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보석같이 빛나는 부부
코로나로 보석같이 빛나는 부부
  • 민돈원
  • 승인 2022.03.29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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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2월부터 지구촌 전역에 몰아닥친 후한 폐렴 이름으로 시작된 코로나 집단 전염은 심각한 지각변동을 일으키고 있다. 이러한 전염병에 대한 두려움과 죽음이라는 1차 피해보다 그 이후에 미치게 되는 큰 파장이 있다. 예컨대 기존에 가지고 있던 자유 민주주의 소시민이라면 누구든 누릴 수 있는 평범한 삶의 방식과 평범한 보편적 가치관, 그리고 지극히 개인적인 최소한의 자유마저 강제로 봉쇄당한 채 2년 이상 줄곧 길들어져 온 개인적 사회적 일탈 현상이다.

이런 호재를 틈타 국가 체제까지도 송두리째 전복시키려는 그런 반체제 이념을 가진 급진주의자들이 몇 년 전까지는 전면에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고 그 전략이 실행되지 못했으나 지나온 5년 그리고 최근 2년전 국민의 건강과 생명보호라는 미명하에 코로나 정치방역으로 급물살을 타고 있음을 간과할 수 없다. 즉 국가가 개인의 자유를 얼마든지 제한 시킬수 있는 당위성을 확보함으로써 대다수 국민의 입, 손과 발을 여지없이 묶어 놓은 데 주저하지 않고 있다.

이에 이번 달 우리 감거협 20차 기도회 및 세미나 강사로 초청한 황 교안 전 총리는 “정부의 이러한 정책에 대해 교회는 정부 말만 들었다. 그래서 대형교회도 방송 최소인원 19명만 드리라고 하면 그 인원으로 영상 만들어 보내면 집에서 그것을 보고 예배라고 드렸다. 순교자적 정신을 잃었다”라고 했다.

계속해서 황 전 총리는 “헌법에 적시된 종교의 자유에 따라 예배와 전도의 자유가 있다. 그러나 코로나19 기간 교회의 전도가 상당히 위축됐다. 왜냐하면 한국교회가 정부의 시책에 굴종했기 때문이다. ”라는 말로 정부가 가장 기본적인 종교의 자유를 침해한 것과 함께 교회가 이에 굴종한 것에 대한 부당성을 지적했다.

이런 안팎에서 벌어지는 실망스런 현실에도 불구하고 나는 우리 교회 두 가정의 신실한 부부를 보면서 희미한 등불 속에서 희망의 빛을 보게 된다.

한 가정은 원로장로님과 권사님 부부이다.

이들은 지금까지 3년째 주일은 물론 매일 새벽기도회 등 모든 예배를 빠지지 않고 충성스럽게 출석하고 있다. 지난날 예배 금지 및 제한을 발표하고 당국이 사찰할 때도 개의치 않고 담임목사의 목회 방침에 따라 예배자리를 철저히 지킨 분들이다.

최근에는 수십만 명의 확진자가 발병하면서 함께 사는 가족-아들 가정 손녀 등-4명이 몇주전 확진되었는데 그 때 권사님은 이렇게 기도했다고 한다. “하나님, 새벽에 목사님 물컵 강단에 올려야 됩니다. 빠지지 않게 해 주세요....” 그 기도대로 두 분은 새벽은 물론 다른 사람들은 돌아가면서 겁에 질려 빠질 때 한주도 거르지 않고 지켰다. 지난번 어느 때인가는 허리가 너무 아파서 눕기도 힘들고 걷기도 힘들 때 “새벽에 나와 목사님께 기도 받으면 낫겠다. 기도해 주시라고 해야지? 라고 생각하고 그날 새벽 기도 받았더니 즉시로 좋아졌다.” 라고 얘기하셨다.

