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눅 10:30-37)
34.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눅 10:30-37)
  • 주성호
  • 승인 2022.08.22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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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율법사가 예수에게 다가와 영생을 얻는 방법과 이웃이 누구인가를 물었을 때 이미 구약에 제시된 하나님을 사랑하고(신 6:5)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레 19:18)는 말씀을 하신 후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로 참 이웃은 공간적인 의미보다 자기가 도움을 줄 수 있는 모든 사람들임을 교훈해주셨다.

첫째: 제사장과 레위인의 태도(30-32)

1) 무모한 여행자(30): 위험하기로 유명하고 그래서 피의 길이라고 일컬어지는 예루살렘에서 여리고 사이를 혼자 여행했다는 것은 무모한 행위였다. 예루살렘은 해발 750m의 고원지대에 위치했고 여리고는 해면보다 250m나 낮은 곳이므로 약 35km되는 내리막 길에는 도둑떼도 많아 혼자서 여행할 수 없는 위험한 길이었다. 그러므로 여행자들은 절대로 혼자서 여행하지 않고 상대들과 함께 여행하던 곳이었다. 그런데 본문의 강도들은 여행자의 옷을 벗길 뿐 아니라 폭행까지 가해 거의 죽은 상태가 된 것을 버려두고 가버렸다. 위험한 길에는 동반자가 있어야되고 무모한 행동은 언제나 불행을 초래한다.

2) 피하여 지나감(31-32): 강도에게 옷을 벗기우고 매를 맞아 길가에 쓰러진 채 죽어가는 여행자를 한 제사장과 레위인도 지나다보고 그를 피해 가버렸다. 제사장은 아론의 후손이 많았고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재자로 성전에서 봉사한 자이며 레위인은 성전에서 제사장을 보좌하며 갖가지 봉사로 헌신한 자인데 누구보다 동족의 어려움을 보살펴야 함에도 불구하고 외면해버림으로 당시 거짓 종교지도자들의 전형적인 면모를 보인 셈이다. 물론 바쁜 일정 때문인지 또는 부정한 이유도 있겠지만 어쨌든 고통 당하는 동족을 외면할 뿐아니라 희생정신이 되어있지 않은 것이 문제였다.

둘째: 선한 사마리아인(33-37)

1) 극진히 돌보아줌(33-35): 사마리아인은 인종적, 종교적 혼혈로 인해 유대인으로부터 멸시와 천대를 받음으로 유대인의 어려움을 당하는 것을 보았을 때 도와야 할 이유가 없는데도 기름과 포도주를 상처에 붓는 응급처치를 하고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두 데나리온을 선불로 건네주며 간호를 부탁했다. 만약 간호비용이 초과할 경우 후불의 약속까지 하고 떠났다. 유대인이 저버린 피해자를 원수의 입장에 있던 사마리아인은 진실한 마음뿐 아니라 몸, 물질, 시간까지 희생적인 사랑으로 최선을 다해 돌보았다.

2) 너도 이와 같이하라(36-37): 율법사는 이웃의 범주를 율법적인 사고로 한정시켜 이웃 사랑을 실천했음을 나타내려고 시도했으나 스스로 자문자답케 하신 주님은 공간적 이웃 개념을 철폐하고 도움을 필요로 하는 모든 사람을 향하여 선한 사마리아인의 정신으로 '가서 너도 이와 같이하라'라고 명령하셨다. 율법사는 큰 충격 뿐아니라 이웃문제도, 첫 질문인 영생의 문제까지 해결받았을 것이다. 문제가 많은 이 세상을 어느 시대나 선한 사마리아인의 희생적인 사랑을 필요로 하고 기독교의 존재의미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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