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촌의 김장 풍경
어촌의 김장 풍경
  • 남광현
  • 승인 2021.11.28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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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추는 갯물에 절여야 진짜지...”

“그려 좀 걸려도 갯물에 절여야 혀”

“요즘 그런 배추 많이 팔쟌여”

“그려, 누구네도 작년에 그거 사서 김장했는디 괜찮았댜. 그래서 올해도 며느리들이랑 그렇게 한다네”

“괜찮았댜?”

“그래도 간수 뺀 소금은 넣어야 할껄?”

“옛날에는 배에 싣고 나가서 다들 공동으로 했는디 요즘은 왜 않나 몰러”

“다들 바쁘쟌여 그때는 뭐 할 일이 있었나, 찬바람 일면 마을 사람들 함께 겨울나기 준비하는 게 일였지”

알아들을 수 있는 듯 마는듯한 마을 분들의 대화가 참 정겹게 느껴진다. 어촌의 겨울 준비는 김장김치 담그기에서 시작되는 듯하다. 이 시기에는 집, 집마다 대화의 주제가 배추 흥정 이야기, 무 뽑아 온 이야기, 올해의 젓국은 어느 집에서 담근 것이 가장 맛있다는 이야기, 자하 젓 찾는 이야기, 그리고 품앗이를 위해 김장김치 담그는 일정 조율하는 이야기 등 부인네들이 한껏 존재감을 뽐내는 이야기들로 넘쳐난다.

과거 어촌마을에서의 김장은 마을 전체의 일이었는가 보다. 엄청난 양의 배추를 배에 싣고 깨끗한 바다까지 나가 고기잡이 어장에 넣어 며칠을 담가 두면 저절로 절임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각 가정에서는 자신들의 입맛에 맞도록 김칫소를 준비하고 품앗이를 시작했다는 것이다. 아마도 필자 생각에 여기에서 마을 서열이 나타났던 것 같다. 마을의 가장 어른 되는 가정부터 김장이 시작되고 그 가정에서는 품앗이 온 부인들과 마을 사람들을 풍성하게 대접하게 되었던 것 같다. 이야기를 들어보면 마을에서 김장하는 시기는 꼭 잔치하는 날 같았다고들 한다.

김장철이 되면 흔히들 경험이 많은 어르신들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도움을 청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적어도 필자가 사는 어촌에서는 전혀 다른 모습이 있다는 것이다. 한 마을에서 수십 년을 함께 살아온 분들이지만 경험 많은 어르신이라고 해서 김칫소 준비하는 일에 간섭하지 않는다는 것이 룰 인듯하다. 함께 살면서 느끼는 어촌의 풍습상 연장자와 목소리 큰 사람의 주장이 옳든 그르든 늘 우선되는 경우인데 놀랍게도 김장철에는 그 룰이 무시된다. 어촌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장면이다. 아니 용납되기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김장철 김칫소만큼은 주인의 절대 영역이다.

그런데 배추를 절이는 부분에서는 또 다르다. 되려 이웃들의 의견이 전폭 수용되는 모습을 보인다. 때로는 절임을 부탁하는 일까지도 자연스럽다. 참 이상하다. 생각해 보시라, 김장김치를 담그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배추 아닌가? 그런데 그 중요한 배추절임을 다른 사람에게 부탁한다? 그러면서 소 만드는 것은 절대로 자기 주관대로 해야 한다는 논리는 일반적이지 않은 것이다. 이것이 어촌의 김장김치 담그는 풍경이다.

어촌은 어부들도 강하지만 어부의 부인들도 만만치 않은 포스가 있다. 남편과 함께 그 힘든 바닷일을 감당해 왔기에 여장부의 기세가 어느 분이든 나타나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생각해 보면 그 험하디, 험한 바다에서 남성들도 이겨내기 힘든 일들을 감당하며 평생을 살아오신 분들이기에 아무나 가질 수 없는 기세이다. 그래서 맛을 결정하는 김칫소는 여장부로서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에 양보할 수 없는 일이 된다. 반면 절임은 부인들에게 여전히 힘든 일이기에 품앗이해야 한다는 생각에 양보하는 지혜를 보이는 것이리라.

교회 김장에서도 이런 모습은 여전하다. 그해 여선교회 회장이 누가 되느냐에 따라 김장이 짜기도 하고 싱겁기도 하고 때론 너무 맵기도 하고 심심하기도 하고 차이가 분명해진다. 그럼에도 그해 김칫소의 간 보기는 회장 몫이 된다. 교우분들의 입맛 까다롭기가 일류 셰프 못지않기에 누군가는 김장김치 맛의 책임을 감당해야만 한다. 결국 회장이 그 십자가를 짊어지는 모습이다. 그래서 김칫소의 간을 책임지는 일을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실천적 믿음의 모습이기에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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