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7] 속회!! 교회 성장 도구 아닌 성화 도구!!
[특별기획 7] 속회!! 교회 성장 도구 아닌 성화 도구!!
  • 송양현
  • 승인 2022.04.04 09: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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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드코로나 교회 리빌딩을 위한 제언 속회원구원 박동찬 이사장
속회연구원 이사장 박동찬 목사(일산광림교회)
속회연구원 이사장 박동찬 목사(일산광림교회)

목사가 먼저 변해야 한다!! 목회를 왜 해야 하는지 가치관의 리빌딩이 필요하다!!

우선 위드코로나 시대에 우리가 처한 상황부터 고민을 좀 해봐야 합니다.
코로나로 인한 가상의 공간에서 예배가 새로운 것은 아닙니다. 교회 홈페이지를 통해 예배를 실황 중계하기 시작한 것은 이미 오래전부터이고, 이미 익숙해져 있습니다. 쌍방향 소통도 이미 오래전부터 댓글이나 카@@톡으로 해오던 일입니다. 심지어 쌍방향 소통이라고 할 수 있는 실시간 예배 댓글 역시 인터넷 이전 전화 모뎀으로 하던 PC통신 시절 채팅방에서 이루어지던 일들입니다. 이러한 것들이 코로나라는 시대적 상황과 메타버스라는 좀 더 광범위해진 트렌드를 타고 교회의 예배에 새로운 것처럼 낯설지만 낯설지 않은 것으로 자리를 잡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모이기를 힘쓰는 코이노니아 공동체의 본질 속에 가상의 공간이라는 하나의 방법으로 자리를 잡을 수 있을 수는 있으나 해답은 아닙니다.
성경에서 교회는 모여야 하고 교제해야 하고 그 속에서 말씀이 살아있는 성육신이 있어야 합니다. 가상에서 모일 수 있고 교제할 수 있고 그 가상에서 성육신이 있다면 새로운 현대화된 예배 혹은 소그룹의 방법이 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런 면에서 요즘 트렌드에 맞게 새로운 시도이고 교회 모임의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본질이 왜곡되듯 그것이 예배의 정답인 것처럼 오해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가장 먼저 목회자의 목회관이 리빌딩 되어야 합니다.
진짜 위드코로나입니다. 교인들이 조용히 돌아가면서 교회에 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특히 오미크론으로 인해 오히려 코로나가 처음 발병했을 때는 방역법 때문에 많은 이들이 교회에 출석하지 못했다면 이제는 실제로 감염으로 인해 출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2년 전 시작 때나 위드코로나 시대인 지금이나 변한 것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새로운 것도 익숙해졌습니다. 무조건 새로운 시도가 능사가 아닙니다. 누가복음 24장 49절 말씀처럼 능력 받기 전에는 움직이면 안 됩니다. 즉 목회자가 준비가 안됐는데 강단에서 말씀이 다시 세워질 수가 없고, 교회가 다시 세워질 수 없고 속회가 다시 세워질 수 없습니다.
목회자 스스로 부족함을 깨달아야 합니다. 말씀이 부족하면 말씀을, 기도가 부족하면 기도를, 상식이나 세상 공부가 부족하면 그것을 해결해야 합니다. 교인들은 빠른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빠르다 못해 급변한다고 표현합니다. 메타버스는 교회가 아니라 교회 밖에서 먼저 만들어진 것입니다. 옛날 선교사들이 조선에 들어왔을 때는 선진문물을 전했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세상을 앞서 나갔습니다. 최소한 교회 목회자와 지도자들이 세상에 뒤쳐져서는 안 됩니다.

두번째로 목회자가 준비되면 스스로 기존의 인식을 변화시켜야 합니다.
그동안의 목회관, 교회론이 시대에 맞게 내가 속한 교회에 맞게 인지하고 무엇이 필요한지 무엇을 바꿔야 하는지 스스로부터 변해야 합니다. 단, 본질을 바꿔서는 안 됩니다. 방법론을 찾으려고 하다가 괴변에 빠져서 본질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속회연구원 이사장이니까 속회와 관련해서 말씀 드리면 속회의 다변화 즉 방법론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그런데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지 않으면 그 어떤 세미나도, 그 어떤 프로그램도, 어떤 컨설팅도 의미가 없습니다.
목회의 책임은 목회자에게 있습니다. 목회자가 변해야 하는 겁니다. 목회자가 변하려면 준비되어야 합니다. 코로나가 닥치고 나서 많은 사람들이 다시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가려고 준비를 합니다. 그런데 대안을 못 찾습니다. 예전처럼 똑같이 할 수 없다는 것을 목회자들은 스스로 느끼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새롭게 변화되려고 해도 목회자들 스스로 주저합니다. 목회자가 준비되고 스스로 변화된 스스로의 리빌딩이 있어야 위드코로나 그리고 코로나 이후에 교회의 문을 자신 있게 열 수 있는 겁니다.

