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랜턴(1856년-1922년) 서거 100주기 추모제
스크랜턴(1856년-1922년) 서거 100주기 추모제
  • 김오채
  • 승인 2022.03.23 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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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관-새 길을 여는 서울연회
*“스크랜턴 서거 100주기 영성집회 및 기념 심포지엄” 개최 예정
* 우리가 잃어버린 이웃!

기독교대한감리회 서울연회(감독 이광호)는 3.23(수) 중구용산지방회 상동교회(담임 이성조 목사)에서 스크랜턴(William Benton Scranton/1856년-1922년) 서거(1922년) 100주기를 맞이하여 추모제를 가졌다. 서울연회는 지난 3.1(화) 흥인지문공원에서 “동대문교회 복원 및 3.1절 기념예배”를 시작으로 3.27(주일) 상동교회에서 “스크랜턴 서거 100주기 영성집회”, 4.30(토) 아현교회에서 “스크랜턴 서거 100주기 기념 심포지엄”을 개최할 계획이다.

스크랜턴(William Benton Scranton/1856년-1922년) 서거 100주기 추모제
스크랜턴 선교사 영정
스크랜턴(William Benton Scranton/1856년-1922년) 서거 100주기 추모제

스크랜턴 서거 100주기 추모제는 이광호 감독(서울연회)의 사회로 스크랜턴 서거 100주기 기념 동영상 상영과 최문자 시인(전협성대 총장)의 추모 시 낭독, 이성조 목사(상동교회 담임) 초대사, 유관수 장로(남선교회 전국연합회 회장)의 스크랜턴 연혁 보고, 이정숙 장로(여선교회 전국연합회 회장)의 대표기도, 김은혜 사모(상동교회)의 특송(곡명-주의은혜라/손경민), 이 철 감독회장(기독교대한감리회)의 설교(성경-엡2:3-7, 제목-“은혜를 전하는 통로”), 안정균 감독(충북연회/감리회 역사위원회 위원장)과 오일영 총무(본부 선교국)와 유완기 장로(장로회 전국연합회 회장)의 추모사, 헌화식(이철 감독회장 등 30명 대표단), 추모공연(상동교회 호산나 남성중창단/ 곡명-사명/이권희의 작사, 작곡), 스크랜턴 선한 이웃 상 시상(시상자-이광호 감독, 수상자-마포지방회 너와 나의 교회 유흥주 목사), 김형래 목사(아현교회 담임)의 광고, 선한 이웃운동 선포식(이성인 권사-청장년선교회 전국연합회 회장, 윤혜주 권사-상동교회 여선교회 대표, 신동민 권사-아현교회 청장년선교회 회장), 부활도리가 찬양(참석자 모두 함께), 김진호 제25대 감독회장의 축도로 모든 순서를 마쳤다.

사회-이광호 감독(서울연회)

▲스크랜턴 서거 100주기를 추모하는 시(낭독-최문자 시인/전 협성대 총장)

스크랜턴, 그가 하나님 한 분 바라보고 모든 영광 버리고 험한 길을 걸을 때 그는 외로웠습니다. 고통스러웠습니다. 죽음 보다 깊은 그러나 의로운 죽음이었습니다.

어느 날 어린 스크랜턴은 어머니께 말했죠. 저는 커서 의사가 되겠어요. 하나님을 아직 모르는 그 어떤 나라로 가겠어요. 거기서 가난하고 아픈 자들을 구하겠어요.

어머니 메리스크랜턴은 기뻐서, 기뻐서 울었습니다. 사람들이 버린 이웃을 어린 아들 스크랜튼이 찾고 있는 게 감사해서 스크랜턴은 꿈대로 이 땅 정동에 병원을 열었습니다.

선한 사마리아 사역은 시작되었죠. 더 가난하고 더 못 배우고 더 아픈 소외된 자들을 찾아 민중이 모여 사는 남대문으로 동대문으로 애오개로 강원도로 원산 한반도 남해 끝까지 민중의 영혼을 구하는 사역은 그치지 않았습니다. 당시 이 땅은 모두가 선한 사마리아 병원이 세워질 여리고 골짜기였죠.

