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 나타난 죽음과 관련된 기록들 6
성경에 나타난 죽음과 관련된 기록들 6
  • 안양준
  • 승인 2022.08.24 0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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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골 골짜기

여호수아는 흔히 ‘승리의 책’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함으로 전쟁에서 승리의 행진을 거듭하는, 그래서 현대를 살아가는 신약 성도들에게 귀한 예표가 되는 책, 그런 면에서 계속적인 패배를 거듭하는 사사기와는 매우 대조적인 책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여호수아에도 단 한 번 전쟁에서의 패배가 등장한다.

출애굽 이후 40년의 광야 생활을 하는 동안 이스라엘을 이끌었던 위대한 지도자 모세의 죽음 이후 그의 후계자였던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의 새 지도자가 되었다.

여호수아 1장에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시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니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라”
“강하고 담대하라 너는 내가 그들의 조상에게 맹세하여 그들에게 주리라 한 땅을 이 백성에게 차지하게 하리라”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이처럼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난공불락의 성 여리고를 함락시키는 쾌거를 이루었다. 하지만 여리고 다음으로 공략할 대상이었던 아이성에서 예상치 못했던 패배를 맛보게 된 것이다.

아이성 패배의 원인은 무엇인가? 원인을 분석하면 몇 가지가 나오지만 가장 강력한 원인 제공자가 바로 아간이다.

여호수아 6장 18-19절에 “너희는 온전히 바치고 그 바친 것 중에서 어떤 것이든지 취하여 너희가 이스라엘 진영으로 바치는 것이 되게 하여 고통을 당하게 되지 아니하도록 오직 너희는 그 바친 물건에 손대지 말라 은금과 동철 기구들은 다 여호와께 구별될 것이니 그것을 여호와의 곳간에 들일지니라 하니라”는 말씀이 있다.

이는 여리고 성을 함락시킬 때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경고한 내용이다. 여리고 성을 칠 때에 기본적인 전제는 진멸이었으나, 예외 대상이 은금과 동철에 대한 부분은 여호와의 곳간에 들이라는 것이다. 그 이유는 이들은 여호와께 구별된 것이기 때문이다. 이외에 어떤 것이든 취하지 말아야 할 것은 그로 인해 이스라엘 전체가 고통을 당하게 된다고 분명히 경고하고 있다.

물론 진멸에 관한 명령은 여리고 성을 함락시킬 때 처음 내려진 명령이 아니라 이전 모세가 요단 저편 모압 평지(신 1:1)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설교할 때 분명하게 선포했던 내용(신 7:1-2)이다. 단 신명기 2장에 하나님께서 치지 말아야 할 대상과 진멸할 대상을 분명히 구분하셨다는 점과 그때 탈취물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소유로 삼았다는 것(신 2:35)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여리고 성을 함락할 때에는 진멸에 대한 명령 뿐 아니라 탈취물에 대해 철저히 여호와께 바칠 것을 명령한 것이다.

간혹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진멸’이라는 용어와 관련하여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의 속성에 배치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갖을 수 있으나, 이는 죄를 미워하시는 하나님의 거룩하심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즉 가나안 족속을 진멸하라고 명령하시는 것은 단순히 이스라엘 백성들이 정착할 땅을 얻고자 함이 아니라 가나안 족속의 죄악에 대한 심판과 그들의 죄악에 물들지 않게 하기 위한 조치(措置)였음을 알 수 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온전히 바친 물건으로 말미암아 범죄하였으니 이는 유다 지파 세라의 증손 삽디의 손자 갈미의 아들 아간이 온전히 바친 물건을 가졌음이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진노하시니라”(수 7:1)

어떠한 일이 발생하였는가? 여리고 성을 함락시킬 때 어떤 것이든지 취하여 고통을 당하게 되지 않도록 분명히 경고하였음에도 아간이 바친 물건을 가졌다고 하였다. 또한 아간 한 사람의 범죄를 이스라엘 자손의 범죄로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진노하셨다고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다.

아간은 어떤 인물인가? 

그는 무엇보다 탐욕에 물든 자였다. 그가 취한 물건이 무엇인가? “시날 산의 아름다운 외투 한 벌과 은 이백 세겔과 그 무게가 오십 세겔 되는 금덩이 하나”(수 7:21)였다. 이를 보고 “탐내어 가졌다”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물질에 대한 유혹에 넘어가지 않도록 분명히 경고했음에도 이를 무시한 것이다.

그리고 그는 회개치 않는 영혼이다. 범인을 찾기 위해 제비뽑기를 할 때에도 끝까지 자신의 범죄를 자백하지 않았다. 만약 그가 먼저 자신의 죄를 자복하였다면 어떤 결과가 일어났을까에 대한 상상력은 그다지 중요한 요소가 아니겠지만 성경은 그런 상상력조차 제공하지 않고 있다.

결국 아간 한 사람의 범죄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 전체가 아이 성에서 철저한 패배를 맛보아야 했다. 이는 이스라엘 전체가 언약공동체인 까닭이다.

“여호수아가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우리를 괴롭게 하였느냐 여호와께서 오늘 너를 괴롭게 하시리라 하니 온 이스라엘이 그를 돌로 치고 물건들도 돌로 치고 불사르고 그 위에 돌 무더기를 크게 쌓았더니 오늘까지 있더라 여호와께서 그의 맹렬한 진노를 그치시니 그러므로 그 곳 이름을 오늘까지 아골 골짜기라 부르더라”(수 7:25-26)

아간의 범죄에 대한 결과이다. 온 이스라엘이 그를 돌로 치고 물건들을 불사르고 돌무더기를 쌓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자신이 훔친 아름다운 외투를 입어보지도 못하고, 은금 역시 장막 안에 감추어 사용조차 하지 못한 것이다.

오늘날 한국교회에 있어 치리 문제는 매우 약해져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 이유 중 하나가 강력한 경고조차 사라졌다는 데 있다. 신앙공동체요, 언약공동체인 구약의 이스라엘이 신약의 교회에 대한 예표라고 할 때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철저히 순종할 수 있는 영적 훈련이 필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갖고 있는 상식이다. 다만 이를 어떻게 현실에 적용시킬 수 있는가 하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숙제라고 할 수 있다.

아골 골짜기는 ‘고통의 골짜기’라는 뜻이다. 교회 곳곳에, 그리고 성도의 삶 곳곳에 하나님 앞에 범죄함으로 인해 빚어진 고통의 골짜기, 아골 골짜기의 흔적들이 많지 않아야 할 것이다.

아간의 죽음을 한 개인의 죽음이라는 각도에서 바라볼 때 성도의 삶의 마지막 결과물이 이런 것이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실에서 발생하는 온갖 죄악의 유혹을 이겨야 할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범죄를 조금이라도 빨리 회개할 수 있었다면 조금은 다른 결과를 가져오지 않았을까?

아간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나는 과연 어떠한 인간인가? 이러한 질문을 자신에게 스스로 던질 때 무언가 개운치 못한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라고 노래한 윤동주 시인의 서시(序詩)가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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