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9] 교회가 교회 다워야 생명력을 회복한다!!
[특별기획 9] 교회가 교회 다워야 생명력을 회복한다!!
  • 송양현
  • 승인 2022.04.18 09: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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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회연구원 공동기획, 천안 하늘중앙교회 사례(유영완 목사)

속회를 구성한다는 것은 교회의 척추를 세우는 일과 같습니다. 척추가 바로 서야 다른 조직들이 움직여도 바른 길로 갈 수 있습니다.

우선 속회 구성원들은 교회 기존 부서에 속한 사람들입니다. 장로, 권사, 집사 뿐 아니라 교회학교 교사, 주방 봉사자 등 교회에서 직분과 봉사를 맡고 있는 분들이 속회 구성원들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옆에 새가족이나 아직은 교회에 적극적으로 활동을 하지 못하는 성도들이 함께 구성됩니다. 그래서 속회라는 척추 옆에 근육도 붙고 다른 조직들도 활동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우선, 속회하면 모임입니다. 그리고 어디서 모이든, 누구와 모이든 모임의 주관자가 꼭 있습니다. 주관자가 그 모임의 흐름을 좌지우지 합니다. 그래서 속장이 중요합니다.

저는 속장들에게 상당한 자율권을 줍니다. 단 담임목사와 교회의 방향성에 맞는 사람으로 세워야 한다는 전제가 있습니다. 담임목사와 비전이 공유되지 않거나 교회에 비협조적인 사람이 속장을 한다면 그 모세혈관은 막혀버립니다. 모세혈관이 막히면 그 부위는 어찌되겠습니까? 철저하게 훈련되고 교회와 비전을 같이 하는 속장이어야 합니다.

속장과의 만남은 자주 할수록 좋습니다. 직접 만나기도하고 보고서를 통하기도 하고 방법은 다양하지만 중요한 것은 일방적인 교육이 아니라 여기서도 담임목사와 속장간의 친밀감이 중요합니다. 그래야 자연스럽게 속도원의 상황을 보고하고 상담함으로써 해답을 줄 수 있습니다. 속장이 속회에서는 작은 목회자의 역할을 하기 때문에 속장과의 만남은 12사도와 예수가 함께 하신 것처럼 자연스럽게 성화가 일어나고 그것을 그대로 속회 현장으로 옮기는 역할을 하도록 해야 합니다.

두 번째로 속회 형식의 다양성 인정이 필요합니다.

반드시 속회를 통해 삶이 변화되어야 합니다. 성화되어야 합니다. 흔히 속회를 교회 안에 작은 교회다라고 표현을 합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 작은 교회라고 해서 주일 예배 이후에 속회 예배라는 공식은 아닙니다. 예배 드리는 곳이 아니라 교회입니다. 교회는 성도의 교제가 있는 곳입니다. 즉 속회는 교회 안에 작은교회! 교제 안에 작은 교제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삶을 나누는 곳이어야 합니다.

속장이 그날의 속회 분위기 혹은 속도원들의 상황에 따라 모임의 장소를 정할 수 있습니다. 상황에 따라 야외가 될 수도 있고, 식당이 될 수도 있고, 봉사활동 현장이 될 수도 있고, 극장이 될 수도 있습니다. 속회가 예배를 드리기 위한 모임이 아니라 코이노니아를 통한 위로와 성화를 실천하기 위한 것이 본질임을 기억한다면 그런 곳에서?라는 질문은 필요가 없을 겁니다. 그래서 속회는 성화 실천, 전도의 현장, 돌봄의 기능을 모두 갖고 있습니다.

단적인 예로 저희교회는 가끔 영화관 1관을 통째 빌립니다. 300석을 다 빌려서 누구든지 부담 없이 교회에 접근할 수 있는 문을 다양성을 갖고 도전하고 있습니다. 평일 오전에 영화관 1관을 통째로 빌리는 것이 생각보다 가격이 저렴합니다. 속회의 장소가 다양해지면 다양한 접근이 이뤄질 수 있습니다. 다양한 삶의 방식 속에 전도와 위로는 얼마든지 열려있게 됩니다.

