다.

이 사건에서 불량배들이 레위인이 투숙하던 집을 에워싸고 “네 집에 들어온 사람을 끌어내라 우리가 그와 관계하리라”고 하는 것이나 집 주인이 “여기 내 처녀 딸과 이 사람의 첩이 있은즉 내가 그들을 끌어내리니 너희가 그들을 욕보이든지 너희 눈에 좋은 대로 행하되 오직 이 사람에게는 이런 망령된 일을 행하지 말라”고 하는 모습이 마치 소돔성 사건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처럼 보여진다. 소돔에서도 동성애가 발단이 된 것처럼 이 사건 역시 동성애가 발단이었다. 즉 불량배들의 타깃은 레위인이었다. 그들이 “관계하리라”고 말한 ‘야다’는 소돔성 사람들이 천사들과 “상관하리라”고 할 때 쓰인 단어와 같은 것이다. 그런데 사사기 사건은 레위인이 주체였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종교인의 부도덕한 행실, 자신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타인을 희생시키는 이기심, 자신의 억울함을 보복하고자 시신을 열두 조각으로 자르는 잔인함, 총회에서 보고할 때 치부는 감추고 유리한 증언만 드러내는 위선.
‘한 여인의 죽음’
결국 돌이킬 수 없는 상황으로 확장하는 내용은 영화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엄청난 파장을 일으킨다. 사건 서두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을 그 때에”(삿 19:1)라는 글은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다”는 후반부가 생략되었을 뿐 실제로는 그렇게 전개되고 사사기 역사가 암울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유감없이 드러내고 있다.

한국교회는 서서히 추락하고 있다. 「한국교회 트랜드 2023」이라는 책 내용은 하나 같이 코로나 팬데믹 이후 상황에 대한 처방을 골자로 하고 있다. 과연 그것들이 정답일까? 한국교회를 바라보며 사사기의 모습이 연상되는 것은 나만의 기우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입성한 후 너무나 빨리 여호와 신앙을 버리고 원주민과 타협하고 그들의 신 바알을 섬겼던 이유는 세상 풍요를 바란 탓이다. 현재 교회는 두 남자가 한 여인을 두고 너무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것처럼 세상에 동조하는 것 뿐 아니라 앞장서서 주도해가고 있지 않은가? 이러한 것들이 불행을 예고하는 전조로 느껴지지 않는가?
“이에 온 이스라엘 자손 모든 백성이 올라가 벧엘에 이르러 울며 거기서 여호와 앞에 앉아서 그 날이 저물도록 금식하고 번제와 화목제를 여호와 앞에 드리고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물으니라”(삿 20:26)
성경은 분명하게 답을 제시해주고 있다. 회개의 기도와 여호와의 뜻대로 행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다가올 수 있다. 행복했던 순간들이 희미한 추억의 파편으로 남았을 뿐 처참한 현실 앞에서 울부짖는 그 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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