우리는 피를 같이 나눈 우리 이웃도 서로 버리는데 가난한 민중, 못 배운 민중, 고난 받는 민중의 자립과 독립의 기반을 위해 스크랜턴은 모든 걸 바쳤습니다.

스크랜턴모자가 세운 이화학당 공옥여학교 매일학교 전덕기 이필주 구연영 우덕순 김흥순 배동연 같은 감리교 지도자도 키워냈습니다. 크고 높고 화려한 성전을 짓고 이 물질적 부요가 믿음의 축복이라고 착각하는 오늘 이 한국교회들에게 어머니와 그 아들이 던지는 메시지는 참으로, 참으로 우리를 부끄럽게 합니다.

누가 우리의 참 이웃입니까? 누가 우리의 이웃을 살렸습니까? 이제 우리가 대답해야 할 차례입니다.

스크랜턴 서거 100주년이 자리에 지금도 그는 살아있습니다. 살아서 강도 만난 그 누구를 구하고 싶어 합니다.

죽어서도 그들의 이웃이 되려고, 그리고 지금 예수께서 조용히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가서 너희도 이와 같이 하라.

 추모 시 낭독(최문자 시인/전 협성대 총장)

▲초대사

이성조 목사(상동교회 담임)는 스크랜턴 선교사님이 이 땅에서 선한 사마리아 인으로 고통 받는 이웃으로 사시다가 일본 고베에서 돌아가신 지 100년이 되었으나 정작 우리 한국 감리교회는 당신의 이웃되기를 거절하며 당신을 홀로 둔지 100년이 되었다고 회고하며 죄송하고 또 미안하다고 말하면서 예수님과 함께 죽으면 다시 살아난다고 말씀하시며 선한 사람이 되신 예수의 이웃이 되어 강도 만난 자의 이웃으로 살기를 소망하며 스크랜턴(William Benton Scranton/1856년-1922년) 서거 100주기 추모제에 오신 분들을 환영하면서 추모제로 초대하였다.

초대사-이성조 목사(상동교회 담임)

▲스크랜턴 연혁 보고-유관수 장로(남선교회 전국연합회 회장)

스크랜턴 연혁 보고-유관수 장로(남선교회 전국연합회 회장)

▲대표기도

이정숙 장로(여선교회 전국연합회 회장)는 오래전 우상숭배로 가득했던 이 땅에, 선교사들을 통해 하나님의 복음의 씨앗이 떨어져 놀라운 선교의 열매를 맺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이 나라와 이 민족이 복음의 열정을 회복하게 하시고 뜨거운 신앙의 열정을 통해 건강한 신앙이 되살아나게 하시옵기를 간절히 기도하였다. 또한 이 장로는 본국에서 누렸던 의사로서의 부귀와 명성을 버리고 동방의 가난하고 작은 나라인 한국에, 어머니와 함께 오직 선교라는 이름으로 오셨던 분, 아픈 자들에게 위로와 치료를, 가난한 자들에게 지원을, 배움에 무지했던 자들에게 가르침을 주신 분으로 스크랜튼 선교사를 기억하며 이 자리에 모인 우리 모두가 신앙의 빚진 자들로 선교의 열정을 다해 살아가기를 다짐하오니 주님을 향한 첫사랑이 회복되게 하시고, 감사하게 하시며 뜨거운 신앙으로 되살아나게 하여 달라고 간절히 기도하였으며, 이 땅에 궁휼함으로 함께 해주셔서 국내에 경제적으로 혹은 자연재해로 어려움에 처한 주변을 돌아보게 하시고 세계적으로는 전쟁을 겪고 있는 주변국에 속히 평화가 깃 들게 하시고, 전쟁으로 폐허가 된 땅이 속히 회복되고, 사람들에게 평안과 평화가 임하도록 간절히 기도하였다.

