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세워야 하나유?
누구를 세워야 하나유?
  • 남광현
  • 승인 2022.01.15 11: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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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의 한복판에서 어촌의 포구는 사람이 그립다. 어부가 아니어도 좋다. 밤을 낮 삼아 포구에서 고독을 즐기던 낚시꾼도 좋고, 핸드폰 카메라의 한계로 얼굴을 맞대며 옹기종기 모여들던 젊은이들도 좋고 호호 할아버지, 할머니도 상관없다. 겨울 포구, 그 자리에 함께 있어 줄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괜찮다고 말하고 있는 듯하다. 참 무심하다 싶을 정도로 얼어붙은 포구에는 발걸음이 사라졌다. 예년 같으면 서해안에서 이름난 해넘이, 해돋이 축제로 인해 요란한 곳 중 한 곳이어서 꽁꽁 얼어붙었던 포구가 모여든 사람들의 온기로 포구의 냉기가 사라지는 모습을 즐겨 보아왔다. 코로나19의 위력이 무섭다.

어촌에서는 이 시기에 여러 가지 마을 사업을 결정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마을총회, 당제, 풍어제 계획 등 크고 작은 일들을 결정하고 진행한다. 며칠 전에는 마을 임시총회가 열렸는데 안건은 마을 재정에 관한 회계와 관련된 회의였었다. 참석은 하지 않았지만 전해지는 이야기가 드라마틱하다. 역시 시골스러운 회의 모습이며 결정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회의 도중, 진행자와 참석자 간에 격한 몸싸움이 있었고 결국 임시총회라는 무게감과는 상관없이 흐지부지 끝났다는 것이다. 회의장이 싸움터가 되는 경우를 왕왕 보기에 참석했던 마을 주민들도 혀만 끌끌 찰 뿐 회의 결과를 보기도 전에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는 것이다. 공식적인 회의임에도 불구하고 제 뜻이 관철되지 않거나 목적한 바가 성립되지 않을 때 표현되는 모습들은 마을 주민으로서 아쉬움이 많이 남게 된다.

안타까운 것은, 교회에서도 마을 회의에서 보던 광경을 비슷하게 경험할 때가 있다는 것이다. 특히 결정적인 문제 앞에서 교우들의 모습이 이렇게 비쳐질 때 마음이 무너짐을 느끼며, 사역에 대한 회의감이 나타나는 것을 어찌할 수 없다.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회의 중에 제 생각과 다르거나 맘에 들지 안으면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이 다반사였으며, 몸싸움까지는 아니더라도 대화가 험해지고 언성이 높아지는 일들로 회의 진행이 어려웠던 때가 있었다. 타당한 근거 없이 자기주장만으로 뜻을 관철하려는 모습들은 특히 임원 선출 시에 더 극명하게 나타났었다. 거의 매번 경험하는 일이기에 이제는 면역이 생기는 듯하다.

회기를 마감하기 위해 당회로 모일 때 어촌의 작은 교회는 달리 정리하거나 크게 바뀔 만한 일이 없다. 그래서 조금은 편한 마음으로 회의를 준비하노라면 꼭 돌발상황이 발생한다. 작년 경우인데, 신천 임원을 당회에 천거하기 위해 교리와 장정에 의거 기획위원회로 모였고 모두가 “누구를 세워야 하나유?”라고 물을 뿐 신천 할 분이 없다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그때 돌연, 한 분이 나서서 권사 2분을 천거했다. 문제는 교적상 권사 수가 정원이었기에 더는 임원으로 세울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거명된 당사자들의 남편이 위원들이었기에 나머지 위원들은 그 자리에서 반대하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말았다. 법적으로 권사 추천이 어렵다고 설명을 했지만 “우리 교회에서 필요하면 얼마든지 세울 수 있는 것 아니냐”는 논리로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생각지 않은 논쟁 속에 결국 1명을 권사로 천거하게 되었다. 물론 그분의 주장이 온전히 잘못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권사로 임명된 분이 교회에서 처음 집사 직분을 받은 지가 20년이 넘었고 재정부장까지도 감당했던 분이셨다. 다만 다른 교우분들보다 조금 일찍 젊은 나이에 집사 직분을 받다 보니 층층시하 연세 드신 분들에게 양보하며 긴 세월을 보내게 된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법적 문제가 분명함에도 제 뜻을 관철하려는 모습은 어촌마을 회의에서 보던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것이었다.

믿음이 연약하여 나타나는 모습일까? 필자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어부들이 가지고 있는 분명한 자기주장을 포기할 줄 모르는 모습일까? 그것도 분명 아니다. 그분의 성품상 맞지 않는다. 참 이해되지 않는 상황이다. 몇 주가 지나서 그렇게까지 강하게 주장한 이유를 그 집사님으로부터 죄송하다는 정중한 말씀과 함께 듣게 되었다. 사실, 권사 추천을 한 남자 집사님은 내외분 모두가 그 여권사님 내외분과 함께 모임을 하는 분들이었고 그 권사님의 전도로 교회에 나오게 된 분들이었다. 몇 해 전 남자 집사님 부인이 집사 직분을 받게 되었는데 그렇게 되고 보니 몇십 년 동안 집사 직분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던 그 권사님 보기가 미안해졌다는 것이었다. 기회를 보고 있다가 내외분이 의기투합하여 일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교회 공동체 안에서 누구도 쉽게 할 수 없는 무엇인가 큰일을 해낸 분들처럼 뿌듯함에 흠뻑 취해 필자에게 그 전모를 전해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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