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 나타난 죽음과 관련된 기록들 4
성경에 나타난 죽음과 관련된 기록들 4
  • 안양준
  • 승인 2022.08.10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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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사람의 죽음

성경에서 출애굽에 대한 기록을 읽으면서 느끼는 점은 하나님께서 이 시기보다 강력하게 자신을 드러내시고 세세한 부분까지 지시하셨던 적이 있었던가 하는 것이다.
“그와는 내가 대면하여 명백히 말하고 은밀한 말로 하지 아니하며 그는 또 여호와의 형상을 보거늘”(민 12:8)
이는 여호와께서 모세에 대하여 하신 말씀이다. 이러한 특혜를 누린 인물이 과연 누가 있었는가? 물론 성육신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제외 대상이지만 성경에 모세처럼 하나님과 교제를 나눴던 자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이는 다윗조차 누려보지 못한 놀라운 은혜라 할 수 있다. 그뿐 아니라 모세의 형이었던 아론은 첫 번째 대제사장으로서, 누이였던 미리암은 선지자(출 15:20) –아비멜렉 사건 때 아브라함도 선지자로 불려진 적이 있다- 로서, 같은 부모를 둔 자녀들이 이와 같은 영광을 누렸다는 것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시간에는 이들의 죽음에 대해 조망해 보고자 한다. 
출애굽의 주역이었던 이들의 죽음은 한 세대가 가고, 한 세대가 오는(전 1:4) 또 하나의 신호탄이라 할 수 있다. 훈련의 장소였던 광야 생활을 마치고 약속의 땅인 가나안에 입성하는 과정에서 그들은 자신의 자리를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고 내려와야 하는 까닭이다.

모세와 아론과 미리암

성경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이들 모두 같은 해에 죽음을 맞이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성경을 통해 이들의 죽음에서 볼 수 있는 약간의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다.
먼저 미리암에 대해 살펴보자. 그녀가 처음 성경에 등장한 것은 출애굽기 2장에서 모세를 갈대 상자에 담아 나일강에 두었을 때였다. 그때는 ‘그의 누이’라고만 지칭하였을 뿐 이름은 기록하고 있지 않지만 출애굽기 15장 20절에 ‘아론의 누이 선지자 미리암’이라고 할 때 결국 모세의 누이이기도 하며 아론과 모세의 누이는 미리암 밖에 없기에 당연히 그의 누이는 미리암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미리암의 인생에 가장 화려한 시기는 언제인가? 홍해를 건넌 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를 향해 노래할 때 미리암이 손에 소고를 잡으매 모든 여인도 그를 따라 나오며 소고를 잡고 춤을 추었다고 하였다. 그때 미리암이 부른 노래는 무엇인가?
“너희는 여호와를 찬송하라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 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출 15:21)
그때가 그녀의 인생에 있어 절정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얼마 후 그녀의 인생에 파경이라 불릴 엄청난 사건이 찾아온다. 민수기 12장에 모세가 구스 여자를 취하였을 때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를 비방했던 사건이다. 그 사건으로 인해 그녀는 나병에 걸려 진영 밖에서 7일 동안 갇혀 있게 되었다. 미리암과 아론이 함께 비방하였음에도 그녀만 큰 벌을 받았던 것은 아론과 미리암이 아닌 미리암과 아론이라 쓰여진 것에서 비방의 주체가 미리암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후 그녀의 행적은 전혀 언급이 없다가 죽음에 대한 기사가 아주 짧게 쓰여지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첫째 달에 이스라엘 자손 곧 온 회중이 신 광야에 이르러 백성이 가데스에 이르더니 미리암이 거기서 죽으매 거기에 장사되니라”(민 20:1)
광야 40년의 생활이 끝난 해 첫 달 거기서 죽고 거기서 장사되는, 즉 모압 땅에서 그녀의 삶이 끝난 것이다. 그 외는 없다. 그녀에 대해 이스라엘 백성이 애곡하였다거나 몇 일 동안 장사를 지냈다거나 하는 덧붙임이 없다는 것이다.

둘째 아론의 죽음이다.

아론의 등장은 speaker로서 이다.
“오 주여 나는 본래 말을 잘 하지 못하는 자니이다 주께서 주의 종에게 명령하신 후에도 역시 그러하니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니이다”(출 4:10)
모세에게 있어 약점은 말을 잘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스데반은 “모세가 애굽 사람의 모든 지혜를 배웠다”(행 7:22)고 하지만 모세는 계속 입이 둔한 것(출 6:12)을 변명으로 내세웠다. 그래서 대언자(출 7:1)로 나선 것이 아론이다. 이후 아론은 대제사장의 역할을 맡게 되었고, 그의 자손들이 제사장의 직무를 감당하는 놀라운 은총을 입게 되었다. 물론 아론은 금송아지 우상을 만든 죄악을 저지르기도 하였지만 그럼에도 그의 일생은 모세의 곁에서 2인자로서의 삶을 살았다.
“온 회중 곧 이스라엘 온 족속이 아론이 죽은 것을 보고 그를 위하여 삼십 일 동안 애곡하였더라”(민 20:29)

셋째 모세의 죽음이다.

모세의 삶에 대해서는 어떤 극존칭으로도 부족할 것이다. 성경을 통해 하나님께서 모세에 대하여 하신 말씀만으로도 그의 삶은 어느누구도 미칠 수 없는 가장 높은 단계의 삶을 살았음을 알 수 있다. 심지어 출애굽기 34장에는 모세의 얼굴에 광채가 났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런 그의 마지막은 어떠한가?
“네 형 아론이 호르 산에서 죽어 그의 조상에게로 돌아간 것 같이 너도 올라가는 이 산에서 죽어 네 조상에게로 돌아가리니 이는 너희가 신 광야 가데스의 므리바 물 가에서 이스라엘 자손 중 내게 범죄하여 내 거룩함을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나타내지 아니한 까닭이라 네가 비록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땅을 맞은편에서 바라보기는 하려니와 그리로 들어가지는 못하리라 하시니라”(신 32:50-52)
그의 인생에 ‘옥의 티’는 므리바 사건이다. 그렇게 오랜 광야 생활을 했음에도 마실 물 때문에 모세와 다투는 이스라엘 백성들, 그로 인해 하나님께서 반석을 명하여 물을 내게 하라고 하셨음에도 자신의 분을 참지 못하고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친 것이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않은 것이라 하여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신 것이다.
모세의 죽음에는 약간의 미스터리가 남아 있다.
“벳브올 맞은편 모압 땅에 있는 골짜기에 장사되었고 오늘까지 그의 묻힌 곳을 아는 자가 없느니라”(신 34:6)
그런 까닭에 유다서 1장 9절에 “천사장 미가엘이 모세의 시체에 관하여 마귀와 다투어 변론” 하였다는 기록이 있는 것이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아마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의 무덤을 우상처럼 섬기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었을 수도 있다. 출애굽기 33장 11절에 “사람이 자기의 친구와 이야기함 같이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셨다”고 하였는데 이런 표현을 모세 외에 누구에게 붙일 수 있을까? “이스라엘 자손이 모압 평지에서 모세를 위하여 애곡하는 기간이 끝나도록 모세를 위하여 삼십 일을 애곡하니라”(신 34:8)
어떤 이의 장례는 많은 이들에게 슬픔이 되지만, 어떤 이의 장례는 아무에게도 관심이 되지 않을 수 있다. 물론 이 또한 하나님의 관심과는 다를 수 있겠지만 다른 이들의 죽음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마지막을 마음에 두고 살아가는 것은 지혜라고 성경은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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