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7년 10월 31일 루터의 95개 반박문을 만나다!!
1517년 10월 31일 루터의 95개 반박문을 만나다!!
  • 송양현
  • 승인 2022.09.18 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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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회연구원 존 웨슬리 헤른후트 여정 탐방기 4
루터의 95개조 반박문

기독교대한감리회 총회 산하 속회연구원(박동찬 이사장, 지광식 원장)은 2022년 9월 11일부터 23일까지 13일간의 일정으로 ‘존 웨슬리 헤른후트 방문 여정 탐방’을 진행했다. 네덜란드, 벨기에, 독일, 체코를 경유하는 이번 일정은 존 웨슬리가 모라비안교도들을 만나러 가기 위해 떠났던 여정을 찾아가면서 종교개혁과 문화를 함께 접하는 일정을 설정했다.

예나 대학 내 신학대학 앞에서

존 웨슬리는 헤른후트로 가는 길에 독일의 명문대학인 예나 대학을 거쳐 지났다. 웨슬리 저널에 따르면 1738년 7월 24일(월) 예나(Jena)에 도착했고, 웨슬리는 그의 일기에서 이곳 지형적 특색과 학생들이 칼을 차고 다니는 것, 그리고 영국과 달리 학생들이 세를 들어 살거나 하숙을 하고 있는 특이점을 기록하고 있다. 공산주의 창시자 마르크스가 이곳에서 철학박사학위를 받을 만큼 학생들의 사회적 참여가 높았기에 칼을 차고 다녔던 것으로 유추된다. 현재는 예나 대학의 광학기술(안경, 카메라, 망원경 등)이 세계적인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95개조 반박문을 게시했던 비텐베르크 성곽 교회 문

비텐베르크는 루터가 종교 개혁을 일으킨 곳으로 유명하다. 그가 교수로 활동했던 시절 집과 그가 설교하고 결혼했던 시민마리아교회, 95개조 반박문을 붙인 비텐베르크 슐로스 교회(성교회 혹은 궁정교회)의 문을 볼 수 있으며 교회 안에는 루터와 멜란히톤의 무덤이 있다.

인근 루터하우스에는 그의 가족이 약 38년간 거처했던 곳으로 수도원이었던 곳을 사들여 루터가 생활 했으며, 현재는 박물관으로 활용되고 있으며, 당시 루터가 사용했던 방이 잘 보존되어 있으며, 학생들과 토론했던 방도 직접 확인할 수 있다. 또한, 그가 사용하던 책상과 설교단, 옷, 성경 초고 등도 있으며, 인근에는 루터가 교황에게 받은 파문교서를 태운 장소에 심은 루터나무(떡갈나무)도 있다. 루터는 이곳에서 95개조 반박문을 게시한 후 앞선 여정에서 방문했던 유럽의 밧모섬이라 불리는 바르트부르크 성으로 도피해 생활하게 된다.

포츠담 선언이 있었던 체칠리엔 호프 궁전

비텐베르크에서 베를린으로 가중 중간에는 포츠담 선언으로 잘 알려진 체칠리엔 호프 궁전이 있다. 이 궁전에서는 1945년 7월 26일 포츠담 선언을 했으며, 이를토대로 일본에 항복을 요구했으나, 일본이 독일은 패했어도 일본은 끝까지 항전하기로 선택했고, 결국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을 투하하게 됐다. 항간에는 이곳에서 대한민국의 38도 선을 논의 했다고 알려져 있으나 확인된바 없으며, 38도 선은 미국이 먼저 당시 소련에게 제시했고, 소련이 이를 수락함으로써 생기게 됐다.

좌측 박용호 감독 부부와 우측 이 철 감독회장 부부

한편, 여행 일정 중 호남연회 박용호 감독과 동행한 염숙경 사모의 생일이 있어 함께 축하하는 작은 이벤트도 진행됐다.

시교회 = 시민마리아 교회 (Stadtkirche) 모형

최초의 개신교 예배와 최초 독일어 예배가 이뤄진 장소이며, 루터가 결혼한 곳이며 설교를 하던 곳이다.

시민마리아교회 강단
시민마리아교회
루터의 동상
루터 하우스
본래 수도원 건물이었던 루터 하우스
루터가 제자들과 토론하고 공부했던 방
루터가 제자들과 토론하고 공부했던 방
루터 하우스
95개조 반박문을 게시했던 비텐베르크 슐로스 교회(성교회 혹은 궁정교회라고 부름)에는 루터와 멜란히톤의 무덤이 있음

담당 여행사 / 갈릴리 여행사 (www.galtur.com) / 02 - 775 - 5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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