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닻줄
고정닻줄
  • 남광현
  • 승인 2022.01.29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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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 도로를 달리다 보면 콘크리트로 된 도로와 바다를 경계 삼는 구조물들을 흔히 보게 된다. 그 구조물의 역할은 바닷물이 도로로 침범치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큰 바람이 일어나거나 해수면이 높아지는 대조기가(필자주: 우리 지역에서는 “대사리”라고 불리고 있으며, 밀물이 가장 높은 때를 말한다.) 되면 여지없이 바닷물 세례를 받기 일쑤이다. 우리 마을에서 면 소재지로 나가려면 두 갈래 길이 있는데 하나는 바닷가를 끼고 나가는 도로이고 다른 한 길은 마을 안을 지나가는 도로이다. 마을에서 앞서 나가는 차를 좇아가다 보면 오늘 파도의 높이를 예측해 볼 수 있다. 앞서가는 차들이 해변도로를 이용하면 대조기의 반대인 소조기(소사리) 때임을 예측할 수 있으며, 반대로 날씨가 좋음에도 불구하고 앞서가는 차들이 마을길로 들어서면 분명 대조기(대사리) 때임을 예상할 수 있다. 왜 어촌에 사는 분들이 물때에 따라 이런 선택을 하는 것일까? 경험을 해 보니 이제는 분명히 알 수 있다. 어촌을 여행해 본 분들이라면 그리고 조금의 관찰력을 가지고 어촌에서 운행되는 차량들을 살펴본 경험이 있다면 군데군데 녹이 나 있는 차들을 쉽게 보았을 것이다. 어촌에서 사용하는 차량들이 사용 연한이 오래된 차들만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다. 이것이 바로 바닷물의 위력이다. 어촌에서 신차를 구입하고 2년 정도 지나면 이 차량이 포구를 얼마나 자주 드나들었는지 확인하기 어렵지 않다. 왜냐하면 포구에 자주 드나들면 들수록 어쩔 수 없이 바닷물이 차량에 묻어나게 되고 그 결과는 차량 내부로부터 부식을 일으켜 결국에는 차량의 페인트를 벗겨 내고야 만다. 그리고 “검붉게 녹슨 차량이 이런 것이다”라고 보여 준다. “어촌에 사는 분들이 갈림길에서 왜 그런 선택을 하는 것일까?”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는 현상이다. 어촌 지기들은 바닷물이 차량에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바닷가 포구를 자세히 살피다 보면 바다와 육지의 경계 부분에 경계석 같이 바닥에서 튀어 올라 온 기둥들이 줄지어 있는 모습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작은 것은 두 손으로 움켜질 수 있을 만큼의 굵기인 것도 있고 큰 것은 두 팔로 안아야 겨우 될 만큼의 굵은 것도 있다. 여느 사람들은 그 용도를 잘 알지 못하고 지나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배가 정박할 수 있는 포구라면 빠짐없이 포구 가장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구조물이다. 이 구조물이 있는 포구는 또 다른 특징들이 있는데 그것은 바다의 밀물과 썰물에 의해 나타나는 비릿한 냄새와 조심치 않으면 큰 낭패를 보는 경우가 흔히 있는 물이끼에 의한 바닥의 미끄러움, 그리고 굵고, 얇은 긴 줄에 매여 줄지어 늘어서 있는 크고 작은 배들과 그것을 살피는 어부들의 평안한 모습을 항상 목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어부들의 일상을 보면 “도시의 직장인의 일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 일반적으로 출근을 위해 차의 시동을 걸고 운전을 해 직장을 향하고 일과를 마치면 다시 집으로 돌아와 주차를 한다. 어부들도 출근을 위해 배의 시동을 걸고 그들의 일터인 망망한 바다를 향해 운항을 하고 열심히 수고한 후 안전한 포구에 이르러 배의 시동을 끈다. 그런데 어부들에게는 마무리해야 할 일이 한 가지가 더 있다. 그것은 반드시 해야 할 일인데, 배를 정박시키기 위해 닻줄을 단단히 매는 일이다. 아파트 단지의 주차장에는 주차선이 잘 표시되 있어 주차선 안에 잘 넣어 놓기만 하면 되지만, 포구에 배를 정박하는 경우 주차선 찾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아무렇게나 배를 정박하는 것은 아니다. 나름 질서가 있다. 그 질서의 기준이 바로 포구 바닥에 솟아 있는 작은 기둥들이다. 이 기둥들이 없다면 아무리 포구라 하더라도 배의 안전을 보장 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냥 물 위에 배를 띄워 두는 격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든 배에는 닻줄이 실려 있기 마련이다. 배의 앞부분인 이물과 배의 뒷부분인 고물에도 닻줄이 있다. 그리고 배들이 정박을 위해 이물에 있는 닻줄을 매는 곳이 바로 포구에 나란히 줄지어 서 있는 기둥들이다. 결국 이 기둥들이 주차선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바람이 일지 않는 경우 일반적으로 이물에서 포구의 기둥에 하나의 닻줄을 매어 정박시킨다. 그러나 바람이 일거나 파고가 높아지면 여러 개의 닻줄을 포구의 기둥들에 단단히 매어 둔다. 이런 경우 인접하고 있는 배들끼리 닻줄을 교차해 매어 둠으로 포구의 모든 배들이 하나로 묶여진 것처럼 만들어 놓아 정박한 배들끼리 부딪혀 상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도 한다. 이 닻줄의 이름이 고정닻줄이다. 어부들의 지혜요 배려를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어촌 교회 공동체에서도 이런 모습은 그대로 배여 나온다. 교우들에게 있어 마음의 포구는 역시 교회이고 그들이 안전하고 평안한 삶을 위해 마음의 닻을 주님께 두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리고 예배당 안, 자신들의 자리에 고정닻줄 즉, 믿음의 닻줄을 단단히 매어둠으로 하나님께서 날마다 든든히 지켜 주시리라는 확신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는 모습들을 보게 된다. 또한 신앙의 어려움이 닥칠 때 교우들끼리 그 고정닻줄을 서로 얽혀 매어 상처를 줄이는 모습이 나타나기도 한다. 힘든 일상은 계속되지만 고정닻줄을 주님께 단단히 매어 놓았다면 그 신앙은 늘 안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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