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난민을 돌보는 이백호 목사
멕시코 난민을 돌보는 이백호 목사
  • 주성호
  • 승인 2012.09.10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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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5. 멕시코 난민을 돌보는 이백호 목사

이백호 목사를 처음 알게 된 것은 1975년도에 속초 감리교회를 담임 했을 때 김준곤 목사님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속초지역을 위해 CCC이백호 간사를 보내니 잘 협조해 달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된 이유로는 이미 CCC 간사로 있는 홍정길 목사가 속초에 와서 우리교회에서 청년들을 위한 집회를 한 이후였기 때문이다.

속초 지역에 부임한 이벡호 간사는 속초감리교회에서 갖가지 program을 진행하며 교회 성가대와 교육에도 열정적으로 일하였기 때문에 특별한 관계가 된 것이다.
서울 CCC본부에서 사역을 할 때는 내가 종로 3가 석천교회 담임을 하고 있을 때임으로 합창단 연습도 우리교회에서 하면서 영상 기를 가져와 영화도 보여주곤 했다.

후에 그는 미국 뉴욕에 이민을 갔는데 특별한 사역으로는 불법체류자들을 위한 사역을 하고 있었다. 뉴욕에서 뉴욕지역 교역자들을 위한 세미나를 마친 후 이목사는 내가 꼭 보고 가야할 곳이 있는데 안내 하겠다는 것이었다.

약속된 시간에 안내 된 곳은 한국에서 온 불법 체류자들이 원룸에 침대 넷을 놓고 합숙하는 곳인데 식사 준비를 해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주로 채소 가게에서 일하는 자들로 한 달에 1,500불을 받아 500불로 공동생활을 하고 1,000불을 매달 한국의 가족에게 송금하는 애국자들이었다. 예배를 함께 드리고 나서 식사를 하며 그들의 애환을 들으며 기족에게 보내는 입장 곤란한 부탁도 거절할 수 없는 분위기였다. 이목사의 특징이라면 어느 곳에서든지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서라면 언제든지 갖가지 희생을 감수하며 일하는 것을 볼 때 특별한 달란트의 하나라 볼 수 있다.

그 후 그는 L. A로 이사했고 교회를 개척하고 목회를 하는 동안에도 계속 만나게 되었는데 한번을 교인들과 함께 멕시코 어려운 난민 지역을 방문하게 되었다. 봉고차에 라면, 빵, 과자류 외 갖가지 생필품을 봉고차에 가득 준비해 멕시코 국제항인 엔세나다에서 목회를 하고 있는 이건만 선교사 교회에 여장을 풀고 이선교사의 안내로 과히 멀지 않는 띠우나다 마을을 방문했다.

위문품을 실은 차가 동리 한 복판에 이르렀을 때에 갑자기 사방에서 경찰차 세대가 포위하며 달려 왔고 한 편 아이들은 맨발로 떼를 지어 몰려 왔다.
경찰차가 동원된 것은 수상한 차가 동리에 왔다는 신고 때문이었는데 이건만 선교사가 특별히 경찰서에 가서 태권도를 가르치는 사범이니 간단히 해결되었다.
그런데 아이들이 맨발로 몰려드는 이유는 전에 왔었을 때 아이들이 너무 많고 위문품은 적으니 어려운 아이들에게 우선권을 주다보니 맨발로 온 아이들부터 해당시켰는데 아이들이 차를 보고 아예 신발을 벗어 던져버리고 달려온 것이었다.

띠우나다 마을은 200여세대나 많은 집단 마을이며 주택은 하나같이 흑 벽들로 나지막하게 지었는데 안에 들어가 보니 바닥 처리도 안 되고 밖에는 드럼통이 네 집에 하나 꼴로 놓여 있는데 며칠에 한 번씩 소방차가 와서 물을 채워두면 그것으로 생활 식수를 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전기 시설도 전혀 안된 우리나라 6.25 직후 흑 벽돌로 움막 짓고 살았던 모습 그대로 이었다.

몇 년 지나 L. A를 방문했을 때 이 목사는 또 멕시코 방문을 요청해 함께 동행 했는데 가는 길에 그의 장녀가 남편과 함께 센디아고에 살면서 해산을 한 달 앞두고 있었는데 주차장에서 만나 기도를 요청하기에 산모의 배위에 손을 얹고 함께 기도하고 떠났는데 그 후 듣기로는 순산했다는 소식이었다. 내 목회 사역에는 특히 임산부와의 이야기가 제법 많다.
일행은 멕시코 국경을 넘어 가까운 마을에서 목회하는 원주민 로라 목사를 만나 함께 기도하고 이어서 어려운 집을 방문하여 위문품을 전달하고 기도하고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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