대표기도-이정숙 장로(여선교회 전국연합회 회장)

▲설교

이 철 감독회장(기독교대한감리회)은 엡2:3-7을 통하여 “은혜를 전하는 통로”란 제목으로 설교하였다. 이 철 감독회장은 성경말씀에 의하면 우리는 본질상 진노의 자녀로 희망이 없는 자녀였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하여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복된 자녀가 되었다고 하면서 그 복음은 선교사에 의하여 이 땅에 전하여졌다고 하였다. 바울 사도는 자기가 이 복음전파의 사명을 감당하는 이유와 존재의 이유에 대해서 오늘도 예수 안에서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고 하나님이 자기를 부르셨다고 고백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속을 얻었지만, 그 복음을 전달해 주는 자들이 어떻게 전해주느냐가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그들이 들고 오는 복음, 이 복음은 그들이 어떻게 해석해서 전달해 주느냐에 따라서 복음을 따르는 자들의 질이 결정되는 것인데 스크랜턴 선교사는 이 복음을 삶으로 해석해서 전해 주었다. 즉 하나님이 얼마나 우리 조선 백성을 사랑하셨는지와 선교사 자신이 우리 조선을 얼마나 자랑스럽게 여기는지를, 우리를 존중해주고 우리를 사랑했음을 자기의 삶으로 우리에게 보여주셨다. 복음이 기쁜 소식이지만 이 복음을 전달해 주는 자들이 삶으로 보여주지 못했다면 이 복음이 이 한국 땅에 이만큼 깊이 영향을 미치지 못했을 것이다. 선교사님은 희망이 없을 때 희망을 주고 또 억압을 받을 때 다시 일어나게 하고, 교회가 예수님의 바른 정신을 갖고 구원하도록 해주었다.

스크랜턴 선교사는 우리에게 복음을 전달해 준 유명한 은혜의 통로로서 귀중한 분으로 우리 감리회는 이분의 그 희생과 은혜를 잊지 않아야 되는데 오랜 세월 동안 걸러내지 못했던 또 결국에는 한국 교회를 떠나는 고통을 보면서, 지금 세월이 많이 지나서 돌아가신 지가 100년이 되셨지만 결국 그분의 희생은 없어진 게 아니다. 예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시는 그 뜻을 해석하기를 너희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하시는 것을 듣지 못했느냐고 하시면서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오, 산자의 하나님이시다. 이 사실을 생각하면 스크랜턴 선교사님의 뿌린 씨는 결코 소멸되지 않고, 살아 있음으로 이 신앙과 정신의 가치를 다음세대에 길이 이어가도록 전하여야 한다. 스크랜턴 서거 100주년을 맞아 추모 예배를 드리는 이 시간이 귀하고 그를 잊지 않고 다시 회복시키려는 정신이 귀하고 그리고 그 뜻을 살리려고 애쓰는 노력이 다 귀하다고 축복하였다.

설교-이 철 감독회장(기독교대한감리회)

▲추모사

◈안정균 김독(충북연회/감리회 역사위원회 위원장)

선교사님! 당신은 미국의 명문대 면허를 받아서 의사로서 큰 병원 원장이 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루이자 암즈와 결혼으로 분주하던 그 시기에 장티푸스의 위기를 겪으며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 주님의 부르심을 받아 모든 것을 내려놓고 어둠의 땅 조선으로 오셔서 조선 땅에서도 가난하고 소외된 민중들 속에서 사역을 하셨고 그들을 위해 선한 사마리아의 병원을 세우셨는데 그것들이 교회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어머니이신 메이 스크랜트 선교사님이 소외되고 억압받는 여성들을 위해 학교를 세우고 이 땅의 여성 지도자들을 육성하시므로 어머니와 아드님이 역할을 나누어서 사역하시고 이 땅에 큰 족적을 남기신 가문이 되셨습니다. 스크랜턴 선교사님! 당신은 목숨을 다하기까지 조선 땅에서 예수님의 사랑과 복음을 전하며 낮은 곳으로 가서 이웃으로 살아가셨음을 기억하고 이제 우리가 이 땅에 남겨준 그 이웃들을 다시 찾도록 힘쓰겠습니다. 그리고 우리들이 그들에게 다시 선한 이웃으로 다가가도록 애쓰겠습니다. 어두운 조선 땅을 위해 헌신하신 선교사님! 당신은 우리를 위해 자신의 전부를 내어주신 예수님처럼 가장 낮고 소외된 백성들에게 교육과 질병 치료 식량까지도 지원하면서 더 낮은 곳으로 가서 감사하고 행하신 진정한 그리스도의 제자이십니다.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포로 된 자에게 해방을, 억눌린 자에게 자유를” 이 말씀을 몸소 실천하는 삶으로 살아갔던 스크랜턴 선교사님은 천국에서도 별처럼 빛날 것이라 믿습니다. 선교사님의 서거 100주년 기념일을 맞아 선교사님을 추모하는 우리 후배들이 선교사님의 발자취를 따라가기를 다짐해 봅니다.

