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오르기 전에 베어야 혀
물오르기 전에 베어야 혀
  • 남광현
  • 승인 2022.02.26 21:2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목사님 교회에 계시나요? 0권사예요...”

“예, 권사님 무슨 일 있으신가요?”

“아니요, 기념관 현관 열쇠 가져다드리려고요”

“권사님 그냥 가지고 계셔도 돼요, 저도 가지고 있어요”

“제가 부담돼서 돌려 드리려구요...”

10년 가까이 필자가 섬기는 일 중에 「선교사 기념관」에 관한 일이 있는데 과거에는 문지기 역할을 감당해야 할 때가 있었다. 그리고 그때 교우 두 분께 출입문 열쇠를 나누어 드리고 그 역할을 공유하려 한 적이 있었다. 혹시 목사가 자리를 비우게 될 때 방문객이 오면 기념관 문을 열어 줄 사람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현재는 번호키를 사용하고 있어 특별히 문지기 역할을 해줄 사람이 필요하지는 않다. 필자의 속내는 달리 있었다. 그것은 교우분들이 열쇠를 가지고 있으므로 기념관에 더 많은 관심과 기도를 가져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교회 마당에 들어선 선교사 기념관이 시골 어촌교회 교우분들에게는 낯설 수밖에 없었기에 되도록 빨리 그 의미를 이해하고 방문객들의 내방에 적응하며 자신의 신앙생활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 드리고 싶은 마음이 분명했다. 그래서 우선 두 분께 기념관 열쇠를 건네 드린 것이다. 그런데 약 3개월이 지난가을 초입에 여자 권사님 한 분이 전화를 주셔서 하셨던 말씀이 “부담스러워서 더는 열쇠를 가지고 있지 못하겠다”라는 것이다. 무엇이 부담되시는지 여쭤보아도 그냥 부담스럽다고만 하시지 그 이유를 분명히 말씀해 주시지 않았다. 한참 지나서 출입문 열쇠를 번호키로 변경하고 난 뒤 두 분의 고백을 통해 그 부담스러움이 무엇이었는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두 분 모두에게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던 일임을 필자는 인정할 수 있었다. 교회에서 교우 두 분의 역할은 적지 않았고 어떤 요청을 드려도 그것이 교회와 신앙생활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자신이 감당해야 할 십자가로 여기고 묵묵히 감당해 주시던 분들이었다. 그래서 부탁을 드리게 된 것이고 처음 열쇠를 받았을 때는 감사함으로 받으셨다고 한다. 그런데 현관문을 열 때마다 시골 권사님 입장에서는 공교롭게도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는 목사님들이라는 것과 그분들이 권사님께 기념관 설명을 부탁한다는 것이다. 헌신의 마음이 감당키 어려운 큰 짐이 되고 말았다. 담임목사를 생각하는 마음에 쉽사리 표현치 못하고 수개월 동안 마음고생만 하다 어렵게 전화를 든 것이다. 열쇠를 드린 두 분 모두 같은 입장이었다. 미안한 마음에 달려가 열쇠를 건네받았다.

그리고 얼마 전, 이와 비슷한 일이 남선교회에서 일어났다. 교회가 기증받은 임야 2만 3천여 평의 일부를 지적공사에 측량의뢰를 했고 작업을 진행했다. 70이 훌쩍 넘으신 남선교회 회원분들이 측량 기사분들의 뒤를 따르며 경계 표시를 남기는 작업을 도왔다. 임야이기에 지적공사에서 표시하는 빨간 나무말뚝으로는 풀이 자라면 확인이 어렵다고 해서 고춧대에 주황색 비닐을 매달아 함께 박아 두는 작업을 함께 한 것이다. 교회 주변의 임야라고는 하지만 순탄치 않은 측량이라고 사전에 고지받은 대로 3일 동안 계속되는 측량작업에 연세 드신 회원분들은 단 하루 만에 몸살이 나고 입술이 부르트며 온몸에 이런저런 상처를 입는 어려움이 있었다. 감사하게도 그분들의 수고에 경계측량을 마칠 수 있었다. 그런데 주일 오후에 남선교회 회원분들이 작업 복장을 하고 다시 교회로 모였다. 측량작업을 하면서 베어야 할 나무들이 제법 있음을 직접 보았다. 그래서 각자 나름의 생각을 가지고 이미 죽은 나무들은 베어서 화목으로 사용하고, 가치 없는 나무들도 베어 놓은 것이 필요하다고들 정리했고 주일 오후 예배를 마치고 함께 작업을 하자고 의기투합하게 된 것이었다. 그래서 어느 권사님은 톱을 가져오고, 어느 집사님은 기계톱을 가져오며, 누구는 기계톱에 넣을 윤활유와 휘발유를 가져오기로 약속했다. 몸살이 나고 입술이 터지고 몸에 가시에 긁혀 생긴 상처가 여전함에도 당장 해야 할 일이라고들 말한다. 그리고 젊은이들처럼 기계톱은 아무나 만지는 것이 아니라고 하며 내가 하니, 네가 하니 허세들이 대단했다. 교회 주택 맞은편에 있는 나무부터 자른다고 기계톱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그런데 1시간도 않되 교회로 돌아온 회원분들이 별말도 없이 뿔뿔이 댁으로 돌아간다. 뒤에 알게 된 이유는 힘든 몸을 무릎 쓰고 즐겁게 작업을 하려 했으나 기계톱이 말썽이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톱으로 얼마든지 작업할 수 있다고 장담했던 집사님의 톱의 날이 무뎌져서 덩치 큰 나무를 자르는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이었다. 얼마 전까지 직접 사용했었기 때문에 기쁜 마음으로 자신의 톱을 사용하려 했던 것이었는데 그만 예상치 못한 문제에 난감해진 것이다. 그리고 먼저 돈을 주고서라도 빌려오자는 의견을 제시했던 집사님께서 분을 냈던 모양이다. 주일에 예배를 드리고 교회 마당에서 인사를 나누는데 남선교회 회장님과 몇몇 회원들이 나누는 이야기가 귓전에 들린다.

“워쪄 벨 나무는 베어야 하는디?”

“베려면 배 나가기 전에 해야되유”

“서로 맘 상하지 않게 잘 해야쥬”

“어쨌든 나무들이 물오르기 전에 베어야 혀”

이 마음들이 믿음으로 살아가는 성도들의 신앙생활이고 헌신의 모습이 아닐까?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