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문 성도
뒷문 성도
  • 신상균
  • 승인 2022.01.05 22: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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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전화를 합니다.
“권사님, 뒷문으로 갈께요.”
아내가 전화를 받습니다.
“네, 권사님 뒷문으로 갈께요.”

우리집은 주방에 집 밖으로 나가는 문이 있습니다.
주방의 문을 열고 나가면 교회 뒤편이 나옵니다.
그리고 그곳에 작은 길이 있고,
그 길 건너편에는 집들이 나란히 줄지어 있습니다.
아내는 주방에서 일하다 볼일이 있으면 뒷문으로 나갔다 들어옵니다.
그런데 권사님과 전화를 하고 뒷문으로 나갔다 들어오면 반드시 변화가 있습니다.
아내 손에 들려 있던 음식이나 과일이 없어지거나
빈손으로 나갔던 아내 손에 음식이나 과일이 들려 있습니다.
알고보니 뒷문 근처에 사시는 권사님들이 뒷문을 통해 아내와 물건을 주고 받는 것이었습니다.

갑자기 옛날 학교 다니던 생각이 났습니다.
내가 다니던 학교에도 뒷문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뒷문에는 문방구가 있었습니다.
학교 준비물을 잊어버린 날, 아이들은 뒷문으로 달려갑니다.
그리고 소리칩니다.
“아저씨 공책 주세요, 아저씨 자 주세요. 아저씨 빵 주세요”
어떤 때는 학용품을, 어떤 때는 간식을 뒷문에서 해결했습니다
어떤 때는 엄마가 뒷문으로 오십니다.
그리고 체육복을 가져다 주십니다.
그리고 어떤 때는 도시락을 건네 줍니다.
학교 선생님은 아느듯 모르는 듯 눈감아 주십니다.
뒷문에서 그렇게 우리의 부족함을 채웠습니다.

목회를 하다보니 앞문만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누가 들어오는구나, 누가 나가는구나.
누가 안내하는구나, 누가 봉사하는구나.
그런데 생각해보니 뒷문에도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목사님 식사하세요 하고 식사비를 건네는 성도
목사님 이것드시고 건강하세요 하고 홍삼을 건네는 성도
목사님 겨울이 되니 화장품 쓰세요 하고 스킨 로션을 건네는 성도
마치 도시락을 싸가지고 뒷문에서 나를 기다리던 엄마처럼
어떻게 하면 목사에게 좋은 것을 줄까하고 뒷문에서 기다리는 성도들

오늘도 아내가 뒷문 앞에서 서성거립니다.
잠시 후 아내가 뒷문을 열자 찬 바람이 주방안으로 몰려듭니다.
그러나 문을 닫고 들어오는 아내 손에는 하얀 접시에 놓인 따뜻한 메밀김치전이 들려 있었습니다.
우리 권사님이 만들어 주신 메밀김치전...
갑자기 침이 꿀꺽 넘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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