추모사-안정균 김독(충북연회/감리회 역사위원회 위원장)

◈유완기 장로(장로회 전국연합회 회장)

윌리암 벤턴 스크랜턴(William Benton Scranton 1856-1922) 선교사님은 1878년 예일대를 졸업하고 뉴욕 의과대학(콜롬비아)을 거쳐 미국 사회에서 엘리트로 병원을 개업하고 평안하고 평탄한 생활을 뒤로하고 어려서부터 어머니에게 신앙적 사상적 영향을 받으며 성장 감리교회 집안에서 자라 믿음이 깊었고 해외선교에 관심이 있어 해외선교회 모임에 임원으로 활약하였고, 처음부터 선교사의 목적은 없었으나 믿음으로 1885년 가난하고 고난 받는 백성을 섬기고 진리에 하나님 말씀을 전하려 조선 땅에 도착 하셨습니다. 아펜젤러 선교사님은 정동에 정동교회를 세우고 영어교육을 했고 이는 훗날 배재학당으로 발전하였고, 배재학당은 1887년 고종이 지어준 이름입니다. 스크랜턴 의료선교사님은 정동에 병원을 세우고 고종으로부터 “시 병원”이라는 이름을 하사받아 환자들을 치료했고, 선교사님의 어머니 스크랜턴 여사는 조선 땅에 가부장적인 환경에서 소외되었던 여성들을 위해 여성 계몽운동 및 교육 목적으로 이화학당을 설립하셨습니다. 감리교회는 이렇듯 배재학당, 이화학당, 병원 등에서 민족을 근대화에 앞장섰고 웨슬리가 주창한 기독교인의 실천에 부합한 교육과 의료 활동을 조선 선교에서 충실하게 담당해왔습니다. 이런 활동에 따라 세워진 조선 감리교회는 한국인 목사를 배출하면서 교세가 확장되었고, 감리교정신의 실천은 한국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일명 개화기 무렵 조선 내에 인사들이 기독교 신자로 변모하는 건 당연하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 입니다. 이들은 애국계몽운동, 독립협회, 3.1운동, 임시정부 인사들의 주류를 이루었고, 특히 R스크랜턴 선교사님께서는 남대문에 상동 감리교회, 애오개에 아현감리교회, 동대문에 동대문감리교회 등 감리교회에 상징적인 교회들을 설립 이 땅에 감리교회 근간이 되는 선교와 한국사에는 굵직굵직한 사건들이 기획하였으며 이 교회들은 독립운동 등 우리나라를 세우는 공간으로 활용되었을 갑신정변 실패 후 도미 후 귀국한 서재필은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 등 활동을 해나갔다. 1898년 독립협회가 고종과 기득권 대신들에 의해 해산된 후 스크랜턴이 설립한 남대문 상동 감리교회는 또 다른 투쟁의 진원지가 되었고, 을사조약 후 조약무효 투쟁을 전개한 김구, 이준 등의 활동지였습니다. 그리고 1907년 애국계몽운동의 비밀 결사 조직 신민회가 바로 이곳에서 결성되기도 하였습니다. 상동 감리교회에서 활동한 인사들은 이회영, 김구, 이동녕, 이준, 안창호, 이승훈, 이동휘, 양기탁등이었습니다. 게다가 헤이그 밀사 파견과 한글 보급 운동 역사 보급 운동 또한 주시경, 최남선, 장도빈 등에 의해 전개되었고. 3.1운동 당시 유관순 열사도 이화학당 출신이고 만세운동에 참여한 33인 중 9명이 감리교 신자일 정도로 감리교는 단순한 외래 종교가 아니라 민족정신의 발흥과 실천의 정신적 지주가 되었던 것입니다. 일제는 3.1운동의 주체들이 감리교 신자인 것을 알고 그에 대한 보복으로 경기도 수원의 제암리 감리교회에서 학살을 자행 한바있고 PB 스크랜턴 선교사님는 1907년 선교 정책을 둘러싸고 친일파인 헤리스 감독과 의견충돌 후 모든 직을 사임하고 의사로서 환자를 치료하고 활동하다 1917년 일본으로 건너가 1922년 별세하시여 고베 롯코산 외국인 묘지에 안장되었습니다. 이렇듯 우리 민족을 깨우쳐 하나님 말씀을 받아들이고 근대 현대사 큰 역할을 하신 스크랜턴 서거 100주년을 맞이하여 우리들도 선교사님의 정신으로 자기 자신을 희생함으로 많은 이웃에게 사랑을 전하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들이 되시길 간절히 기도하며 스크랜턴 선교사님 추모사에 갈음하겠습니다.