세 번째로 지역사회와 융화되어야 합니다.

교회가 지역사회와 융화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교회라는 공교회성으로 할 수 있는 일과 속회라는 작은 단위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이 다릅니다. 교회가 지역사회와 융화되고 공교회성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작은 모세혈관들도 같이 움직여 줘야 합니다. 왜냐하면 교회의 구성원들이 속회 구성원들이기에 그들의 삶이 성화되어야 하고, 말씀대로 실천해야 교회가 100년을 준비하며 꿈꾸는 비전을 지역사회를 통해 구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성화는 예배드리고 헌금 드리고 축복받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으로써의 삶을 살아 내야 진짜 성화입니다.

교인들 중에 분명 봉사하고 싶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속회를 구성할 때 그들의 의견을 존중해주면 됩니다. 그들이 할 수 있도록 그들만의 속회를 구성해주면 됩니다. 그리고 동사무소, 복지관, 사회복지시설, 지역 내 작은 교회 등 그들이 원하는 봉사를 할 수 있도록 연결해 줘야 합니다. 그래야 교인들이 자부심을 갖습니다. 작지만 선한 일을 하고 가족공동체 같이 서로 기댈 수 있는 유기체적 속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넷째, 그래서 속회 구성을 성향별로 구성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역으로 혹은 관리형으로 속회를 구성했을 때 속회가 생명력을 갖기란 쉽지 않습니다. 교인들은 어딘가 기댈 곳이 필요해서 교회를 찾습니다. 그리고 교회에서 주일 예배 한번으로는 피부에 와 닿는 위로를 얻어가기란 쉽지 않습니다. 분명 어딘가 기댈 곳이 필요하고, 기댈 곳이 교회가 되어야 하고, 그 기댈 곳이 교회 안의 작은 교회 즉 속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먼저 그들의 성향을 파악할 필요가 있습니다. 연령과 지역은 물론 그들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 등을 파악해서 속회를 구성한다면 훨씬 즐거운 모임이 될 것이고 시너지 효과가 더 클 것입니다.

인구감소가 아니라 인구 절벽입니다. 교회도 공동화 현상이 오는 것은 당연합니다. 작은교회부터 자리가 비고 시스템화된 교회는 생존할 것입니다. 이런 것은 누구나 통계를 보고 분석하고 예측할 수 있는 얘기들입니다. 그러나 목회자인 우리는 이런 시대속에 그들이 혼자 살 수 없다는 것을 예측해내고 대비해야 합니다. 아무리 AI가 정확하고 세상이 시스템화 되어도 인간은 혼자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이런 인간의 절박함, 외로움을 신앙의 울타리에서 위로하고 성화로 인도해 줘야 합니다. 속회를 성향별로 구성하면 이러한 장점이 있습니다. 무엇이 결핍되었고, 무엇이 과잉인지, 그리고 무엇이 관심사인지, 어떤 상처가 있는지 파악하면 속회를 구성하는데 큰 열쇠가 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목회자가 목회에 적극적이어야 하고 목회자의 사고 가치관이 변해야 한다는 것이 저의 주장이기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교회가 교회다워야 합니다.

메타버스 청년교회를 만들어 보았습니다. 기계화라는 것은 비인간화를 얘기하는 것입니다. 이쪽이 발전하면 발전할수록 사람은 사람을 그리워하게 됩니다. 교회의 가능성은 오히려 여기에 있습니다. 분명 사람은 메타버스에서 만족을 못 느낍니다. 사람들은 한번 안아주기를 원합니다. 기계화 될수록 갈급하고 소외감을 느끼게 됩니다. 그들을 안아줄 수 있는 공간이 교회입니다. 그렇기에 교회는 앞으로 더 큰 가능성을 가진 집단입니다.

