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가치는?
예수님의 가치는?
  • 이구영
  • 승인 2022.08.26 07: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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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베다니라는 마을에 가십니다. 베다니는 예루살렘에서 3km정도 떨어져 있는 감람산 동편 기슭에 자리 잡은 작은 마을입니다. 이곳에는 나사로라는 사람이 마르다와 마리아라는 두 여동생과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이 집의 막내 딸 이름이 마리아입니다. 우리는 그를 ‘베다니의 마리아’ 라고 부릅니다.

예수님께서 드디어 베다니에 오시게 되었습니다. 나사로네 삼남매와는 가족처럼 지내시던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그곳에 오시자 마르다는 음식을 준비합니다. 큰 잔치를 열었습니다. 동네 사람들도 초대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 막내 마리아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고, 본적도 없었던 일을 하나 시작했습니다. 지극히 비싼 향유. 얼마나 비싸고 좋은 것인지 성경은 순전한 나드 한 근이라고 표시합니다. 지금처럼 향수나 / 세제가 발달했던 시대가 아닙니다. 그냥 몸에 조금씩 기름을 바르던 시대인데 100% 나드 기름을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기의 머리털로 예수님의 발을 닦고 있었습니다. 향유니까 좋은 냄새가 방에 퍼졌습니다. 사람들이 술렁대기 시작합니다. 저게 얼마짜린데, 저게 얼마나 귀한 것인데 저것을 저렇게 쏟아버린다고... 제자 중 하나인 가룟 유다는 이 향유를 300데나리온에 팔아서 가난한 자들에게 주는 것이 낫지 왜 저렇게 예수님의 발에 붓느냐고... 궁시렁대고 있습니다. 옥합은 한번 깨면 다시 못 사용하는 자그마한 병입니다.

결혼을 준비하는 여자들이 돈을 모아서 비싼 향유, 좋은 냄새나는 기름을 옥합에 담고 밀봉을 합니다. 그리고는 결혼식 후에 그것을 사용하기도 하고, 간직하기도 하는 아주 귀한 옥합입니다. 옥합과 향유의 가격은 노동자들의 일 년 연봉! 수 천 만원에 해당했습니다. 요즘으로 하면 대학졸업하고 직장취직해서, 시집갈 때 쓰려고 매달 아끼고 아끼며 적금 들고 또 적금 들고 해서 모음 모든 돈을 하나님께 드렸다는 뜻입니다.

수군거리는 사람들을 보면서 예수님께서 한 말씀 하십니다.
‘마리아가 어떤 일을 하든지 그냥 두어라! 그는 말씀 중심으로 살아 영의 눈이 열려져 있는 사람이다. 너희들은 오늘의 이 잔치 자리를 보고 있지만 그는 이제 곧 이어질 지금 내 장례를 준비하고 있는 것이고, 사람이 죽으면 시체가 썩고 그 냄새가 나지 말라고 향유를 붓는데 바로 이 마리아가 지금 내 죽음을 준비하면서 미리 향유를 붓는 것이다. 또 나는 곧 아버지 하나님께로 가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늘 너희들 주변에 있으니 언제라도 도울 수 있지 않느냐? 그러니 마리아가 하는 이 귀한 예언적 헌신을 그냥 두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향유 부은 마리아의 이야기에서 강조하는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향한 사랑! 혹은 자원하는 헌신 또는 거룩한 죽음을 준비하는 의식입니다. 왜 마리아는 그 비싼 거, 그 귀한 거, 몇 년을 시집 밑천으로 모은 그것을 예수님께 홀랑 다 드리며 그 거룩한 의식을, 혹은 그 사랑을 표현했을까요?
간단한 이유가 있습니다. 옥합에 담김 향유의 가치보다 예수님의 죽으심이 예수님의 대속의 죽음, 나를 위해 흘리시게 된 그 보혈의 피가 더 귀하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향유의 가치보다 예수님 당신의 가치를 더 귀하게 보기 때문입니다. 나드 향유가 싸구려가 아닙니다. 향유는 귀하고 귀한, 그것 준비하느라고 몇 년을 고생한 값진 것 맞습니다. 그런데 그 귀하고 값진 것이 예수님하고 비교해 보니까 하찮게 느껴진 것입니다.

여기에 헌신의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고 몸을 드리고 정성과 재주와 시간을 드립니다. 내 것이 귀하지 않은 게 아닙니다. 돈도 귀하고 시간도 귀하고 내 몸도 귀합니다. 그런데 아무리 귀해도 예수님가치만 못하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 그분이 나를 얼마나 사랑해주셨는지 마리아는 알고 있습니다.
. 그분이 죽은 오빠를 살려주셨음에 지금 우리의 행복이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 그분이 언니 마르다를 살맛나도록 용기를 주시고 삶의 방향을 가르쳐주셨음을 알고 있습니다.
. 대속의 죽음을 위해 십자가를 지고 돌아가셔야 하는 그분께 감사의 마음 가득 담아 예의를 표시하고 싶었습니다.
. 은혜 받았고 조금이라도 은혜에 보답하고 싶었습니다. 감사가 많았습니다.
. 어떻게라도 감사를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여기에 자원하는 심령의 헌신이 시작됩니다.

오늘 내게 있어서 예수님의 가치는 어느 정도 일까요?
무엇과 바꿀 수 있을까요?
오늘 내게 있어 제일 귀한 것은 무엇? 혹은 누구일까요?
마리아처럼 예수님을 내 삶의 최고의 가치로 여기고 다른 것들을 하찮게 여길 수 있는 참 믿음과 헌신의 사람이 되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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