추모사-유완기 장로(장로회 전국연합회 회장)

▲헌화식

헌화식
헌화-이 철 감독회장
헌화-참석자 일동
헌화-참석자 일동

▲특송 및 추모공연

특송-김은혜 사모
 추모공연-상동교회 남성중창단

▲스크랜턴 선한 이웃상 시상

스크랜턴 선한 이웃 상 시상-시상자/이광호 감독(서울연회), 수상자- 유흥주 목사
스크랜턴 선한 이웃 상 시상-시상자(좌)/이광호 감독(서울연회), 수상자(우)- 유흥주 목사

▲선한 이웃 선포식

스크랜턴 서거 100주기 추모제 선포식

(다함께)
우리는 스크랜턴 서거 100주기를 맞아 다음과 같이 선한이웃운동을 실천하기로 다짐하며 선서합니다.

이성인권사
1, 우리는 복음의 빚진 자의 정체성을 가지고 스크랜턴 선교사님이 남겨준 복음의 유산을 한국사회와 교회의 이웃들에게 적극적으로 갚아 나가는 삶을 살겠습니다.
2. 우리는 교회 내에서 서로의 필요를 채우는 것 보다는 교회 밖에 있는 이웃들의 절대적 궁핍과 아픔을 보살피겠습니다.

윤혜주 권사
3. 가난한 이웃들에게 선한 사마리아인으로 살면서 고베에서 외로운 죽음을 맞이한 스크랜턴 선교사님처럼, 외롭고 힘겨워도 끝까지 예수님처럼 고난 받는 이들의 진정한 이웃으로 살겠습니다.
4. 교회 안에서 형식적인 종교인으로 살아가지 않고, 삶의 현장에서 이웃을 위해 자신을 내어주는 참된 신앙인으로 살겠습니다.

신동민 권사
5. 각 교회에서는 스크랜턴서거 100주년을 시작으로 지역 사회의 선한 이웃이 되기 위한 구체적인 신앙실천 운동을 지속적으로 실행해 나가겠습니다.
6. 서울연회의 모든 교회와 성도들은 한마음으로 선한이웃운동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참여하겠습니다.

선한 이웃 선포식
선한 이웃 선포식
선한 이웃 선포식

▲축도

축도-김진호 제25대 감독회장
스크랜턴(William Benton Scranton/1856년-1922년) 서거 100주기 추모제
스크랜턴(William Benton Scranton/1856년-1922년) 서거 100주기 추모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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