그런데 교회가 자꾸 기계화를 따라갑니다. 세상보다 기계화에 앞서가고 싶어서 노력합니다. 저는 오히려 가족공동체 같은 교회가 진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가족이 되어야 합니다. 오히려 다음 세대는 자신들이 겪어보지 못한 대가족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위로를 얻고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 분명 소외되고 약하고 힘든 사람들 다 오라고 했습니다. 교회로, 예수님께로 오라고 했습니다. 가족공동체로서 같이 밥 먹고 말씀으로 같이 힘을 내서 다시 일어나는 것입니다. 속장들이 속도원들을 돕고, 속도원들끼리 돕고 상호 유기적으로 활동하다 보면 교회는 단단해집니다. 그러면 교회가 성장하지 말라고 해도 성장합니다.

요즘 교인들은 소속감이 없습니다. 인터넷으로 좋은 설교만 듣고 갑니다. 이걸로 만족한다면 메타버스로 충분히 만족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사회적 동물입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만드셨습니다. 이것을 느끼게 해 주는 곳이 교회이고, 더 친밀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곳이 속회입니다.

그래서 교회가 교회다워야 하는 것입니다. 잃어버렸던 교회의 본질 코이노니아를 회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저희교회 청소년부가 부흥을 했습니다. 코로나 19로 인해서 교회에 모이지 못했는데 오히려 부흥했습니다. 아이들이 오지 못한 빈자리에 이름을 다 붙여놨습니다. 유@@를 통해 텅빈 예배실을 촬영하면서 담당 목회자가 한 아이 한 아이 이름을 불러 축복 기도를 했습니다. 그 아이들 이름이 적힌 작은 화분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유@@을 통해 보여줬습니다. 그리고 자기 이름이 적힌 화분이 잘 자라고 있는 과정을 보여줬습니다. 담당목회자의 기도는 화분이 자라는 만큼 그 아이들 한명 한명의 신앙이 자라기를 원했습니다.

잠깐 교회에 문이 열리고 다시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그 때 200여명의 아이들이 모두 와서 그 화분을 다 가져갔습니다. 이게 유@@의 영상 효과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메타버스나 최첨단 기술화가 그 아이들의 관심이 아니라 자기 이름이 불리어지고 자기 이름이 적힌 화분이 잘 자라는지 궁금한 겁니다. 아이들은 자기 이름이 한번 불리기를 원합니다.

어른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이 꿈속에서 만나 나의 이름을 한번 불러주듯이 기계화가 가상의 공간이 활성화 될수록 직접 만나고 스킨쉽하고 대화하고 위로받기를 원합니다.

교회가 교회다워지는 것은 예수님께서 그 모델을 이미 보여주셨습니다. 방법은 다양하게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본질은 예수가 우리의 손을 잡아줬듯이 우리도 그들의 손을 신앙 안에서 잡아주는 겁니다. 속회는 이런 중요한 일을 할 수 있는 교회 안의 작은 교회입니다.

결론적으로 세상 모든 사람들은 가나안 교인들입니다. 어딘가 돌아갈 곳을 찾습니다. 속회는 그들이 편하게 돌아 올 수 있는 곳이고, 편하게 신앙생활 할 수 있는 곳이면서 성화를 이뤄낼 수 있는 신앙의 도화선 같은 모임입니다.

목회자는 이러한 소명을 받아 사명을 붙잡고 목회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목회자가 먼저 변해야하고 목회자의 가치관이 중요합니다. 속회 형식의 다양성은 이런 전제들 속에 완성되어 집니다. 우리의 목표는 신앙의 성장입니다. 수적인 성장이 아니라 에베소서 4장에서 말하는 신앙의 성장이 있어야 합니다. 속회가 교회의 척추가 되면서도 모세혈관이 된다면 교회는 교회다움을 다시 세울 수 있을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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