이처럼 신앙생활 해오면서 무슨 일이 있어도 주일을 생명처럼 지키시는 분이요, 남편 원로장로님과 함께 기도로 일생을 살아오신 신실한 분이다. 담임목사를 위해서 새벽마다 기도할 뿐 아니라 여선교회, 맡겨진 속회 속도원을 위해서 교회를 위해서 기도하는 일명 기도대장이시기도 하다. 나아가 물질로도 충성하고 몸도 성하지 않으신데도 두 몫, 세 몫 이상을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단 돈 50만원 가지고 오두막집에 30여년전에 이곳에 이사왔는데 지금은 이층집도 주시고 땅도 주셔서 물질적으로도 잘 살게 해주신 것은 오직 주님중심으로 살았기에 모두 하나님이 복을 주신 은혜라고 고백하는 분이다. 코로나 상황에도 상관없이 신앙도 그 밖에 모든 일에 한결같고 변함없으며 신실하신 모범이 되는 권사님 가정이다.

또 다른 가정은 정말 특별한 권사님 부부가정이다.

이 분들은 강화에 사는 분들이 아니다. 인근 지역도 아니다. 수년 전 제천에서 목회할 때 만난 가정이다. 그 당시는 아들 딸 둘과 함께 네 식구가 교회에 출석했다. 지금은 멋진 아들딸이 직장을 얻어 따로 살고 있다. 이들 청년은 각각 출석하는 교회에서도 부모님 이상으로 요즘 청년 중에서 그다지 보기 쉽지 않은 믿음으로 잘 세워지고 은혜를 사모하는 자랑스러운 청년들이다. 따라서 권사님 부부가정만 제천에 살고 있다. 이들 부부가 금년 1월 첫 주부터 매 주 한 번도 빠짐없이 내가 목회하는 이곳에까지 매주 토요일마다 미리 와서 불편한 잠자리이지만 하룻밤을 머문다. 그리고 다음날 주일 새벽, 낮 예배 그리고 오후 예배드리고 다시 주중에는 사업장이 있는 제천으로 돌아간다.

제천에서 이곳까지는 무려 204km나 된다. 그러니 자동차로 트래픽 없는 정상적인 소통에서도 3시간이 넘게 걸리는 먼 거리를 예배하러 온다. 내가 이 분들에게 잘해 드린 게 없다. 단지 말하는 대로 살려했고 신앙에 불의한 일에 타협은 없다는 점을 강조했을 뿐이다. 세월이 흘러 뜻하지 않은 코로나 상황을 맞으면서 권사님 부부는 그런 것에 영향 받지 않고 소신 있게 하는 목회자를 찾았고, 그런 교회에 가기로 부부가 의견을 모으게 함으로써 보내신 천사 같은 분들이다. 지근거리에서도 편하게 신앙생활 하려는 유혹이 짙어져 예배를 소홀히 하는 이 시대가 아니던가? 폼 나는 교회를 찾아 쇼핑하는 모습으로 비춰지는 이 시대가 아니던가?

하지만 코로나라는 마치 난공불락과 같이 여기는 장벽 앞에 많은 교회가 갖가지 그럴싸하고 궁색한 변명으로 합리화할 때에 어떤 이유로도 예배를 폐할 수 없고 더군다나 정부 시책에 따를 수 없다는 내 입장에 권사님 부부 역시 기존 체재에 순응하는 사람들과는 결을 달리하는 심지가 곧은 분들이기에 이곳까지 찾은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기에 3달째 출석하면서도 대화를 해보면 늘 감사요, 긍정적이다. 그러다 최근에는 전국적인 오미크론에 해당하는 독감 확산으로 남편 권사님에게도 찾아왔다. 당연히 힘들어 쉬고 싶은 마음이 없지 않을 때 부인 권사님이 대뜸 하는 말 “ 내가 운전하고 갈 테니 당신은 가다고 죽더라도 가야 한다.”라고 했다는 말을 들으면서 그야말로 감동자체였다. 이에 나는 권사님 부부를 ‘영적 독립군 같은 가정’이라고 명명하고 싶다. 왜냐하면 1900년대 초 독립군이 되려면 얼어 죽을 각오, 굶어죽을 각오, 맞아죽을 각오가 돼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이런 충성스런 두 부부는 코로나로 더욱 보석같이 빛나게 하신 가정이다. 이 두 가정을 보면서 드는 생각은 지금의 현실에 교회의 존재감이다. 복음을 온 천하에 증거하기 위해서는 국가에 예속된 친위부대가 되어 침묵하는 나약함과 두려움에서 벗어나 담대한 믿음과 진정한 예수그리스도의 제자도를 지닌 참 신앙을 회복해야 할 때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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