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터의 성서번역과 종교개혁의 바르트부르그 성
루터의 성서번역과 종교개혁의 바르트부르그 성
  • 송양현
  • 승인 2022.09.17 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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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회연구원 존 웨슬리 헤른후트 여정 탐방기 3

기독교대한감리회 총회 산하 속회연구원(박동찬 이사장, 지광식 원장)은 2022년 9월 11일부터 23일까지 13일간의 일정으로 ‘존 웨슬리 헤른후트 방문 여정 탐방’을 진행했다. 네덜란드, 벨기에, 독일, 체코를 경유하는 이번 일정은 존 웨슬리가 모라비안교도들을 만나러 가기 위해 떠났던 여정을 찾아가면서 종교개혁과 문화를 함께 접하는 일정을 설정했다.

바흐 하우스

독일 아이제나흐는 유서 깊은 옛도시로 음악의 아버지 바흐가 출생한 곳이며 루터가 소년 시절에 이 도시에서 살았다. 특히 루터는 비텐베르크 등지에서 활동하다가 다시 이곳으로 돌아와 1521년부터 영주들의 보호를 받으며 바르트부르크 성에서 신약성서를 번역했다.

바흐 하우스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는 루터의 하숙집이 있으며, 하숙집 옆에는 나무가 한그루 있으며 그 앞에는 루터의 명언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표지석이 있다.

루터의 아이제나흐 하숙집 인근 사과나무 명언 표지석이 있는 나무
루터가 성서번역을 했던 방

바르트부르그 성은 1521년 보름스 제국의회 이후 루터가 은신하며 신약성경을 번역한 곳으로 루터의 지지자들은 이곳을 ‘밧모섬’이라 부르기도 했다. 특히 이 성 루터의 방은 루터가 성서를 번역하는데 악마가 방문하자 잉크를 던졌다는 일화로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당시 루터의 성서 번역은 종교개혁의 산실일 뿐 아니라 독일어를 통일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인정받고 있다. 독일 분열 당시 동독에서는 신학자 루터보다 독일어를 통일시킨 학자로 더 유명했었다.

아이제나흐 인근 바이마르라는 소도시에는 독일의 작가 쾨테와 쉴러의 하우스가 각각 위치해있으며 유대인을 강제수용하고 학살했던 부헨발트 강제수용소가 있다.

루터가 성서를 번역했던 바르트부르그 성
루터가 성서를 번역했던 바르트부르그 성에 전시된 루터 관련 자료
루터가 성서를 번역했던 바르트부르그 성에 전시된 루터 관련 자료
루터가 하숙했던 집
바흐 하우스 전시물
바흐의 생가
바흐 하우스 전시물
음악의 아버지 바흐의 동상
부헨발트 강제수용소
부헨발트 강제수용소
부헨발트 강제수용소 / 오른쪽 굴둑이 가스실이고 좌측 수용시설은 터만 남아있다

담당 여행사 / 갈릴리 여행사 (www.galtur.com) / 02 - 775 - 5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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