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비가일이 그립다
아비가일이 그립다
  • 이구영
  • 승인 2021.12.03 0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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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사람들의 생각에 대한 통계 중에 이런 것이 있습니다. ‘나 자신을 위해 사는 것이 인생에서 중요하다’ 67% 과거 우리는 국가, 교회, 가정을 먼저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 특히 가정 주부들 조차도 자신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며 산다는 것입니다. 자녀와 배우자 보다도, 부모 보다도 나 자신이 중요한 시대! 예수님을 닮아가는 하나님의 자녀들은 세상을 본받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롬 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먼저 생각해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문득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며 남편과 자녀를 위해 살았던 아비가일이 생각납니다. 아비가일은 다윗의 두 번째 부인이 된 사람입니다. 못난이 남편 나발을 위해 살다가, 그 남편이 죽자 다윗의 아내가 되고, 다윗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 길르압을 위해 길을 열어 준 사람 아비가일!
이스라엘의 왕 다윗에게는 많은 부인들이 있었고, 많은 아들들이 있었습니다. 40여년 왕 노릇 하던 다윗의 삶 중에서, 다윗의 삶에 30대에 얻은 부인과 아들들 대부분은 다윗에게 큰 짐이 되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첫째 아들 암논은 배다른 동생 다말을 성폭행한 죄인이고, 셋째 아들인 압살롬은 동생의 성폭행을 빌미로 삼아 대권 후계자인 배다른 형 암논을 제거해 버립니다. 그리고 후에 쿠데타를 일으켰다가 실패하여 죽게 됩니다. 넷째 아들인 아도니야! 다윗 왕이 나이가 들어 죽음이 가까이 오자 강력한 대권주자로 떠올랐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이 왕이 되자 은근히 모략을 쓰다가 처형을 당하게 됩니다. 여기까지의 내용 중에 궁금한 사람이 하나 있습니다. 둘째 아들 길르압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불행하게도 ‘길르압’이라는 이름은 성경에 딱 한군데 삼하 3장 3절에만 나옵니다. 역대상에서는 그의 이름을 ‘다니엘’이라고 소개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길르압이 일찍 죽어서 성경에 이름이 한번밖에 나오지 않는다고 하는데 근거가 희박합니다.

그렇다면 길르압은 어떻게 살았을까요? 그 이름이 참 특이합니다. 길르압이 태어났을 때 이미 다윗에게는 암논이라는 큰 아들이 있었습니다. 둘째로 태어났습니다. 어머니 아비가일은 이름을 길르압이라 지었습니다. ‘길르압’이라는 말의 뜻은 어떤 물건이나 사람의 이동 혹은 움직임을 제한한다는 뜻입니다. 적게 움직여야 하는 사람! 조용히 살아야 하는 사람! 움직임을 절제해야 하는 사람! 아비가일이라는 길르압의 엄마는 아들의 이름을 지으면서 너는 조용히 사는 게 좋겠다. ‘절제하며 살았으면 좋겠다’ 라고 지었습니다. 참 대단한 천리안을 가진 여인입니다. 얼마든지 형의 경쟁자가 될 수도 있고, 아비와 어미의 근심이 될 수도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아비가일은 아들이 태어나자 이름을 길르압이라 지었습니다. 너는 왕이 되려고 하지 말아라! 너는 정치하려고 하지 말아라! 그러다 일찍 죽는다. 그는 길르압의 인생을 길게 만들어 놓습니다. 첫 남편 나발이 다윗에게 큰 상처를 주고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어 죽음이 임박하게 되었을 때 아비가일은 다윗을 찾아가 남편을 위해 호소합니다. 아비가일의 호소는 상당히 적절한 타이밍, 적절한 내용이었습니다. 지혜가 보통이 아니었습니다. 너무 황급히 벌어진 일임에도 평소에 그가 얼마나 지혜로운 사람, 너그러운 사람, 사랑의 사람인지를 알려주는 명연설문입니다.

- 저는 당신이 골리앗을 물매 돌로 죽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만약 나발이 당신을 대적했다면 역시 하나님께서 친히 물매로 나발을 치실 것입니다. 그러니 제발 당신이 직접 손을 대지는 말아 달라고 합니다.
- 저는 당신의 하나님께서 당신을 왕으로 세우실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그때 당신의 양심에 꺼림직 한 일이 하나라도 생각난다면 어찌 편히 주무시겠습니까? 오늘 당신이 나발과 저와 우리 가족을 다 죽이시면 이것은 당신이 왕이 되실 때 큰 발목을 잡히게 되는 창피스러운 일이 될 것이니 다윗 스스로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참아 달라고 하소연을 합니다.
- 오늘 나발이 그렇게 심하게 당신의 사람들을 대한 것이 사실은 제가 나발을 그렇게 만든 것이니 그 책임이 저한테 있으므로 일단 저를 죽여달라고 하소연합니다. 남편의 무능력과 무책임과 배신을 자신의 탓으로 돌리면서 대신 속죄하고 있습니다. 결국 다윗은 아비가일 때문에 나발을 용서하고 돌아가게 되었고, 나발이 죽자 아비가일을 두 번째 부인으로 맞아 들입니다.

아비가일의 위대함을 하나 배우게 됩니다.
[삼상 25:24] 쉬운성경 아비가일은 다윗의 발 앞에 엎드려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주여, 모든 것은 제 잘못입니다. 제발 제 말을 들어 주십시오."
사실은 아닙니다. 나발이 잘못했습니다. 그런데 아비가일은 남편의 잘못을 내 잘못으로 돌리고 책임을 지려고 합니다. 다른 사람이 싸 놓은 똥을 내가 치우려고 합니다. 마치 우리가 지은 죄를 예수님께서 대신 용서해주시고, 나를 살려주심 같이 그렇게... 바보 같은 남편 때문에 내가 얼마나 고생하고 사느냐고 푸념하지도 않습니다. 사랑으로 사명으로 그 남편의 허물을 감당하며 함께 살려고 합니다. 고개가 숙여지는 장면입니다.

점점 나 중심의 시대로 변해가는 이 즈음에 자녀의 앞길을 위해서 지혜를 빌려주고, 남편의 생명을 위해 대신 죽고자 했던 아비가일이 그리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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