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주변에는 언제나 많은 사람들이 모였는데 이유는 그들에게 사랑을 베푸시며 말씀으로 기쁨을 주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예수께서 죄인들과 가까이하시고 그들과 함께 음식 잡수시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며 원망하고 있을 때 눅15장을 통해 세 가지 비유의 말씀으로 교훈 하셨는데 오늘의 본문이 첫번째 잃은 양의 비유이다.
첫째: 죄인들을 영접하신 예수(1-2)
1)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하심(1): 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예수에게 접근해 왔는데 모든 세리는 그 고장에 있던 세리 전부를 가리키며 죄인들은 본래 창기를 일컫는 대명사인데 본문에서는 유대 사회에서 소외된 자들을 뜻한다. 예수의 비유는 주로 제자들이나 당시 종교지도자들인 바리새인과 서 기관들을 향한 것인데 본문에서는 유대사회에서 소외된 자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 특징이다. 주님은 언제나 그들의 벗이 되어주셨고 그들을 영접하고 함께 음식 잡수시기를 즐기셨다. 주님은 모든 사람의 영혼을 귀중히 여기시고 사랑하셨기 때문이다.
2) 바리새인과 서기관의 대인관(2): 당시 종교 지도자로 자처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자기들이 율법에 의하여 보장받은 의롭고 모범적인 유대인이라는 자만심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언제나 독선적인 인간관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므로 세리나 창기들 그리고 귀신들린 자 같은 사람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저주받은 자들로 낙인을 찍어 구원하려는 노력은 고사하고 정죄하기에 바빴고 구제받을 길이 전혀 없었다. 특히 본문의 원망은 신약 성경에는 눅19: 7에도 사용되었는데 심하게 원망했다. 또는 계속 원망했다는 뜻이다.
둘째: 양과 같은 인생(3-7)
1) 아흔 아홉과 하나(3-4): 예수께서는 길을 잃지 않은 아흔 아홉 마리의 양과 길 잃은 한 마리 양의 비교에서 특히 길 잃은 한 마리에 초점을 맞추어 비유로 말씀하심은 물량주의의 사고방식으로는 이해되거나 용납될 수 없으나 한 생명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시는 (마 16:26) 주님의 사랑의 윤리에서만 가능한 사고 방식이다. 생명의 가치는 생명 그 자체에 있기 때문에 아흔 아홉이나 하나나 동일하게 평가되고 귀중함을 교훈하셨다. 하나님의 사랑은 언제나 비합리를 초월하시고 불가능을 가능케 하신다.
2) 회개한 죄인 하나의 귀중성(5-7): 길 잃은 양 한 마리를 찾은 목자는 양을 어깨에 메고 집에 와서 벗과 이웃을 초빙해 기쁨을 함께 나누었다. 크게 과장된 것 같으나 죄인 한 사람의 회개가 당사자는 물론 하나님의 나라 전체에 미친다는 사실을 나타내주는 비유의 교훈이다. 주님은 이 기쁨을 이루시기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막 10:45) 주님은 소외된 자들을 위해 목자로서 구체적으로 죄인들을 돌아보고 구원하심을 강조하고 가치성을 설명하기 위해 본 비유로 말씀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