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 나타난 죽음과 관련된 기록들 5
성경에 나타난 죽음과 관련된 기록들 5
  • 안양준
  • 승인 2022.08.17 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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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람의 죽음

사람은 누구나 아름다운 마감을 원하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를 성경을 통해 자주 만나게 된다. 그 중 대표적 인물이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발람이라는 인물이다.

발람은 엄밀한 의미에서 외인이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성경에 그 이름이 등장하는 횟수와 그와 관련된 기사가 차지하는 분량을 볼 때 결코 가볍게 다룰 수 없다. 더구나 그가 미친 영향력은 심각할 정도로 악한 것이기에 성경은 그를 통해 교훈을 얻을 것을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 발람이 여호와의 영에 사로잡혔을 때 그가 했던 대사(臺詞)는 어느 정도 신앙의 단계에 있는 이들에게는 깊은 여운으로 남을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의인의 죽음을 죽기 원하며 나의 종말이 그와 같기를 바라노라.”(민 23:10)

그의 이야기는 민수기 22장에서부터 시작된다. 당시 모압 왕이었던 발락은 이스라엘이 아모리인에게 행한 모든 일을 보았기에 심히 두려운 상태였고 이스라엘이 모압을 향해 점점 다가오는 상황에서 찾은 해결책이 바로 발람이라는 인물이었다.

“그대가 복을 비는 자는 복을 받고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줄을 내가 앎이니라”(민 22:6)는 발락의 말이 당시 발람에 대한 세평이었다. 실제로 그런 능력을 갖추었는지 알 수 없지만 발람에 대한 발락의 믿음은 확고했고, 그래서 발람을 향해 내건 조건도 대단한 것이었다.

“그대가 내게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시행하리니”(민 22:17)

나라가 풍전등화(風前燈火)의 위기에 놓였을 때, 그 위기를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라면 그 정도 조건은 당연하다 할 수 있다. 또한 한 나라의 왕이 한 말은 결코 허언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

발람이 신탁(神託)을 얻고자 한 것인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자신을 찾아온 이들에게 한 말은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는 대로 너희에게 대답하리라”(민 22:8)는 것이었다.

실제로 하나님이 발람에게 나타나 그들과 함께 가지 말라고 하셨고, 발람 역시 그대로 전하였다. 하지만 그들이 다시 찾아왔을 때 발람은 단호하지 못했고 그런 까닭에 나귀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하는 도구로 사용하기도 하셨고, 모압 왕과 만나 세 번의 기회가 주어졌음에도 결국 이스라엘을 저주하지 못하게 하였다.

“발람이 일어나 자기 곳으로 돌아가고 발락도 자기 길로 갔더라”(민 24:25)

이렇게 민수기 24장이 끝나고 아무 문제없이 결말을 맺는 것처럼 보여진다. 그런데 민수기 25장에 이스라엘이 모압 여인들과 행음하고 심지어 그들이 신에게 제사할 때 초청되어 그 신에게 절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발람과 무관하게 볼 수 있는 사건이지만 성경은 그 사건이 발람에 의해 발생한 것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보라 이들이 발람의 꾀를 따라 이스라엘 자손을 브올의 사건에서 여호와 앞에 범죄하게 하여 여호와의 회중 가운데에 염병이 일어나게 하였느니라”(민 31:16)

한 사람의 사악한 꾀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죄악의 나락에 빠뜨릴 수 있게 하는지를 발람을 통해 충분히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동기가 무엇인가도 성경은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그들이 바른 길을 떠나 미혹되어 브올의 아들 발람의 길을 따르는도다 그는 불의의 삯을 사랑하다가 자기의 불법으로 말미암아 책망을 받되 말하지 못하는 나귀가 사람의 소리로 말하여 이 선지자의 미친 행동을 저지하였느니라”(벧후 2:15-16)

발람이 무엇에 미혹되었는가? 불의의 삯을 사랑하였기에 그렇게 된 것이다.

그래서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에 보내는 주님의 서신을 통해 현대 교회에 경고를 하고 있다.

“그러나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거기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자손 앞에 걸림돌을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계 2:14)

불의의 재물을 사랑하여 미혹당하는 일이 없도록...

물질만능주의에 사로잡혀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자본주의 물결이 엄몰(淹沒)하는 오늘날 교회를 향해서 주시는 책망의 말씀을 너무 소홀히 여기는 현실에서 무엇으로 이를 막을 수 있을까?

“그들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미디안을 쳐서 남자를 다 죽였고 그 죽인 자 외에 미디안의 다섯 왕을 죽였으니 미디안의 왕들은 에위와 레겜과 수르와 후르와 레바이며 또 브올의 아들 발람을 칼로 죽였더라”(민 31:7-8)

발락과 헤어진 이후의 발람의 삶이 어떠했는가에 대해서는 성경은 말하고 있지 않다. 그가 발락이 건넨 재물로 호위호식하며 살았는지에 대해서도 우리는 알 수 없다. 매우 간략하게 “브올의 아들 발람을 칼로 죽였더라”고 기록할 뿐이다.

그리고 느헤미야 13장 1~2절에 “모압 사람은 영원히 하나님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니 이는 그들이 양식과 물로 이스라엘 자손을 영접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발람에게 뇌물을 주어 저주하게 하였음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영원히 하나님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한다는 것, 그리스도인에게 죽음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일반인들이 말하는 호상(好喪)으로 판단되어지는 것이 아니다.

의인의 죽음을 죽기 원하며 나의 종말이 그와 같기를 바라는가?

그렇다면 지금 나는 어떠한 길을 걷고 있는가? 불의의 재물을 사랑하여 미혹당하는 삶을 살고 있지는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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