성경 말씀 마태복음 10장 29절에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면 땅에 떨어지지 않습니다. 코로나시대 보다 초대교회 시절이 훨씬 더 핍박받고 어려웠는데 그 당시 교회는 생명력을 유지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생명력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목회자가 먼저 변해야 합니다. 목회자부터 생명력을 되찾아야 합니다. 목회자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 안에서 소속감과 사명감을 다시 찾아야 합니다.

세번째로, 살아있는 교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동안 하나님께서 왜 그렇게 중요하다는 예배를 모이지 못하게 하셨을까요? 어찌 보면 한국교회가 방향성을 잃었기 때문일 겁니다. 잠시 멈추고 돌아보고 제자리를 찾아가라는 하나님의 음성이라고 봅니다.
신앙의 본질, 사랑의 본질을 다시 찾아야 교회가 살아납니다. 휘양 찬란한 조명과 멋진 음향으로 예배가 완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현란한 말솜씨로 말씀이 살아 움직이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가 성장하는 것이 인터넷이나 사이버로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것이 자랑 꺼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방법이, 도구가 본질을 밀어내면 생명력이 끊어집니다. 살리고 싶으면, 호흡을 불어 넣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생기가 들어가야 교회는 살아납니다. 그리고 그 생기는 교회 작은 곳에서부터, 작은 모임부터 불어 넣어져야 합니다.

그래서 속회가 중요합니다. 속회는 교회 안의 작은 교회 모임입니다. 교회의 구석구석을 살필 수 있는 모임입니다.
많은 분들이 속회를 잘 조직하면 교회가 성장한다고 생각해서 속회, 소그룹, 밴드, 목장 등 여러 가지 모양으로 운영을 합니다. 그런데 존 웨슬리의 경우 소그룹 속회를 교회 성장을 위한 도구로 활용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성화 되기 위해, 그리스도인답게 살기 위한 도구로 삼았습니다. 그래서 속회를 통해 성장보다 후퇴하는 자는 잘라냈습니다. 숫자를 늘리기 위함이 아니라 진짜 그리스도인을 만들어내는 것이 속회였습니다.

진짜 거룩한 성도가 되고 싶은 사람들만 와라!!

웨슬리가 말하는 속회의 핵심은 서로 격려하면서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가게 하는 것. 그 삶을 목회자에게 보고하는 것이었습니다. 속회는 예배가 아니라 돌봄사역 그 자체였습니다.
한국교회에서는 속회를 관리의 도구로 혹은 하나의 예배라는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속회의 본질이 아닌 것에 중점을 두니까 속회에 생명력이 없습니다. 심지어 속회가 부흥했다고 쪼개고 나누고 재편성합니다.
속회의 본질은 돌봄사역, 교제에 있습니다. 속회가 부흥하면 그들이 원하기 전에는 쪼개지 말고 속장들에게 전적으로 현장에서의 권한을 통해 이끌어가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그들의 모임이 즐거워야 하고, 그들의 모임에서 위로가 있어야 하고, 그들의 모임에서 회복과 치유가 있어야 합니다. 목회자는 속장을 통해 보고받고 필요한 답을 제시해주고 필요한 때에만 적극 개입을 하면 됩니다. 인위적인 속회는 본질을 위협합니다. 속도원들의 속회 모임이 즐거워지면 그들을 성화의 단계로 이끌고 가는 것은 목회자입니다. 이는 그들에게 성화를 실천할 기회를 만들어주는 겁니다. 예를 들어 지역사회에 봉사할 수 있도록 연결을 해주고,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 봉사할 수 있도록 연결해줍니다. 즉 사회적 구원을 몸소 실천함으로써 자신의 개인적 성화와 사회적 구원을 동시에 실천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겁니다.

철저하게 성장 위주가 아니라 성화가 중심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속회를 잘 이끌 인도자를 잘 세워야 그 속회가 잘 유지됩니다. 그러려면 앞서 언급한 것처럼 목회자가 속회의 본질, 교회의 본질, 시대적 흐름을 잘 읽고 이해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목회 방향과 교회의 방향과 맞는 속장을 세워야 교회가 100년의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겁니다.
그래야 비전이 공유되고 비전이 공유되어야 교회가 어디로 갈지 속회가 어디로 갈지를 한마음, 한뜻으로 정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여러 가지 방법론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메타버스처럼 가상의 공간이든 공원이나 카페, 가정집에 모이든 비전이 공유되면 서로가 이해가 되고 서로가 즐거운 소그룹 모임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것이 속회에 생명력을 불어 넣어줄 수 있고, 교회에 생명력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원동력이 됩니다.

코로나를 겪으면서 소그룹 모임의 중요성에 대해 많은 이들이 피부로 느꼈습니다. 방역법으로 인해 4인 혹은 6인까지로 모임에 제한을 겪어보니 속회의 중요성은 더 절실합니다. 방법보다 본질을 먼저 찾는다면 방법은 하나의 도구로써 제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수 있습니다.

위드코로나로 어려운 상황에서 목회자가 변하고, 속회가 생명력을 찾고 교회가 다시금 세워지는 역사가 있기를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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