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 트리 걸어야쥬?
성탄 트리 걸어야쥬?
  • 남광현
  • 승인 2021.12.27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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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중순경이 되면 서해안 바다는 참 매서워진다. 마음 깊숙이 쉼을 주었던 가을바람은 자취를 감추고 어느새 가슴이 저미도록 날카로움을 앞세운 겨울바람이 자리를 차지하려 눈치를 본다. 올해도 역시 이상기후 탓인지 12월이 되었음에도 과거의 추위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렇다고 바다에서 이는 바람을 무시할 수 없다. 12월 초순경이면 대부분의 어장은 모두 끝나고 다만, 낚싯배들이 일기에 따라 12월 중순까지 주꾸미와 농어 낚시로 바다에 나간다. 그리고 이때부터는 본격적으로 김살 작업(필자 주: 김의 원초를 채취하는 작업)이 시작된다. 김살 작업에 임하는 어부들에게 겨울 바다는 매서운 추위와 싸워야 하는 삶의 터전이다. 최근에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거의 모든 부분에서 역할을 하고 있는데 그분들 중 대부분이 동남아 지역에서 온 경우라 추위에 매우 취약하다는 것이다. 그들에게 있어서 서해안 겨울 바다는 고국에 있는 가족들을 위한 사투의 장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겨울 포구는 매일 김살 배로 분주하다. 어촌의 겨울 일상은 이렇게 4계절의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성탄절이 가까워지면 어촌교회도 다른 모습의 헌신을 경험하게 된다. 어선의 조업 철이 마무리되면 어부들은 원근에 있는 병원들 방문에 바빠진다. 교우 분들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이제 바쁜 조업 철이 지났으니 좀 더 열심히 신앙생활을 해야겠다고 다짐하던 분들이 얼마 지나지 않아 주일에도 얼굴을 마주 대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해진다. 병원 신세를 면하기 어려워서이다. 어촌교회 목회 초년에는 교우 분들의 교회 교육에 관한 계획을 조업 철이 끝나는 겨울 쪽에 두고 열심히 준비했다. 19년 차인 지금에 와서 고백하는 것은 지금까지 임원교육, 속장 교육, 교사 교육 등에 있어서 단 한 차례도 참여자 전원 수료를 경험치 못했다.

강림절이 시작되기 전 교회는 여전히 그 분주함을 경험한다. 성탄 트리 준비이다. 올해도 예년과 같은 패턴으로 일단 약속을 먼저 한다. 주일 오후 예배 후에 모여서 작업을 하겠다는 것이다. 필자는 간식을 준비하고 저녁 식사는 무엇으로 준비해 드려야하나 고민하며 준비한다. 그런데 조용하다. 아무도 올라오지 않으신다. 처음 경험할 때는 당황되었으나 이제는 그러려니 한다. 무엇인지 급한 일들이 생긴 모양새이기 때문이다. 주중에 교회 사택 앞이 소란스러워지면 교우 분들의 트리 작업이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예고가 없다. 몇 몇 분들이 시간이 되면 그분들 중심으로 작업이 시작되는 것이고 아름아름 모여 마무리를 한다. 언젠가는 트리 작업을 2주 동안이나 하기도 했었다. 예배당 트리는 문제가 되지 않지만 외부 트리는 매년 문제가 된다. 이유는 이곳이 바닷가라는 것이다. 바닷가 겨울바람이 얼마나 매서운지 경험이 있는 분들에게는 이해가 어렵지 않으리라. 바닷가 바람의 영향으로 12m가까이 되는 트리 10줄의 전구들이 춤을 추듯 하며 겨울 밤, 낮을 견딘다는 것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매년 트리 전구를 교체해야만 한다. 올 해도 역시 똑같은 작업을 할 수 밖에 없었는데 메인 줄인 나일론 줄 10가닥에 테이핑 하여 매달려 있는 전선이 각 각 3가닥씩 묶여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적어도 3년 동안 보수해 왔다는 역사적 증거이다. 끊어진 전선을 제거하지 않고 덧대는 이유는 전선의 장력을 유지 시키려는 목적이기도 하다. 이러하다 보니 일이 많아진다. 한 두 사람이 하기에는 버거운 일이기에 뒤로 미뤄지기도 하고 때론 약속이 지켜지지 못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매년 교회 트리는 해야만 한다고들 하며 시간을 맞추는 노년의 교우들을 보면서 분명 감사한 일이다 생각하지만 그들에 믿음의 추억들이 언제까지 이어질는지 염려도 적지 않다.

젊은 시절부터 바다와 교회 중심의 생활이 전부였던 그들에게 성탄절 트리 준비는 분명 자신들이 걸어온 신앙생활에 대한 추억이며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한 신앙을 지켜가고 있음에 대한 고백이라고 여겨진다. 어촌 교회의 겨울나기에 성탄 트리 준비는 교우들의 이런 의미를 담고 이루어지며 밤마다 환하게 빛나는 성탄 트리는 마을에서 함께 살아가는 이웃들에게 그들의 신앙을 표현하는 하나의 방법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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